[뉴스토마토 이충희기자] 이삼웅 기아차 사장의 갑작스런 사퇴 배경을 놓고 재계의 해석이 분분하다.
기아차가 임원 사의에 이례적으로 "임금 및 단체협상 장기화로 막대한 생산차질이 발생한 데다, 잘못된 협상 관행을 타파하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라는 설명을 달면서 사실상 경질성 인사가 아니냐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여기에 이 사장의 임기 만료가 오는 2017년 3월까지였다는 것도 이러한 해석에 힘을 싣고 있다.
이삼웅 사장은 육군에서 특전사 등을 지낸 뒤 소령으로 예편해 기아차의 대표이사 사장까지 오른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다. 기아차 내에서는 강직하면서도 애사심이 높기로 유명한 그를 따르는 후배 직원들이 많았다고 한다. 정몽구 회장도 이 사장의 화성공장장 재임 시절부터 그를 각별히 챙겼을 정도로 신임이 두터웠던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아래위로 신임이 두터웠던 이 사장이 사실상 경질된 것이라는 해석의 배경에는 최근 현대차그룹이 단행한 임원 인사의 방향성이 중요한 근거로 작용한다. 올해 들어 현대차그룹의 주요 임원인사에 내재된 키워드는 '실적'으로 요약된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6월 강학서 현대제철 재무본부장을 부사장에서 사장으로 승진 발령했고, 7월 박한우 기아차 재경본부장과 8월 이원희 현대차 재경본부장을 각각 부사장에서 사장으로 승진시켰다. 그룹내 주요 사업을 담당하는 계열사 세 곳의 신임 사장을 모두 재무통으로 채웠다.
원화값 급등과 엔저 등 환율이 요동치는 상황에서 흑자 달성을 위해서는 현명한 재무관리가 필수라는 인식에서다. 수출이 늘고 해외현지생산·판매가 국내생산·판매를 뛰어넘으면서 자동차 업계의 가장 중요한 권한이 본격적으로 재무분야로 이동하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실적이 악화되며 흑자경영에 빨간불이 들어온 현대차 유럽법인의 수장들이 연이어 사퇴한 것도 현대차의 최근 인사관리 방향성을 보여준다. 지난 6월 마크 홀 전 현대차 유럽 마케팅 담당 부사장이 실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한 데 이어 지난달에는 자리를 물려 받은 앨런 러쉬포스 부사장도 윗선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물러났다.
기아차 노조는 올해 임단협 진통을 겪으면서 총 96시간의 파업을 벌였고, 잔업·특근 미생산분을 제외한 회사의 생산차질 대수는 3만2142대에 달했다. 지난해 노조의 44시간 파업으로 발생한 1만4358대의 생산 차질보다 두 배 이상 많았고, 최악의 파업으로 치달았던 2012년의 2만1413대에 비해서도 월등히 높다.
이는 고스란히 기아차의 실적 악화로 이어져 1조원이 넘는 매출액 손실을 기록한 것으로 회사는 집계하고 있다. 특히 전통적으로 노조가 강한 현대차가 이미 임단협을 마무리지은 상황에서 기아차의 협상이 지지부진했던 것도 부담이 됐다.
기아차 내부에서는 책임감이 강한 이삼웅 사장이 자신의 사퇴로 경종을 울려 잘못된 노사 관행을 바로잡으려 했다는 의견도 있다. 실제 이 사장은 소하리공장장 재임시절에도 노사 협상이 지연된 데 책임을 지고 사퇴한 전력이 있다.
한편 이삼웅 사장의 후임으로는 박한우 재경본부장(사장)이 임명됐다. 재무관리 부문의 중요성이 한층 강화됐다는 평가다. 박 사장은 단국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현대차 인도법인 재경담당 임원을 거쳐 기아차 재경본부장을 지냈다. 박한우 사장의 후임으로는 한천수 전무가 임명됐다.
정의선 부회장으로의 경영권 승계와 실적 개선이라는 과제를 짊어진 현대차그룹이 다시 그룹 일선을 책임질 요직에 재무통을 앉히고 있다. 전통적인 위기관리법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통용됐다.
◇박한우 기아차 신임 대표이사 사장.(사진=기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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