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틀에서 보면 현대모비스, 현대차, 기아차, 현대모비스의 구조로 연결되는 환상형 순환출자 구조다. 이중 현대모비스와 현대차, 현대차와 기아차, 기아차와 모비스의 연결고리 중 어느 한 곳이라도 끊는다면 순환출자 문제를 손쉽게 해소할 수 있다.
시장에선 기아차와 현대모비스의 연결고리를 끊어 순환출자 문제를 해소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현대모비스와 현대차를 끊는 데 드는 비용이 11조2400억원, 현대차와 기아차를 끊는 데 드는 비용이 11조270억원인 반면 기아차와 현대모비스 간 출자 해소는 7조1150억원으로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을 필요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이상 시장추정치)
이 경우 기아차가 보유한 현대모비스 지분과 함께 현대글로비스가 보유한 현대모비스 지분, 현대제철이 보유한 현대모비스 지분 등이 동시에 매각돼야 한다.
지분 매각 금액은 각각 5조1745억원, 2067억원, 1조7340억원 가량으로 총 7조1150억원이 소요돼 비용면에서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하다.
이는 지배주주가 경영권 유지를 위해 상장회사 30%, 비상장회사 50%의 지분을 가져야 한다는 기준에 따라 계산된 비용이다. 현재 여야가 큰 틀에서 지주사법을 이렇게 강화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아가고 있다.
한편 순환출자 금지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일부 전문가들은 현대차의 경우 현대모비스가 보유한 현대차 지분 4600만주 가량을 해소할 때 약 10조원 가량이 소요되고, 여기에 지분 매각시 법인의 경우 차익 24.2%, 개인대주주는 차익의 22%를 세금으로 납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에다 기술 개발과 설비 투자에 투입돼야 할 기업 자금이 경영권 안정 목적으로 순환출자 해소에 집중되면서 오히려 경제 전반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또 해외 기업이나 투자자들로부터 적대적 M&A에 노출된다는 우려도 나온다.
◇지배구조 개편·경영권 승계는 '절대적 과제'
현대차그룹은 순환출자 해소뿐만 아니라 정의선 부회장의 그룹 지배구조 강화를 통한 자연스러운 경영권 승계 또한 풀어야 할 지상과제다.
시장에서는 정 부회장이 그룹 지배의 근간인 현대모비스에 대한 지배를 강화하기 위해 글로비스와 엠코를 활용해 지배구조 개편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고 있다.
현 지분율을 살펴보면 정 부회장은 현대차그룹의 지주사 격인 현대모비스 지분이 0.67%에 불과하다. 정몽구 회장 역시 6.96%만을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그룹의 순환출자를 해소하고, 정 부회장으로의 원활한 경영권 승계를 위해선 정 부회장이 현대모비스의 지분을 대폭 늘려야만 한다.
문제는 현대모비스 지분 확보를 위한 자금 여력이 충분치 않다는 데 있다. 전문가들은 정 부회장이 현대모비스 지분을 확보하려면 최소 6조원 이상이 필요한데, 현재 그가 보유하고 있는 계열사 지분은 채 3조원이 안 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정 부회장이 그룹 경영권 승계는 물론 지주사 전환을 통한 지배구조 강화까지 동시에 이뤄낼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이 있을까.
전문가들은 대략 3가지의 방안을 꼽고 있다.
먼저 정 부회장이 최대주주로 있는 글로비스와 현대엠코 등의 실적 향상을 통한 기업 가치 증대가 우선돼야 한다. 이들 기업이 덩치가 커지면 쟁쟁한 타 계열사와 합병(모비스+글로비스, 현대건설+엠코)이 가능케 된다. 그리고 합병 과정에서 거둔 차익으로 현대모비스의 지분을 사들이는 시나리오다.
