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보라·이준영기자] 시장연합회 등과의 분쟁으로 1년여 진통을 겪었던 합정 홈플러스가 지난주 목요일 드디어 문을 열었다. 홈플러스는 개장날인 목요일부터 예상보다 많은 인파가 몰리는 등 주말 내내 북새통을 이룬 반면 망원시장 및 망원월드컵시장 등 인근 전통시장 상인들은 손님 발길이 뚝 끊기며 수심에 빠졌다.
홈플러스 합정점은 당초 지난해 8월 개점할 계획이었지만 망원시장과 월드컵시장 등 인근 상인들의 반대로 문을 열지 못했다. 사회 문제로까지 비화되자 정치권 등이 나섰고, 결국 각고의 중재 끝에 지난달 27일 홈플러스는 망원시장상인회·망원동월드컵시장상점가진흥사업협동조합과 마포구청에서 상생협약을 맺었다.
양측은 판매제한 품목 선정, 담배 보루 판매 금지, 전통시장 행사 물품 지원, 홈플러스 단독할인행사 자제 등을 협의했다. 또 매달 둘째주 목요일에 만나 상생협의체를 운영하기로 했다. 거대자본을 앞세운 유통괴물의 횡포 앞에 골목상권이 무너지면서 여론이 들끓자 마지못해 도달한 결론이었다. 대비되는 현장 속으로 들어가 봤다.
◇합정홈플러스, 흥행 대박..일단은 협의 이행
14일 문을 연 합정 홈플러스 모든 출입구에는 유니폼으로 옷매무새를 정갈히 한 직원들이 줄지어 있었다. 대박할인 소식을 전해듣고 몰려든 인파 탓에 질서유지도 이들의 몫이었다. 실제 매장 입구까지 줄이은 패스트푸드점, 푸드코트, 멤버십 가입을 위한 창구 등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매장 안으로 들어서자, '1+1', '절반 초특가', '50%세일', '최저가', '전단지가격보다 더 내렸어요' 등 할인을 내보이는 문구와 푯말들이 눈에 들어왔다. 홈플러스 개점으로 영등포나 상암 등의 인근 대형마트나 재래시장으로 장을 보러 가던 주민들의 반기는 소리도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성산동에서 온 한 부부는 "과일이나 채소는 시장에서 사지만 공산품이나 가공식품 같은 것은 마트가 싸니, 이곳으로 오게 됐다"면서 "평소에는 월드컵경기장으로 다녔지만 지하철과 버스가 바로 연결되는 곳이라 교통이 편해 앞으로 자주 이용할 것 같다"고 말했다.
순대와 총각무, 오징어 등 전통시장에서 취급하는 판매제한 품목에 대해 모르거나, 또는 알고 있었지만 지장 없다는 반응도 많았다. 서교동에 거주하는 주부 한모씨는 "판매제한 품목이 있다는 것은 들었지만 쇼핑하는데 전혀 불편은 없다"고 말했다.
평소 서울역 L마트로 장을 보러 다니던 대학생 이모씨는 "재래시장 상인들의 마음도 이해하지만 솔직히 마트가 값싼 것도 많고 한 번에 해결되니 편리한 점이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홈플러스에서는 약속대로 협의체에서 지정한 오징어, 총각무 등 판매제한 품목은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단독할인행사제품'이 아닌 홈플러스 차원의 할인제품들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었다. 홈플러스 멤버십 고객들에게는 지난 토요일과 일요일에 <홈플러스 합정점 GRAND OPEN>이라는 'OPEN기념 특별행사' 내용의 문자가 도착하기도 했다.
홈플러스는 지난 14일 개점한 이래 17일 일요일까지 총 2만여명이 다녀갔다고 밝혔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상생협의안의 홍보, 할인, 사은품 증정 등의 행사를 자제하겠다고 했지, 안 하겠다고 한 것은 아니었다"면서 "상생협의체는 앞으로 성실히 이행하겠다"고 말했다. 모순이었다.
◇홈플러스 합정점
◇상인들 "매출 급락..홈플러스, 약속 칼 같이 지켜야!"
쇼핑객들로 붐볐던 홈플러스 합정점과는 달리 같은 시각 망원시장과 망원월드컵시장의 상인들은 우려가 현실이 됐다며 긴 한숨을 감추지 못했다. 홈플러스 합정점 개점 전보다 손님이 급격히 줄었다는 반응 일색이었다.
망원월드컵 시장에서 4년째 정육점을 운영하는 송모씨는 "우리 시장은 외지에서도 많이 오는데 근래 사람이 줄었고, 매출은 지난 주말보다 10% 정도 줄어든 것 같다"고 말했다. 주말의 휑한 시장 통로는 상인들에게 뼈아픈 현실이었다.
28년째 식자재 가게를 운영하는 이모씨도 "대형마트가 시장보다 거의 모든 면에서 좋은 조건인 건 사실이지 않느냐"며 "매출이 40%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지만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상인들도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17일 망원월드컵시장 모습
망원월드컵시장 바로 옆에 붙어있는 망원시장 상인들 역시 불안한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망원시장 내 생활용품 전문점에서 일하는 김모씨는 "지난주보다 시장이 죽었다"며 "대기업을 상대로 소매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게 특별히 없다"고 말했다. 게임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불공정한 링이란 설명이다.
9년째 축산물을 판매하는 서모씨는 "지난 주말보다 매출이 30~40% 줄었지만 약속한 상생협의체 결과만 잘 지켜지면 우리 재래시장이 대형마트에 뒤지지 않을 것"이라고 애써 자신감을 드러냈다. 옆에 있던 한 상인은 "홈플러스가 시장상인들과 한 약속을 칼같이 지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부분의 상인들은 홈플러스 합정점과 망원시장상인회·망원동월드컵시장상점가진흥사업협동조합이 합의한 판매제한 품목에 대해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일부에선 판매제한 품목이 확대되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상인 안모씨는 "판매제한 품목 확대는 생존권이 걸린 문제"라면서 "배, 사과 , 양파, 대파, 배추 등을 제한품목으로 해줘야 우리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공산품을 제외한 야채 및 과일류, 축수산물 등의 생필품에 대한 판매제한 요구였다.
조태성 망원시장상인회장은 "서울시, 중소기업청, 언론 등 여러 분야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으니 홈플러스가 상생협약을 잘 이행하리라 믿는다"면서 "홈플러스의 상생협의안 이행상황을 지켜보면서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말 속에는 결기가 잔뜩 묻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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