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무용극 <도미부인>이 국립무용단의 레퍼토리로 다음달 14일부터 19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무대에 오른다. 국립무용단 초대단장을 지낸 송범의 안무로 LA올림픽 초청무대에서 첫 선을 보인 지 근 30년, 송범이 작고하기 전인 1992년 전막공연 이래 꼭 20년만이다.
<도미부인>은 '삼국사기' 속 설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사당패를 이끄는 도미와 도미의 부인 아랑, 아랑에게 매혹된 백제의 계루 왕을 둘러싼 비극적인 이야기를 다룬다. 탄탄한 이야기 구조를 바탕으로 궁중무용인 처용무와 학춤, 민속놀이와 민속무용인 강강술래, 살풀이춤, 씻김굿, 고풀이 등이 어우러지며 한국 무용극의 효시가 됐다.
탄탄한 작품이지만 30년 전 작품이라고 하니 아무래도 책장 깊숙이 꽂힌, 아주 오래된 책을 꺼내든 느낌이다. 이 작품을 국립무용단의 첫번째 레퍼토리로 선택한 이유를 윤성주 국립무용단 예술감독(사진)에게 직접 물었다.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초심으로 돌아가 관객과 함께 호흡하는 국립무용단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 읽힌다. 그가 꿈 꾸는 조용한 혁신이 성공할 지, 또 오래된 명작을 꺼내 다시 읽을 때와 같은 진한 감동이 관객 앞에서 재현될 지 자못 궁금해졌다. 다음은 윤 예술감독과의 일문일답.
- 9월에 올리는 국립무용단 레퍼토리 첫 작품 <도미부인>에 대해 소개해달라. 이 극의 매력은 무엇인가?
▲ <도미부인>은 1984년 LA올림픽 때 초청받기도 했던 국립무용단 레퍼토리 중 하나다. 지금 국립극장의 화두가 레퍼토리 정착이다. 그래서 모든 전속단체들이 어떤 작품을 레퍼토리로 삼을까 고민하고 있는 중이다. 국립무용단의 경우에는 30년 간 무용계에서 큰 역할을 하신 송범 선생님의 대표작 <도미부인>을 첫번째로 무대 올리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80년대 작품이기 때문에 현대의 관점에서 보면 너무 신파적이거나 조금은 전근대적이라 평가할 수 있겠지만 플롯, 작품의 흐름, 우리춤의 색깔 등 여러가지 면에서 훌륭한 작품이다. 84년도 당시 공연됐을 때 굉장히 선풍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송범 선생님은 우리나라에 무용극을 정착시키는 작업을 했는데 그 중 가장 짜임새 있는 작품으로 평가 받기도 한다. 당시 무용수들의 연기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200회 이상 공연을 하는 등 무용계에서는 보기 드물게 장기공연되기도 했다. 그리고 현재 국립무용단의 가장 큰 고민이 정통성, 정체성이 뭐냐는 건데 이런 것들에 대한 답이 될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오래전 작품이라도 이런 탄탄한 작품은 사장시키지 말고 국립무용단 최고의 작품으로 거듭나게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 '무용극'이 부흥해야 한다는 발언을 한 적이 있더라. 드라마구조가 없는 창작극보다는 각 무용수마다 분명한 역할을 맡는 무용극 레퍼토리가 많아져야 한다고 보는 것인지?
▲ 그렇다. 무용극은 한국적 정서와도 맞아 떨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국립무용단은 무용극만 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은 아니었다. 무용극도 우리 무용 중의 한 장르로서 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무용극을 하려면 무대장치, 의상, 스토리 등 여러가지가 첨가돼야 한다. 대형무대가 만들어져야 하는 조건을 갖추고 있는 셈인데 이를 위해서는 많은 재정적 지원이 필요하다. 개인적으로 여러가지 버전의 민간 춤들을 파고 들어가기에는 아무래도 국립단체들이 비교적 경제적 여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곳에서 이런 작업을 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사회적 구조가 그렇다.
과거처럼 스토리를 그대로 재현하는 무용극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현대에 맞게 재창작돼야 하는 것은 당연한 얘기다. 스토리텔링이 기본이 되는 무용극을 넘어서서 일종의 드라마 구조가 존재하되 인물분석에 따른 심리적 변화 표현, 구성의 변화, 상징적 의미 부여 등에 초점을 맞춰 발전시키는 것도 가능하지 않겠나. 안무하는 사람의 색깔에 따라 작품도 바뀌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창작이라는 명목 하에 완전히 새로운 것을 찾는 데 시간과 자본을 지속적으로 투자해왔다. 근데 그게 어떻게 보면 관객은 이해 못하고, 안무자만 이해하고, 심한 경우에는 무용수조차 이해 못한 채 춤을 추는 결과를 초래한 경우가 많았다. 새로운 춤을 발굴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적어도 관객이 그 춤을 보면서 감정적으로 동화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 아무래도 전문무용수지원센터 등에서 활동할 당시 여러가지 창작무용을 본 경험이 영향을 미치는 것인가?
