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원정기자] 대선을 한 달 앞둔 시점에서 차기정부에 요구되는 방송정책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노조·시민단체가 요구하는 목소리와 여야 대선후보가 제안하는 언론공약 내용을 종합하면 ‘공영방송 거버넌스 개선’에서 접점을 이루는 양상이다.
이는 현 정부 들어 KBS·MBC를 포함, 유례없는 언론사 동시파업을 겪는 등 1980년대 말 구축한 공영방송 구성·운영 시스템이 망가졌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것으로 방송법 조항 등을 바꾸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로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주체별 각론에서 차이가 있고 여야 대선후보의 경우 총론만 내놨을 뿐 ‘어떻게’ 하겠다는 내용이 부실해서 조율하는 과정과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학계 “거버넌스 개선 위한 법 개정 논의하자”
거버넌스 개선이 차기정부 방송정책의 주류로 떠오른 건 여권인사가 다수를 차지하는 공영방송 이사회의 여야 균형을 맞추는 게 방송의 정치적 독립을 위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강형철 숙명여대 교수 역시 차기정부에 필요한 과제로 KBS·MBC 사장 선임에 있어 여야 분포를 넘어서는 중립적 인사를 선임하는 제도를 마련하는 게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봤다.
또 정권이 바뀌어도 사장이 안 바뀌는 사례를 축적시킬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강 교수는 9일 한국언론정보학회 학술대회에서 “KBS나 방문진(방송문화진흥회)은 여측 이사, 야측 이사 이렇게 부르는데 원래는 법에도 없는 것을 아예 정례로 인정한 것”이라며 “법을 바꿔서라도 당장 개선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날 학술대회의 메인세션 주제는 ‘이명박 정부의 언론정책 평가와 차기정부의 바람직한 언론정책의 방향’이었다.
정연우 세명대 교수 역시 지난 2일 미디어공공성포럼이 주최한 ‘대통령선거 후보들에 바라는 언론정책’ 토론회에서 “공영방송 이사회는 정당의 역학구도에서 나눠먹는 식으로 이뤄지고 있어 국민 대표성을 반영하지 못하고 정당의 대리인처럼 움직이는 측면이 있다”며 “공영방송 방문진 이사 수를 대폭 늘리고 무보수 명예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조·시민단체 “사추위, 특별다수제 도입해야”
미디어커뮤니케이션네트워크는 대선후보들에 바라는 방송정책으로 8가지 공약을 제시하며 ‘공영방송 사장 선임과 이사회 구성’을 포함시켰다.
이 조항에는 ▲공영방송 사장 선임시 사장추천위원회 도입 ▲공영방송 사장과 이사의 결격사유와 자격조건 구체화 ▲공영방송 이사는 여야 교섭단체가 동수로 추천하라는 내용이 담겼다.
KBS 새노조가 총파업을 결의하며 요구하고 있는 특별다수제도 이 항목에 포함돼 있다.
미디어커뮤니케이션네트워크에 참여하고 있는 최진봉 성공회대 교수는 9일 한국언론정보학회 학술대회에서 “이렇게 바꾸지 않으면 지속적으로 현 정부 사람이 공영방송 사장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돼버린다”고 지적했다.
또 “제도 개선이 전부는 아니지만 최소한의 방어 장치는 있어야 한다는 측면”이라고 강조했다.
미디어커뮤니케이션네트워크는 시민사회 단체와 개인 등 70여개 주체가 연합한 조직으로 대선을 전후로 각 후보에 정책을 제안해서 입법화 한다는 방침이다.
공영방송 사장과 이사 선임 개선 외에도 ▲방송사 소유 제한 ▲방송 제작 자율성 보장 ▲종합편성채널에 지상파방송과 동일한 수준의 대칭규제 적용 ▲방송통신위원회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개편 ▲시청자위원회 현실화 ▲공영방송 수신료 인상 등을 방송정책 과제로 제안하고 있다.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대선후보 3인은?
이목이 쏠리고 있는 대선후보들의 방송관련 정책은 실망스럽다는 지적이 많다.
구체성이 크게 떨어진다는 이유에서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경우 방송관련 정책으로 지난달 30일 ICT대연합이 주최한 간담회에서 발언한 게 사실상 유일하지만 “공영방송의 지배구조 개선을 심도 있게 논의할 공론의 장을 마련하고 그 결과를 받아들여 실천하겠다. 공영방송 이사회가 우리 사회의 다양성을 균형 있게 반영하고, 공영방송 사장 선출도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투명하게 하겠다”며 원론적 수준의 내용을 언급하는 데 그쳤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는 지난 8일 54개 언론관련 단체가 주최한 ‘2012 대선 미디어·문화예술·정보통신 정책토론회’에서 방송정책 공약의 일단을 선보였다.
문 후보는 ‘언론 자유와 독립 보장’ 등 5가지 큰 주제를 제시하며 그 안에 공영방송 거버넌스 개선을 포함시켰다.
세부적으로 방송법을 개정해 KBS, MBC 등 공영방송의 사장과 이사 선임시 추천위원회 제도를 의무화하며 공영방송 사장·이사 자격요건과 결격사유를 구체화해 ‘낙하산 사장’ 등을 원천적으로 막고 사장 선임 등 중요안건을 의결할 때 특별다수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안 후보는 경우 <안철수의 생각>에서 “앞으로 공영방송은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사장후보 추천위원회를 구성해서 정권과 무관한 전문가를 사장으로 선임할 수 있도록 확고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할 것”이고 “정권이 바뀌더라도 이 시스템을 흔들 수 없게 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8일 토론회에서 소개한 내용은 여기에 공영방송 이사진은 여야 합의적 추천으로 구성, 공영방송 이사진과 사장의 자격요건과 결격사유 등을 강화한다는 내용이 추가됐다.
이날 공개된 것만 놓고 보면 두 후보의 정책이 다르지 않을뿐더러 이는 지난 달 미디어커뮤니케이션네트워크가 제안한 것에서 벗어나지 않는 내용이기도 하다.
방송의 공공성을 주창하는 목소리가 이번에도 슬로건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가 한편에서 나오는 이유다.
유영주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장은 2일 “언론과 관련해 가장 핵심적인 정책이 무엇인지 누구나 동의한다”며 “추상적 설명이 아니라 그것을 실현시킬 수 있는 내용이 중요하고 새 정부가 잘 가려내 입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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