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수현기자] 사즉생(死卽生). 죽고자 하면 살 것이라는 뜻. 표류하고 있는 국회 국가정보원 국정조사특별위원회와 관련해 127석 제1야당 민주당이 가지고 있지 못한 결기다.
국기문란 대선 개입 사건에 대한 진상을 규명해줄 것으로 기대됐던 국조특위가 파행을 거듭하고 있다. 결국에는 흐지부지되고 말 것이라는 비관론이 지배적인 분위기다.
이렇게 된 원인으로 먼저 새누리당의 몽니를 꼽을 수 있다. 집권여당은 애초부터 국조를 하고 싶지 않는 눈치였다. 실시를 합의한 후에는 제척·귀태·NLL 등 다양한 이유를 들며 발목을 잡았다.
새누리당은 그야말로 '결사항전'의 자세로 버텼다. 자칫 정권의 정통성 시비로 번질 수 있는 국정조사를 앞둔 새누리당은 '배수의 진'을 친 것처럼 보였다. "물타기"라는 비난이 쇄도했지만 요지부동으로 견뎠다.
그러자 국정조사를 둘러싼 정국의 판세가 변하기 시작했다.
무능을 거듭한 민주당으로 비판의 화살이 옮겨간 것이다. 민주당은 우왕좌왕하며 일방적으로 끌려다니는 것도 모자라 자중지란 조짐마저 감지됐다.
민주당은 김현·진선미 의원이 제척사유에 해당한다는 새누리당의 억지에 뚜렷한 대응책을 찾지 못하고 속절없이 시간만 허비했다. 두 의원이 떠밀리듯 사퇴한 시점은 국조 일정 45일 중 보름 가량이 지나서였다.
두 의원이 사퇴 압박을 거세게 받은 데엔 막말 논란도 단단히 한 몫을 했다. 지난 7월11일 홍익표 의원의 "귀태" 발언은 다음 날 청와대를 발끈하게 만들었고, 정부여당은 민주당에 '제척·귀태' 공세를 퍼부었다. 두 의원은 끝내 7월17일 사퇴할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민주당은 국정조사를 통해 이명박 정부의 국정원과 새누리당 대선 후보 간의 커넥션 의혹 등에 관한 공세를 펼칠 절호의 기회를 잡았음에도 지리멸렬한 모습만 보이다 도리어 수세에 몰리고 말았다.
이 와중에 NLL 정쟁과 관련해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를 요구했다가 대화록 실종으로 궁지에 몰린 문재인 의원을 향해 총구를 겨누는 등 내부적으로도 자중지란이 일어나 빈축을 샀다.
또 민주당이 여름 휴가와 국정원 기관보고 사실상 비공개 등 새누리당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해 국조 재개에 협의해준 일은 성난 민심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 됐다.
"국조라는 옥동자를 지키기 위한, 솔로몬의 선택에 나오는 어머니의 심정"이었다지만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촛불을 밝히는 시민들이 왜 매주마다 늘어나는지를 민주당은 모르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오히려 어떤 비난도 감수하며 갖은 방법으로 국조를 발목잡고, 박근혜 대통령이 관련된 의혹에 대해선 결사적으로 맞서는 새누리당이 대선 개입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국민의 바람이 어느 정도인지를 더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국정조사에 임하는 태도에 있어 '절실함'의 차이가 있었던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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