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송종호기자] 미국이 국제사회에 이란산 원유 수입 중단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는 가운데 우리 정부가 이렇다할 대책없이 미국의 '선처'만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미국은 우리 정부와의 협의에서 '이란산 원유 수입 금지'라는 원칙에서 한 발도 물러서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국내 원유의 10%를 차지하고 있는 이란산 원유 수입을 감축하는 것이 불가피한 상황인 것으로 밝혀졌다.
뉴스토마토가 13일 입수한 주미 한국대사관 문건에 따르면 정부는 이란산 원유 수입 감축에 따른 우리 경제의 타격을 줄이기 위해 '유보(waiver)조항'을 주장하고 있지만, 미국은 부정적인 입장을 분명히 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 정부는 이란 제재 수정안 예외조항에 규정된 면제(exception)나 유보(waiver)를 미국에 요청하는 방식으로 이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면제를 받으면 석유 분야를 포함해 포괄적으로 금수조치를 유예받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해당 문건에 의하면 지난해 12월 대니얼 글레이저(Daniel Glaser) 미국 재무부 테러금융담당 차관보는 우리 정부와의 면담을 통해 "(한국 정부의 대이란 추가 제재 조치 발표는)한국 정부가 국제사회 노력에 동참하고 있다는 차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겠지만 미 대통령의 유보 조항 적용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며 "이란산 원유수입을 상당 수준으로 감축해 나가고 있는지 여부가 무엇보다 중요한 고려요소가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정부가 지난달 16일 발표한, 이란 핵개발과 관련된 단체 99개와 개인 6명에 대한 금융제재 추가대상자로 지정하는 내용의 '대이란 제재추가조치'가 미국의 입장을 바꾸는 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의미다.
미국 입장은 원칙대로 이란산 석유수입 중단조치가 우선돼야 한다는 것이다.
더구나 대니얼 글레이저 차관보는 이란제재 동참 요구를 위해 오는 16일 2박3일 일정으로 방한하는 미국대표단의 일원이다. 로버트 아인혼 국무장관 특보 등으로 구성된 미국 대표단은 방한 기간 동안 외교통상부는 물론 기획재정부와 지식경제부 등 원유 수입과 관련된 부서들과 잇달아 만날 예정이다.
특히 문서에 따르면 글래이저 차관보는 이란산 원유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은 중국, 일본, 한국, 인도, 터키,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이라고 지적하고, "향후 이들 국가들이 어떤 조치를 취해나가는지 관심이 집중되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언급했다. 이란산 원유 수입 금지조치에 한국의 '성의'를 지켜보겠다는 사실상 '협박'이나 다름없는 것으로 해석된다.
결국 정부는 백기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13일 이와 관련 "우리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이란산 원유 수입 감축이 어느 정도는 필요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밝혔다.
다만 정부는 감축 폭에 대해서는 정해진 바가 없다는 입장이다. 김 장관은 이란산 원유수입을 절반으로 감축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는 일부 언론 보도에 대해서 "아직 그런 것은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같은 정부 입장은 코 앞으로 다가온 미국 대표단의 방한에 무대책으로 비춰지고 있다.
물론 정부는 국익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만큼 "어렵고도 조심스럽다"며 "우리측 카드가 언론을 통해 미국에 알려지는 것이 도움이 안된다"는 입장이다.
특히 "정해진 게 아무것도 없다"며 "이번 미국 대표단의 방한은 미국 입장과 법안의 취지내용에 대한 설명을 듣는 자리가 될 것"이라는게 정부 설명이다.
이 같은 정부 입장은 미국 요구를 듣고 그때서야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되며, 결국 미국 대표단이 기존의 입장을 바꿔서 한국 입장을 고려한 '선물'을 주고 갈 것인지 기다려야 하는 처지임을 방증하고 있다. 또한 미국 대표단이 다녀간 이후 이란산 원유수입 감축에 대한 정부 입장이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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