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양지윤기자]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철학을 담은 옥중저서가 마침내 출간됐다.
최 회장은 14일 발간한 저서 '새로운 모색, 사회적 기업'을 통해 "사회적 기업의 수가 충분히 많아져야 하며, 다른 사회문제 해결의 주체들과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사회적 기업을 확산시킬 대안으로 이들에 대한 가치평가를 기반으로 한 인센티브 도입을 주장했다.
최 회장은 지난 2012년부터 사회적 기업 관련 서적 발간을 준비해 왔으며, 지난해 1월 횡령 등으로 구속 수감된 이후 옥중에서 출간 작업을 최종적으로 마쳤다. 마침 출간 당일 열리는 사회적기업 월드포럼을 SK그룹이 공식 후원하면서 출간 시기를 조절한 것으로 풀이된다.
출간까지 혼선과 진통도 있었다. 최 회장은 물론 동생인 최재원 수석부회장까지 사실상 재벌 총수들 가운데 유일하게 장기간 동반 복역하고 있는 터여서 이를 감내해야 하는 SK그룹의 아픔은 컸다.
그런 가운데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재벌 총수에 대한 사면과 가석방 등 선처 가능성을 내비치자, 정권 최고 실세인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이를 본격 드라이브 걸면서 SK그룹의 기대감은 한층 높아졌다.
정부가 투자를 통한 내수 활성화를 정책 주요기조로 삼으면서 SK로서는 한줄기 빛이 보이기 시작했고, 이 시기에 사회적 기업에 대한 책을 통해 여론마저 우호적으로 돌릴 수 있다는 희망이 보였다.
문제는 국감장에서 터져 나왔다. 복역 1년5개월 간 1700회가 넘는 면회(하루 평균 3.44회)를 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황제복역 논란이 일었고, 이는 언론에게 출간 관련 자료를 사전 배포하려던 SK그룹에 제동을 거는 직접적 원인이 됐다. 예상치 못한 찬물이었다.
이날 발간된 책은 최 회장이 사회적 기업에 대한 그간의 고민을 정리해 직접 저술한 1권 '새로운 모색, 사회적 기업'과 SK동반성장위원회가 저술한 2권 'SK의 사회적기업 운영 사례집…행복한 동행'으로 구성됐다.
사회적 기업이란 저소득자·고령자·장애인 등 취약계층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여기서 나온 수익금을 사회에 되돌려주는 기업을 뜻한다. 최 회장은 수차례 사회적 기업 생태계 조성을 '평생의 과업'으로 삼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 저서를 통해 사회적 기업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했다.
최 회장은 사회적 기업의 역할을 제시하는 데 앞서 관련 내용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를 소개했다. 지난 2009년 한 대학교에서 열린 '사회적 기업 국제 포럼'에 참석해 사회적 기업의 잠재성을 발견하고, 본격적으로 발을 들이게 됐다는 설명이다.
그는 "기업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기대가 커지는 상황에서 효율적인 사회공헌을 지속적으로 하는 방안을 찾는 것이 그동안의 과제였다"면서 "포럼에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데 특화된 조직인 사회적 기업이 사회 전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고 확신하게 됐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사회적 기업이 정부의 공공성과 영리기업의 효율성의 장점을 두루 갖춘 데 주목했다.
기존 사회문제 해결을 담당했던 정부나 비영리 조직, 영리기업의 사회적책임(CSR) 활동을 강화하는 방식으로는 사회문제 해결에 한계가 있는 데 반해, 사회적 기업은 공공성과 효율성, 공공 영역과 시장 영역, 자선 방식과 비즈니스 방식이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나 정부 기능과 시장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영역의 문제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는 "이분법적 접근으로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라면서 "사회적 기업은 두 가지 영역과 두 가지 방식을 하나로 융합할 수 있는 전문 해결사"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최 회장은 사회적 기업이 기본적으로 사회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추지만 자립하기 위해 재무적 성과도 내야 한다고 역설했다. 외부 자원에 의존하는 비영리 조직보다 비용 절감, 자원의 최적 배분 등을 통해 주어진 자원으로 더 많은 사회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이 높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비영리 조직에 기부된 돈이나 영리기업이 직접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출한 CSR 비용은 대부분 일회성이어서 회수가 불가능하지만, 사회적 기업은 해당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활동 그 자체를 통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사회적 기업을 확산시킬 대안으로 사회적 가치에 기반한 인센티브인 SPC(Social Progress Credit)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SPC는 사회적 기업이 더 많은 사회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도록 동기를 유발하는 일종의 보상 개념으로, 사회적 기업이 창출하는 사회적 가치를 측정하고 가치의 일정 비율을 정부가 사회적 기업에 유가증권 형태로 지급하는 방식이다.
최 회장은 "사회적 기업이 사회적 가치를 만드는 데 매진할 수 없다면 혁신도, 투자 유치도 모두 어렵다"면서 "SPC는 사회적 기업의 재무적 지속성을 보장하는 동시에, 더 나아가 투자도 유치하고 혁신해 사회적 기업 선순환의 구조를 만드는 든든한 뿌리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최 회장은 주변 사람의 영향을 받아 사회의 공공선이 전이되는 긍정적 영향인 '백색효과'가 확산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당신의 친구들이 친환경 제품을 쓰면서 환경문제 해결에 동참하는 것을 당연시 여긴다면, 당신도 그 영향을 받아 친환경 제품을 구매할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 바로 백색효과"라고 정의하고, "주변에 이타적인 사람들이 많아지면 백색효과는 더 커질 뿐 아니라 더 이타적인 사람의 행동에 더 많은 영향을 받게 된다"고 강조했다.
최 회장은 "사회적 기업의 숫자가 많아지면 백색효과도 커질 것"이라면서 "사회적 기업의 등장은 사람들의 이타적인 행동의 선택지를 넓혀주게 되며, 사회적 기업의 숫자가 많아지면 사회적 기업 활동이 사회규범처럼 당연시 돼 백색효과가 더 확산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그는 SK그룹이 사회적 기업의 생태계 조성의 도우미 역할을 자처해 왔다고 역설했다.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도시락을 배달하는 '행복도시락', 초등학교 방과후 학교 프로그램을 개별 초등학교로부터 위탁받아 운영하는 '행복한학교', 사회적 기업을 돕는 사회적 기업 '행복나래' 등을 통해 사회적 기업에 대한 희망과 확신을 얻게 됐다는 설명이다.
SK그룹 관계자는 "이번에 발간된 저서는 사회적 기업 생태계 조성을 평생의 과업으로 삼겠다는 최 회장의 의지가 담겨있다"면서 "사회적 기업 생태계 활성화의 새로운 방안으로 사회적 기업에 대한 가치평가를 기반으로 한 SPC 개념을 최초로 제안한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