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한승수기자] 충분한 준비 과정 없이 의욕만 가지고 졸속으로 내놓은 새정부의 정책이 보정에 보정을 거듭하며 너덜너덜해지고 있습니다. 맞는 길을 찾아 좌표를 수정하며 최선의 결과에 도달하는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 갈등만 조장하고 이를 피하기 위한 수선책이란 점에서 누더기 정책이란 비아냥을 감내해야 겠네요.
주인공은 바로 박근혜 정부의 핵심 전세대책 중 하나인 행복주택입니다.
행복주택은 당초 정부 기관 소유의 역세권 부지 젊은 세대를 위한 임대주택단지을 짓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변두리, 노인정 아파트라는 이미지를 지닌 공공임대주택단지를 도심 내 초역세권의 젊은 단지로 바꾸는 것은 임대주택 사업의 꿈같은 일이었습니다.
건축비도 부담되지만 인근 지역 주민 반발이 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 정부는 지난 5월 꿈같은 임대주택단지를 실제로 만들기로 했고, 구체적인 사업안까지 발표했습니다.
오류동, 가좌, 공릉, 고잔, 목동, 잠실, 송파 등 7개 시범지구 대상지를 선정했습니다. 하나같이 초역세권으로 위치만 보면 지역 내 알짜 부지였습니다.
첫 공식 발표 후 7개월이 지난 지금. 행복주택은 초심을 잃고 있습니다. 국토교통부는 오늘 전국의 관계 공무원을 한 곳에 불러 모아 재개발과 같은 도시재정비사업에 행복주택을 끼워넣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사업 모델로 제시된 것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나 지방공사가 노후불량 주거지를 수용해 행복·민간분양주택을 혼합건설하는 방법과 지자체가 기반시설을 설치하고 지방공사 등이 불량주택·나대지를 활용해 행복주택을 건설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또 LH와 지자체, 지방공사 보유 노후 임대주택을 재건축하거나, 공·폐가 등 불량주택을 매입해 행복주택으로 재건축하는 방법도 연구 대상입니다.
당초 목표였던 도심 내 초역세권 임대주택단지가 수정된 것입니다. 결국 일반적인 재정비 사업에 임대주택을 믹스하는 기존의 사업 방식과 크게 다를 것이 없습니다. 주민 반대에 지친 정부가 내놓은 고육지책으로 보입니다. 어떤 곳이 선정될지 알 수 없지만 시범지구 대상지와는 비교할 바가 아닐 것이 뻔해보입니다.
또한 이 경우 정부 소유 부지를 개발해 건축비가 적게 들고 이로 인해 주변시세의 50~70%선의 임대료를 받겠다던 첫 발표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그냥 국민임대주택과 같은 개발 방식이기 때문에 행복주택이라고 더 저렴한 임대료를 책정한다면 반발에 부딛힐 수 있습니다.
◇목동 행복주택 비대위 반대 시위현장(사진=뉴스토마토DB)
공급 물량도 변화가 있었습니다. 애초에 행복주택 시범지구 대상지였던 목동·잠실·송파·공릉·고잔에서는 7900가구가 들어설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지역 주민들의 거센 반발에 막힌 국토부는 물량을 반으로 줄여 행복주택 건립에 따른 지역에 몰고 올 충격을 줄이기로 했습니다. 새로 수정된 공급안은 3450가구. 당초 계획보다 56%나 축소됐습니다.
행복주택은 충분하지 못한 사업 준비로 계획 수정은 물론 국민간 갈등까지 조장했습니다. 시범지구 대상 지역 주민들은 자신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저마다의 사정을 내세우며 행복주택 건립을 반대했고, 이 모습을 지켜본 사회단체들은 이들을 이기주의자로 규정했습니다. 인터넷에서는 이들을 종북세력으로 몰아붙이까지 했습니다.
꼭 필요하지만 임대주택이 부동산시장에서 다소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부동산에 관심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고요. 그걸 알고 있다면 임대주택 공급 지역으로 지정 전 지역 주민들과 충분히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어야 하지만 행복주택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행복주택이 첫 발표됐을 때 전문가들은 깜짝 놀라며 임대주택의 혁신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취지만 봤을 때 모든이에게 정말 좋은 정책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정부의 불충분하고 미숙한 정책 운영은 국민 간 분열은 분열대로 일으키고, 계획은 계획대로 계속 수정되는 악순환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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