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예비유권자 고교생들, 정치를 만나다
정치부 기자의 경기 부천 부명고 수업현장 참관기
2012-01-20 10:11:00 2012-01-20 10:11:00
[뉴스토마토 박수현기자] 18일 오후 경기도 부천시 소재 부명고등학교의 겨울방학 방과후학교 수업 '토론과 논술의 기초'가 열린 2학년 6반 교실.
 
윤리 교과를 담당하고 있는 방민권 교사를 중심으로 둥그렇게 둘러 앉은 남녀 학생들은 사뭇 진지한 얼굴로 부유세 관련 주요 쟁점인 버핏세 도입 논란에 대해 토론을 벌인다.
 
정치권 현안들에 무관심한 요즘 청년들의 모습을 떠올려 볼 때 고교생들의 진지한 모습은 다소이채로운 광경이다.
 
최근 트위터를 비롯한 SNS를 중심으로 정치현안을 다루는 팟캐스트가 인기를 끌고는 있지만, 2000년 이후 실시된 여덟 번의 선거에서 20대의 투표율은 2002년 대선(56.5%)을 제외하고는 28~46%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이날 학생들은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존댓말을 사용하며 자신의 견해를 개진해 나갔다. 아무래도 초반엔 쭈뼛거리겠거니했는데 금새 자발적으로 의견을 교환한다.
 
교사는 초반에 화제가 되는 이슈들과 관련 딜레마를 제시한다. 찬반이 갈리는 주제들을 활용하다 보니, 학생들이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것에도 크게 부담이 없다.
 
수업은 1차 사고 과정을 거친 후 짧게 의견을 교환하고, 교사의 도움으로 2차 숙고 과정을 거친 후 다시 토론을 진행하는 방식이다. 이 때 학생들이 자신의 의견을 번복할 수도 있고, 제시된 주제를 넘어 더 큰 사안이 다뤄지기도 한다.
 
실제로 이날 부명고 학생들은 버핏세 도입이 정당한가로 시작해서, 버핏세 도입이 문제 해결의 본질인지를 탐구했다.
 
한 학생은 "부자들이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버핏세 도입에 찬성한다"면서도 "세금을 내라면 싫어하니까, 부정을 저지르면 과세를 많이 하자"고 제안했다.
 
이에 또 다른 학생은 "부자들이 버는 것 만큼 세금을 내는 것으로 부유세 논란이 사그라들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며 "부유세 이외의 조세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고 조세정의를 지적했다.
 
자유롭게 행해진 토론 끝에 학생들은 단순히 어떤 제도를 도입하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고, 대기업과 상류층이 자본을 독점하면서도 세금은 제대로 내지 않는 시스템에 원인이 있다는 것으로 사고를 확장해 나갔다.
 
교사는 수업 초반 정치적 이슈를 제시한 것 외에, 학생들의 반응을 관찰하며 상황 맥락적으로 응대하며 어려운 개념들을 짚어줬다. 아울러 처음의 사안보다 다뤄지는 토론 주제가 확대될 때, 연관성을 강조해주는 정도로 개입을 최소화했다.
 
이러한 수업 기술을 활용하자 학생들은 토론의 과정에서 익숙치 않은 정치적 용어와 개념들에 혼란을 느끼다가도 이내 인지부조화를 넘어 다음 단계의 사고로 이행할 수 있었다.
 
이렇게 전개된 수업의 말미에는 다뤄졌던 사안을 주제로 논술지를 작성했다. 능숙하게 토론에 참여했던 학생들은 글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에도 익숙해 보였다. 이렇게 제출된 논설문은 교사의 첨삭을 거쳐 정치 현안에 대한 하나의 주장으로 완성된다.
 
수업을 실시한 방민권 교사는 "학생들은 정치가 개인의 삶의 양식을 결정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수업을 하면 아이들이 직관적으로 정의감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다양한 의견이 쏟아지는 토론 속에서도 큰 방향이 흐트러지지 않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한 학생은 소감을 묻는 질문에 "솔직히 트위터보다 이렇게 토론으로 정치적 현안에 내 목소리를 내는 것이 훨씬 재미있다"면서 "예비 유권자로서 정치인들이 우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의젓하게 대답했다.
 
또 다른 학생은 "아직 투표권은 없지만 뉴스에서 나오는 반값 등록금 등의 이슈에 관심이 많다"며 "진짜 시민이 되면 항상 정치에 관심을 기울일 생각"이라고 밝혔다.
 
여기에 지난 10.26 재보궐선거에서 박원순 당시 서울시장 후보가 투표를 실시한 20대로부터 약 70%의 지지를 얻은 점, 민주통합당의 '1·15 전당대회' 국민참여 선거인단 64만여명 중 20대와 30대가 44.4%(25만 2684명)에 달한 점은 변화하는 젊은 층의 모습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젊은 층의 변화는 이들 표심을 잡으려는 정치권의 행보도 바빠지게 했다.
 
한나라당은 돈봉투 구태정치를 청산하겠다며 4.11 총선에서 지역구 후보자의 80%를 오픈프라이머리 방식으로 경선을 치를 것임을 천명했다.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20대인 이준석 비대위원을 발탁하기도 했다.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은 아예 청년 비례대표를 선출, 세대교체에 적극 임하겠다는 각오다. 민주통합당은 슈퍼스타K 방식으로 4명을 뽑을 예정이며, 통합진보당은 남녀 한 명씩을 고려하고 있다.
 
다가오는 총선에서 청년, 학생들이 주도하는 변화된 여론에 어느 정당이 부응하는지 지켜보는 것도 관전 포인트인 이유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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