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재계의 `몽니`.."투기자본 막아주고, 우린 건들지마"
2013-08-22 18:34:53 2013-08-22 18:38:04
[뉴스토마토 김원정기자] "외국계 펀드, 기관투자자가 악의적으로 서로 규합해 감사위원을 선출할 경우 최대주주 의사와 전혀 관계없는 인물들로 감사위원회가 구성되고 경영권 간섭이 심화된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19개 경제단체가 22일 정부에 제출한 '외국계 펀드, 기관투자자의 이사회 장악 시나리오'의 일부분이다. 전경련 등은 정부가 오는 25일까지 입법예고 중인 상법 개정안에 대해 이런 시나리오를 건의문에 담아 정부에 제출했다.
 
건의문에는 획일적 지배구조를 기업에 강요하다 외국계 펀드에 의해 경영권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주장이 담겼다. '기업'과 '기업 오너'를 분리하지 않은 데서 불거진 오류가 엿보이지만 재벌체제 만큼이나 해외 투기자본도 문제이긴 하다.
 
상법 개정안이 입법예고된 시점부터 한 달 넘게 재계를 중심으로 터져나온 저런 논리는 재벌문제와 투기자본 문제를 뒤섞어 논의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정답은 뭘까?
 
상법 개정안에 대해 반대 입장을 밝히는 전경련 (사진제공: 전경련)
 
일단 재계가 염려하는 경영권 농락과 그 과정에서 불거질 국부 유출 주장은 턱없이 과장됐다는 지적이 많다.
 
가장 쟁점이 되고 있는 '감사위원 분리 선출' 건의 경우 정부안은 상법에 새로운 조항을 집어넣은 게 아니라 2009년 상법 개정 이전으로 규정을 되돌리는 것에 불과하다.
 
당시 법 개정으로 이사와 감사위원을 '분리선출'하던 것에서 '일괄선출' 방식으로 바뀌며 감사위원 선임시 대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조항이 유명무실해졌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는 이사를 선임할 때는 대주주 의결권에 제한을 두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이번 개정안은 법에 명시하고도 실효가 없는 조항의 실효를 살리자는 정도인데 재계는 "외국계 펀드가 이 규정을 이용, 자기 측 인사를 선임해 경영권을 장악하고 주요 기술을 유출" 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를 동원해 회사의 자발적 선택에 맡기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국부 유출 가능성도 과잉이라는 지적이다. 강정민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은 "상법 개정안이 적용되는 자산규모 2조원이 넘는 상장회사 가운데 지분 구조가 취약하거나 시가총액이 낮아 외국계펀드의 사냥감이 될 만한 회사는 없다"고 말했다.
 
강 연구위원에 따르면 국내 들어오는 외국계 펀드는 특정기업의 경영권을 노리는 경우 보다 배당과 시세차익을 노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주목되는 건 재벌개혁 목소리가 높아질 때마다 재계는 '해외 투기자본의 국내기업 경영권 위협'이란 시나리오를 끌어들여 상법 개정 논의를 좌초시켜왔다는 데 있다.
 
재계가 경영권 위협의 단골사례로 거론하는 'SK-소버린 사태'의 근본문제를 따져보면 상법 개정안 논쟁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풀릴 수 있다.
 
지난 2003년 소버린이 SK 지분 14.99%를 매입해 2대 주주가 된 다음 1조원에 달하는 차익을 누리고 보유지분 전부를 매각한 일이나, 이 과정에서 SK가 경영권을 방어하겠다고 1조원에 달하는 자금을 투입한 일은 모두 사실이지만, 당시 SK그룹은 최태원 회장이 분식회계로 구속되면서 주가가 상당히 떨어진 상태였고 소버린은 이때를 놓치지 않았다.
 
해외 투기자본으로부터 '기업 오너의 경영권'을 보호하고 싶다면 투명한 경영으로 기업가치를 제고하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그런데도 '외국 자본 vs 국내 자본'이란 이분법으로 사안을 도식화 한 뒤, 두 개 선택지 가운데 하나만 고르도록 '사실상 강요'하는 것은 정직하지 못한 태도다.
 
이렇게 외국자본에 국내기업을 뺏길 수 없다는 국수적 시각을 사안에 덧입히는 순간 당초 상법이 지향하는 기업 지배구조의 투명성 제고나 재벌개혁 논의 역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수밖에 없다. 재계가 노리는 건 어쩌면 이것일지 모른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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