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유소년 축구 학부모 "막막해요"
2014-01-09 15:13:41 2014-01-09 15:17:31
[뉴스토마토 임정혁기자] 우연의 일치였다. 빈 통장을 채우고 나오는 길이었다. 은행 문을 등지자 국제전화가 왔다. 오묘한 타이밍에 얼떨떨했다. 수화기 너머 "고객님 당황하셨어요?"를 듣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걱정은 금방 부끄러워졌다.

"아이가 축구를 하고 있습니다. 몸이 약해서 시켰더니 지금은 축구 선수가 꿈이라고 하네요. 현재 중국 광저우에 살고 있습니다. 이쪽 근처에서 축구 관계자에게 테스트를 받고 싶어요. 예전에 영국 OO구단 유소년 팀에서 입단 제의가 왔습니다. 그런 제의를 받고 보니 아이가 재능이 있긴 있는 것 같아요. 형편이 안 돼서 그쪽으로 엄두는 못 내고 있습니다."
 
고1 축구 꿈나무의 어머니였다. 몇 가지를 물어보더니 이런저런 말을 했다. 한탄 섞인 말이 대부분이었다.

"한국에서 유소년 팀 입단 테스트를 받은 적이 있어요. 아이가 재능은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다짜고짜 높은 금액의 돈부터 요구했습니다. 아이도 눈치로 알더군요. 그날 이후로 한국 얘기는 쏙 들어갔습니다. 자기가 영어랑 중국어 할 줄 아니까 국적 바꿔달라는 말만 하더라고요. 돈과 연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유소년 축구 취재 과정에서 몇 번 듣던 얘기다. 또다른 학부모의 볼멘소리가 떠올랐다. 재능이외에 돈과 연줄이 있어야 아이를 축구 선수로 만들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학부모들에겐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한국을 떠나는 것이다. 이승우, 백승호, 장결희(이상 스페인 바르셀로나 유소년), 이강인(스페인 발렌시아 유소년)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강인을 지도했던 한 코치는 "다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강인이 부모님이 한국서 고생 좀 했다"고 말을 아꼈다.

두 번째 방법은 성인이 될 때까지 어떻게든 버티는 것이다. 아이의 재능과 가능성을 믿고 가족 모두가 물심양면으로 돕는 것이다. 박지성(네덜란드 에인트호번)의 경우가 그렇다. 박지성은 아버지 박성종씨의 정성이 있어 한국의 '비주류 선수'에서 세계적인 클럽 영국 맨체스터유나이티드의 핵심선수가 될 수 있었다.

둘이 적절히 섞인 경우도 있다. 손흥민(독일 레버쿠젠)이 그렇다. 손흥민은 축구철학이 확고한 아버지 손웅정씨의 지도 아래 성장했다. 손흥민의 아버지는 그의 잠재력이 터지기 직전에 그를 독일로 인도했다. 손웅정씨는 자신을 축구계의 비주류라 칭하며 여전히 자신의 방식으로 유망주들을 지도하고 있다.

새해부터 프로축구에서 선수 선발 비리 의혹이 터졌다. 최근 국내 K리그 챌린지(2부리그) 부천FC는 곽경근 감독을 경질했다. 이유는 '선수 주고받기'다. 곽 감독이 대학 축구팀 감독들과 짜고 과거 자신이 대표를 지낸 '곽경근 축구클럽' 선수들을 부천으로 받아줬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학부모들의 금품 제공 혐의도 제기됐다. 물론 곽 감독은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그는 변호사를 선임하겠다고 하는 등 부천과 새해부터 법적 다툼을 불사할 기세다.

아이가 축구 선수를 꿈 꿀 때부터 학부모는 고달파진다. 최근 유망주는 많다는데 다들 유학파다. 국내에서 이름 좀 날리려면 이런 저런 조건들이 따른다. 아이가 재능만 있다면 외국으로 가라는 소리부터 나온다. 새해에도 축구 유소년 학부모는 막막하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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