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고재인기자] 금융감독원이 은행들과 검토했던 거액 기업 여신심사에 은행장이 참여하는 방안이 금융위원회 손으로 넘어갔다.
금융감독 방향이 외환위기 이전으로 회귀하는 것이 아니냐며 은행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일부 국회의원들까지 나서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23일 금융권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감원의 지시에 따라 이달 초 은행연합회 태스크포스(TF)에서 은행 여신심사위원회 구성과 운영방안을 마련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금융위가 지난주 이같은 방안을 재검토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잠정 중단된 상황이다.
금감원은 하반기 대기업의 구조조정을 염두에 두고 지난달 은행 여신 실무자들을 불러 은행장이 여신심사에 참여하는 방안을 만들자고 제시했다. 은행장의 여신심사 참여로 구조조정기업의 신속한 지원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은행 실무자들은 인사권을 가지고 있는 은행장이 여신심사에 참여하는 것은 오히려 더 많은 부실을 낳을 수 있다며 반대 입장을 전달했다.
금감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행 방침을 밝히고 은행연합회에 TF를 구성해 구체적인 방안을 만들도록 지시했다.
부행장들이 참석하는 은행연합회 여신전문위원회에서 은행장이 거액 여신심사에 참여하는 방안이 결정되면 각 은행들은 이같은 여신심사위원회 운영방안을 내규에 담도록 한 것.
금감원에서 검토한 내용은 1000억원 이상 일반 기업 대출시 여신심사위원회에 은행장 참여가 의무화하고, 기업구조조정촉진법(기촉법)상 구조조정이 진행 중인 기업은 2000억원 이상 대출시 은행장이 여신위원회에 참여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은행들은 은행장에게 여신에 대한 책임을 줄 경우 기업 구조조정 작업이 어려워 질 수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A은행 관계자는 “은행장이 여신심사위원회에 들어가면 오히려 기업 구조조정 작업이 힘들어질 수 있다”며 “본인이 여신심사에 들어가기 때문에 확실한 거 아니면 지원을 못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금감원은 과거 은행장 단독으로 여신을 결정하던 때와 달라졌으며 여신심사위원회의 전문성 또한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은행장의 거액 여신 심사에 참여에 따라 신속하게 구조조정을 통한 대기업 정상화를 지원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IMF이전에는 은행장 단독으로 여신을 결정해서 문제가 됐지만 지금은 이미 여신전문위원회가 있어 단독결정은 쉽지 않다”며 “위원회의 전문성은 오히려 살아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 관계자는 “대기업 구조조정은 타이밍을 놓치면 안된다”며 “살릴 수 있는 기업을 살려 회수율을 높이도록 은행장의 책임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거액 여신심사에 대한 은행장의 참여 논란이 커지자 금융위가 은행들의 의견을 들어보고 전면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으로 돌아선 것.
금융위 관계자는 “여신의사결정 과정을 끌어가기 위한 구조에 대한 부분이어서 결국은 경영상의 판단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위가 재검토에 나서면서 은행장의 여신심사 참여방안 논의는 당분간 뒤로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이미 은행장이 참여하는 방안이 은행연합회를 통해 마무리 하면 되던 상황에서 금융위가 재검토 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금감원이 제시한 방향대로 가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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