문제는 그룹의 전폭적 지원이 뒤따라야 하는데, 이는 일감 몰아주기라는 사회적 지탄과 맞닿아 있어 섣불리 단행하기엔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자칫 성난 여론을 자극시켜 정치권의 매질을 버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
실제 글로비스와 현대엠코의 경우 대표적인 일감 몰아주기 사례로 거론되고 있다. 2001년 불과 자본금 50억원으로 설립된 글로비스는 10년 만인 지난해 매출 7조5500억원, 영업이익 3400억원을 기록할 정도로 매년 폭발적인 성장세를 나타냈다. 그룹내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면서 '땅 짚고 헤엄치기'로 사업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정몽구 회장의 재산을 정 부회장에게 상속하는 방법도 있지만, 상속세 등을 감안하면 실효성이 크게 떨어진다. 우리나라 상속세는 50%로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상속세를 30% 수준으로 인하하는 법안이 국회에 상정됐으나, 4년 동안 표류하고 있다.
때문에 무리한 합병은 배제하면서도 이익은 극대화하는 방안이 가장 현실적이지 않겠느냐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 경우 정 부회장이 지분 25%를 들고 있는 현대엠코와 현대건설 간 합병이 가장 유력하다. 현대건설을 놓고 현대그룹과 피 말리는 혈전을 벌였던 까닭도 지배구조 개편을 염두에 두고 착안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우선 현대엠코의 규모를 키워 자체 상장할 수 있지만, 삼성생명처럼 주가가 지지부진할 우려가 있어 이 시나리오는 극히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보인다.
비상장사인 현대엠코를 현대엔지니어링과 우선 합병한 후 몸집을 최대한 불려 합병 비율에 중요한 기업가치와 실적(매출, 영업이익) 등 여러 지표를 끌어 올린 후 현대엠코가 현대건설의 지분 15%를 인수함으로써 우회상장하는 시나리오도 가능하다.
현대엠코는 시공능력이 올해 기준 23위 수준이지만 안정적인 수익구조를 갖고 있다. 현대엠코의 1분기 매출액은 5866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70% 이상 늘었고, 영업이익도 470억원으로 20% 가량 증가했다.
특히 부동산 경기에 휘청거리는 주택사업 비중이 낮은데다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우려 또한 없다. 현대제철 고로 건설, 현대기아차 설비 신·증설 등 계열사들의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사실상 시장가치는 국내 건설회사 10위권에 해당하는 규모로 성장했다.
현대엠코가 현대건설과 합병하기 위해선 비상장이어야 한다. 그래야 합병비율을 피합병사인 현대건설과 합의할 수 있는 법적인 조건이 갖춰지기 때문이다. 가령 현대엠코의 시장가치가 1조원, 현대건설이 10조원일 경우 합병비율은 1:10이지만, 양측이 협의를 통해 1:8에서 1:7까지 비율을 조정할 수 있다.
물론 이를 위해선 현대건설 이사회를 장악해야 하지만, 이미 총수일가 측근들이 전면 포진돼 있는 상태다. 이 경우 정 회장 일가는 현대건설을 통해 현대엠코를 자연스럽게 우회상장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이렇게 확보한 자금을 통해 현대모비스 등 핵심 계열사 지분을 확보하면 현대차그룹의 경영권 승계 작업은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된다. 다만 현대차그룹은 현대건설 인수시 채권단에 "현대건설과 현대엠코는 별개 회사로 인수합병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어, 이를 풀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금산분리, 상대적으로 타격 적어
반면 현대차그룹은 금산분리 강화에 대해선 큰 영향을 받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룹내 금융계열사 비중이 낮아 타 대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여력이 있다는 얘기다.
실제 삼성그룹(11개)과 동부그룹(10개), 롯데그룹(10개),
한화(000880)그룹 등 주요 그룹사들이 모두 제2금융 계열사를 가지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현대차그룹은 그 수가 절대적으로 적다.
때문에 해결 방안은 그리 복잡하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현대카드, 현대캐피탈,
HMC투자증권(001500) 등 금융 자회사를 매각하거나, 인적 분할해 중간금융지주회사를 설립하는 방안을 통해 금산분리 칼날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현대차그룹 계열사들이 현대커머셜의 지분을 헐값에 지배주주 일가에 넘긴 뒤 그룹의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지원할 것이라는 예상도 내놓고 있다.
한편 현대차그룹에 정통한 재계 관계자는 “순환출자 금지, 출총제 부활 등 경제민주화 법안이 구체화되지 않아 시뮬레이션을 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면서 “경제민주화 법안이 적용될 경우 그룹의 지배구조 붕괴는 물론 글로벌 역량까지 뒤흔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