▲ 그렇다. 사실 그런 쪽 지원도 많이 했다. 관념적인 춤 역시 창작의 한 장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무용에 없어서는 안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국립단체처럼 어느 정도는 재정적 지원도 되고 훌륭한 무용수도 많이 보유하고 있는 곳에서만 할 수 있는 장르가 무엇이겠느냐를 따지다 보니 무용극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그래서 여기에 포커스를 맞추겠다는 뜻으로 봐달라.
- 다시 <도미부인> 얘기로 돌아가보자. 전막공연이 올라간 지 20년이다. 그동안 왜 이렇게까지 공연되지 않았을까?
▲ 84년에 초연했으니 정확히 따지면 30년 가까이 된 작품이다. 송범 선생님이 돌아가시기 전인 92년도에 마지막으로 <도미부인>을 공연한 이래 무대화되지 않았다. 그 동안 국립무용단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새로운 예술감독이 오면 자기고유의 작업 스타일이 있으니 그런 쪽으로 포커스를 맞췄을 것이고... 과거 작품을 복원하기 보다는 신작 개발에 조금 더 주력했기 때문에 그동안 <도미부인>같은 예전 작품이 공연되지 않았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국립무용단 창단 이후 50년을 지내다보니 이제까지 그렇게 많은 지원을 받고 그렇게 많은 작품을 생산했는데 그 작품들은 다 어디 나가 있느냐는 문제에 봉착하게 됐다. 그래서 과거 작품이라도 좋은 작품은 재공연하면서 수준을 높이고 한편으로는 새로운 신작도 다시 개발하는 등 두 가지를 병행해서 가자는 취지에서 이번에 <도미부인>을 레퍼토리 첫 작품으로 내놓게 됐다.
- 연출과 안무가 송범에서 국수호로 바뀐다. 송범 버전과 국수호 버전은 어떻게 달라질까?
▲ 아마 <도미부인>을 재연하는 의미는 과거의 것을 깨부수고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자는 쪽은 아닐 것이다. 이번 작품은 첫번째 레퍼토리이기 때문에 틀 자체를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생각이다.
본래 <도미부인>은 양주별산대의 께끼춤 등 작은 동작들, 봉산탈춤의 팔목춤, 진도 씻김굿의 천도장면 등이 한 데 어우러지면서 '우리 춤을 갖고 만든 무용극'이라는 큰 의미를 담았던 작품이다. 다만 당시에는 우리 민속무용을 버라이어티하게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하면 이번에는 시대적 고증에 좀더 심혈을 기울일 생각이다. 과거에 공연이 올라갔을 때에는 신라, 백제, 조선의 배경이 뒤범벅 되는 등 역사적 의미를 찾는데는 소홀한 측면이 있었다. 도미부인 이야기가 백제시대의 설화인 만큼 이번에는 거기에 초점 맞춰서 의상이나 인물의 변화 등에 세밀한 신경을 썼다.
안무나 연출적인 측면은 약간의 보완만 거칠 생각이다. 요즘 세대들은 전통 춤을 춘 경험이 별로 없기 때문에 그들에 맞춰 어떤 부분은 극대화시키고 어떤 부분은 좀 더 부드럽게 만드는 등 세밀하게 다듬을 예정이다. 또 극 중 장면들이 끊어지지 않고 잘 연결되도록 연결되는 포인트에 좀더 신경을 쓸 계획이다.
- 역대 국립무용단 단장들 중에는 무용수 출신이 많다. 윤성주 예술감독처럼 무용수 활동경험 외에 행정경험이 풍부한 경우는 드물다. 그래서 이번 임명이 약간 파격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아무래도 무용단의 여러가지 면을 개혁하는 게 가능할 것 같은데(웃음). 어떤 점이 달라질까?
▲ 대학교수라든지 사회적 명성이 자자한 사람이 아니라 무용단 출신 중에서, 더군다나 여자무용수 출신을 선정한 게 파격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또 50대라는 상대적으로 적은 나이 때문에 개혁적이다, 파격적이다 이런 말들이 나오는 것일텐데... 사실은 나는 보수 속에 조용하게 보이지 않는 개혁을 하는 스타일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볼 때 파격적인 인물은 아니다(웃음). 다만 나는 남들이 큰 틀만 보느라 잘 보지 못하는, 사이사이에 있어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들을 다른사람에 비해 조금 잘 찾는 타입이긴 하다.
