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서린동 SK 본사 앞을 시민들이 오가는 모습.ⓒNews1
[뉴스토마토 양지윤기자] 최태원 회장의 부재가 장기화되면서 SK그룹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대법원까지 가는 사투 끝에 실형을 선고 받아 사면 등을 제외하고는 그의 공백을 막을 길이 없다.
이런 가운데 그룹을 지탱하던 주력 계열사들의 실적은 내리 하한세다. SK하이닉스 홀로 고군분투하고 있을 뿐, 양대 축이었던 SK텔레콤과 SK이노베이션은 활로를 찾지 못하고 있다.
동시에 미래를 담보할 투자조차 제때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수펙스추구협의회를 중심으로 계열사별 독립경영체제를 꾸리고 있다지만,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면서 피로도만 높아졌다.
수장을 잃고 좌표를 잃어버린 SK그룹의 현주소다.
SK는 오는 31일로 최 회장의 공백 1년6개월을 맞는다. 최 회장은 지난해 1월31일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동생인 최재원 수석부회장마저 같은 혐의로 실형을 피하지 못하면서 SK는 최고경영진을 동시에 잃었다.
수펙스추구협의회를 통해 '따로 또 같이 3.0'을 실행하고 있지만 방점은 '현상 유지'에 맞춰져 있다. 누구 하나 책임지고 위험을 감수하지 못하는 상황이 재연되면서 투자는 보류되기 일쑤이고, 이는 조직 전체의 사기를 떨어뜨렸다. 특히 최 회장 형제가 주도하던 글로벌 사업은 모든 일정이 중단되는 등 치명타를 입었다.
SK 한 관계자는 "회의에 참석해도 누구 하나 자신있게 자기 목소리를 내거나 위험을 감내하려고 하지 않는다"며 "결론 하나 없이 빈 손으로 돌아오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대규모 설비투자를 비롯해 인수합병이나 신사업 진출, 구조조정이나 사업 재편 등은 사실상 총수의 결단이 요구되는 대목"이라며 "설비 유지보수 등 무조건 굴러가야 하는 일정이 아니면 사실상 전면 보류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의사결정에 따른 책임에 대한 부담이 큰 탓에 현상 유지에만 집착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는 내일의 먹거리를 고민해야 하는 기업에게는 치명타다. 아울러 수펙스추구협의회가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조정 및 협의에만 머물면서 내부의 피로감도 상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몇몇 인사들은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됐음에도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는 것에 비통함을 느낀다고도 말했다.
실적도 곤두박질쳤다. SK이노베이션은 2분기 영업손실 502억원을 기록하며 시장에 충격을 안겼다. 석유와 화학 부문이 동반부진을 보인 데다, 원화 강세 등 악재마저 겹쳤다. 업황과 사업구조 탓이라고만 돌리기에는 시장 1위가 너무도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다.
타 계열사 사정 또한 마찬가지다. 오는 30일 2분기 실적 발표를 앞둔 SK네트웍스의 영업이익 컨센서스는 53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2% 하락한 수준이다. 내달 1일 실적을 발표하는 SK텔레콤의 영업이익이 지난해 동기 대비 6% 증가한 5878억원으로 추정되고 있지만, 이마저도 영업정지 여파에 따른 판관비 감소에 따른 것이어서 본격적인 실적 개선으로 보기에는 어렵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그나마 SK하이닉스가 2개 분기 연속 영업이익 1조원을 돌파하며 창사 이래 최초로 반기 영업이익 2조원을 넘어섰지만 시장 기대치를 충족시키지는 못했다. 또 새로 편입된 SK하이닉스의 나홀로 고공질주를 바라보는 기존 여타 계열사들의 속내 또한 마냥 편할 리 없다.
이 같은 위기감은 지난 1분기에도 찾아왔다. SK하이닉스를 제외한 나머지 SK그룹 계열사들 영업이익이 총 8482억원에 그쳤기 때문이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인 2009년 1분기 영업이익(1조6836억원)의 절반에 불과한 수준으로, SK하이닉스 없는 SK그룹을 생각하기 힘든 실정으로 만들었다.
재계 관계자는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사업은 오너의 판단과 결정이 필수인데, SK그룹은 최 회장의 부재로 인해 구조조정이나 사업재편 등을 결정하기 쉽지 않은 상황에 직면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지병 등을 이유로 교도소를 피한 다른 총수들과 달리 최 회장 형제는 수감생활을 하고 있다"며 "지켜보는 SK로서는 속이 타 들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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