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 헌법재판소가 지난 7일 GS칼텍스(주)와 에이케이리테일(주) 등 2개사의 헌법소원심판을 받아들이고 사실상 대법원의 판결에 대해 위헌 해석을 내리면서, 이 사건이 과연 어떤 식으로 결론 날지에 법조계 안팎의 비상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우리 사법체계상 두 기관이 절충점을 찾지 못하고 충돌하면 끝까지 결론을 내지 못한 채 재판이 다람쥐챗바퀴를 도는 초유의 사태가 빚어질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문제가 된 사건 중 GS칼텍스에 대한 사건은 2008년 12월11일 대법원이 원고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파기환송한 뒤 서울고법에서 2009년 5월13일 원고 패소로 확정됐다.
GS칼텍스로서는 헌법소원과 관련된 소송사건이 이미 확정됐으므로, 패소를 확정지은 서울고법에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
◇GS칼텍스 재심청구 가능
재심이 청구된 경우 법원은 사건을 다시 심리하게 되는데 이때 헌법재판소의 결정, 즉 이미 실효가 된 부칙을 법적공백 등의 이유로 살아 있다고 해석하는 한 위헌이라는 결정을 법원이 그대로 받아들일지에 대해서는 여러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헌재는 대법원의 법률 해석과 적용에 대한 위헌성 여부를 판단했지만, 법률의 해석과 적용은 법원의 고유영역이라는 것이 대법원의 오랜 입장이다.
때문에 법원이 보다 현실적이고 객관적인 법논리로 GS칼텍스 등 권리자를 구제하는 형태로 사안이 마무리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러나 서울고법에서 재심을 기각하고 대법원에서도 종전과 같은 이유로 원고패소 판결을 내려 판결이 확정되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헌재 관계자는 "이런 경우 이론적으로 헌법재판소가 위헌결정을 한 법률을 적용한 판결이기 때문에 헌법소원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재심기각 확정 판결, 헌법소원으로 취소되면 실효
이때 헌재가 GS칼텍스의 헌법소원심판 청구를 받아들이게 되면, 재판이 취소되고 판결의 효력이 없어지게 된다. 이렇게 되면 재판이 당초부터 없었던 상태로 돌아가게 되므로 헌법소원심판의 대상이 된 해당 판결을 GS칼텍스는 다시 청구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대법원을 비롯한 해당 법원이 끝까지 종전의 법률에 대한 해석과 적용 입장을 고수하게 되면 헌법소원심판과 재판의 취소라는 절차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헌법전문가들은 관측하고 있다. 이 경우 3심제라는 헌법상 재판 체계가 뿌리째 흔들리게 된다.
다만, 이런 경우라도 당국이 스스로 나서 헌재의 결정에 따라 '실효된 법규정'의 적용을 취소함으로써 헌재와 대법원의 대립이 해소될 수 있을 가능성도 있다. 헌재의 결정은 모든 국가기관을 기속하기 때문이다. 지난 1997년 12월 발생한 이른바 '이길범씨 사건'이 그런 케이스다.
당시 양도소득세 체납과 관련해 이길범씨 등이 국세청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대법원이 "양도세는 실거래가를 기준으로 부과해야 한다"며 이씨 등의 청구를 기각했다. 그러나 헌재는 이씨 등이 과세처분 근거규정이 위헌이라며 낸 헌법소원심판 사건에서 "실거래가액에 의할 경우 가액에 의한 세액이 그 본문의 기준시가에 의한 세액을 초과하는 경우까지를 포함해 대통령령에 위임한 것으로 해석하는 한 위헌"이라고 결정해 대법원의 판결을 사실상 뒤집었다.
◇'재판소원 금지규정' 평등권 침해로 위헌결정
헌재는 이씨가 재판소원을 금지한 헌법재판소법 68조1항이 평등권 등을 침해한다며 낸 헌법소원심판 사건에서도 "모든 국가권력이 헌법의 구속을 받듯이 사법부도 헌법의 일부인 기본권의 구속을 받고, 따라서 법원은 그의 재판작용에서 기본권을 존중하고 준수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법원이 헌법재판소가 위헌으로 결정하여 그 효력을 전부 또는 일부 상실하거나 위헌으로 확인된 법률을 적용함으로써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경우에도 법원의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이 허용되지 않는 것으로 해석한다면, 재판소원 금지 조항 부분은 그러한 한도 내에서 헌법에 위반된다"고 판시했다.
당시 이같은 결정을 두고 첨예하게 대립했던 헌재와 대법원은 국세청이 나서 이씨 등에 대한 재산 압류를 해제하고 이씨 등도 헌법소원과 소송을 모두 취하하면서 정면충돌을 가까스로 피했다.
◇헌재-대법원 정면충돌 가능성 남아
그러나 이번 사건은 '이길범씨 사건'과는 달리 법령에 대한 해석의 차이가 아니라 대법원이 법률을 해석·적용하는 것에 대해 헌재가 본격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서 정면충돌의 가능성은 남아 있다.
또 1987년 헌법재판소 개원 이후 사법부 최고기관이라는 지위에 대해 두 기관이 자존심 대결을 벌여온 만큼 더더욱 이번 사건의 추이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헌재 관계자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법원이 헌법재판소의 이번 결정과 반대되는 판결을 할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재심이 들어오거나 하는 등 구체적인 사건이 계류된 것이 아니어서 뭐라고 말할 수 없다"며 말을 아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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