또 무용수 역할도 했었기 때문에 무용수둘의 심정, 심리 이런 것들을 다른 사람들보다는 잘 파악할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단원들한테 '앞으로 무용수 이후의 생활은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묻기도 한다. 나는 거기에 관심이 많다. 또 그동안 무용단에 여러가지 불미스러운 일도 있었고, 부딪히는 문제도 많았는데 그런 것은 아마도 윗사람들이 무용수의 입장에 서지 않고 그냥 위에서 내려다보고 지시하는 사람으로서의 역할만 했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가능하면 무용수 입장에 서고자 하는 게 내 생각이다.
작품 선정의 경우에도 '과거의 작품들도 필요한데 왜 그걸 다 버리고 가냐'는 얘기는 그동안 이미 많이들 했다. 다만 추진이 안됐을 뿐이다. 나는 좋게 얘기하자면 생각한 것을 실행에 옮기는 부분에서는 조금 저돌적이다. 미루지 않고 앞으로 추진해가는 추진력은 조금 있는 것 같다. 그런 부분 때문에 아마도 개혁적이라고들 생각할텐데. 어떻게 보면 꼭 했어야 하는 일인데 이제까지 미루고 온 것을 내가 이제 추진한다는 거다. 그게 과연 개혁일까? 조금 의문이 든다(웃음).
- 요즘 융복합 시대라는 얘기를 많이 한다. 국립극장 전속단체 중에서는 우리의 전통을 다루는 무용단, 창극단, 국악관현악단 간 교류가 비교적 잦은 편인데. 융복합 장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 그런 작업들은 꼭 필요하다고 본다. 과거와는 달리 장르가 다 무너진 시대다. 무용에서 보자면 과거에는 현대무용, 발레, 한국무용이라는 세 장르로 다 구분이 됐었는데 지금은 컨템포러리라는 이름 아래 전통과 창작으로 분리가 된다. 전통 춤을 추시는 분들은 전통 쪽으로 계속 가고 나머지 창작에 해당하는 분들은 발레나 현대무용까지 두루 섭렵해야 하는 그런 시대가 왔다.
하지만 사실 융합이라는 것이, 특별히 새로울 것이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춤 이외에 다른 장르, 즉 음악이나 영상, 설치미술 등과 함께 두루 혼합적으로 해내는 작업들을 융복합이라고들 하는데... 사실 무용은 본래가 종합예술이다. 융합이든 복합이든 따로 굳이 그 이름을 내세울 필요가 전혀 없다. 이미 무용에서는 오래 전부터 융복합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춤이 중심이긴 하지만 음악과 미술 등까지 두루 아우르는 게 무용공연이니까. 근데 그걸 굳이 다른 개체로 보면서 음악도, 미술도, 춤도 아닌 애매모호한 장르로 가는 것에 반대한다. 마치 창작춤에서 무용수들이 그동안 겪었던 것처럼 이유도 없는데 이리 오라니까 이리 오고, 저리 가라니까 저리 가며 움직이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이럴 경우 무용수의 생각은 아무 것도 반영되지 않는다. 춤추는 사람 입장에서는 무용극이든 춤극이든 간에 모든 다른 요소들이 춤을 도와주는 역할이었으면 좋겠다는 게 기본적인 생각이다. 그렇게 가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 결국 무용수들이 대중과의 접점 찾는 게 더 시급하다고 보는 건가?
▲ 그렇다. 새로운 작품과 소재를 발굴하고 개발해 관객과 더 가까이에서 만나는 게 국립무용단이 고민해야 할 문제다. 지금 국립무용단은 문학시리즈 개발을 준비하고 있다. 과거에는 설화나 전설 등을 무용에 맞게끔 정리하면 그걸로 춤을 만드는 식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국립무용단도 대작과 소품이라는 두 가지 분류에서 벗어나 중편 스타일의 춤도 개발할 생각이다. 소재는 우리 시나 소설뿐만 아니라 서양 문학에서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된 문학작품의 경우 청소년, 주부 등 특정 대상을 타깃으로 한 무용작품을 개발할 여지가 충분하다.
또 이밖에 다양한 지방색이 두드러지는 굿판을 무대화할 생각이다. 예전에는 동해안과 서해안, 황해도, 경기도, 제주도 등 각 지역마다 특색있는 굿판이 벌어졌는데 이런 것들을 새롭게 무대화하는 작업도 필요하지 않나 싶다. 그래서 현재 굿시리즈, 문학시리즈 등 두 개의 소재를 개발하는 TF팀을 가동시킨 상황이다. 결론은 빠르면 올12월 아니면 내년 정도에는 날 것 같다. 관객들과 더 많은 접점을 찾기 위해서는 두 시간 짜리 대작보다는 30~40분짜리 중편작품의 개발이 시급하다고 본다. 이런 아이디어들을 두고 단원들과 많이 의견조율하는 편인데 단원들 역시 굉장히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