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하늬기자] 지난해 3월 운행을 시작한 'KTX-산천'은 차량 안정화 단계까지 고장이 잦을 수 있기 때문에 철저한 대비가 필요한 것으로 밝혀졌다.
국산 기술로 제작된 `KTX-산천`은 최근 광명역 탈선사고를 비롯해 지난달 19일 천안아산역에서 모터블록 고장으로 차량이 멈추는 등 올초부터 지난달 까지만 16건의 고장이 발생했다.
영업개시 이후 3월까지 집계된 고장건수는 무려 41건으로 10일에 한번 꼴로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이처럼 잦은 고장·사고 때문에 승객들이 큰 불편을 겪으면서 철도 안전에 대한 국민 불신이 확산되고 있다.
이에 따라 코레일은 철도 안전 강화를 위해 사장직속 '안전실'을 신설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차량이 안전화 단계에 접어들기 전 2~3년은 뜻하지 않은 고장이 발생할 수 있어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전망하고 있다.
KTX-산천의 제작사인 현대로템에 따르면 41건의 사례 중 신호장치 10건, 공기배관 10건, 승강문 3건 등 부품 고장으로 인한 사고가 대부분이었다.
신호장치의 경우 해외제품의 국내 환경 적응을 위한 개선 과정에서 무려 10회나 비슷한 고장이 발생하는 등 대처 능력이 부족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산화율 87%...그러나 경험부족 '인정'
현재 한국은 자체 기술 제작 고속열차를 운영하는 세계 네번째 나라가 됐다. KTX-산천은 한국형 고속차량으로 국산화율이 87%에 이른다.
10량 차량 기준으로 105만개의 부품이 들어간다. 이 부품을 납품하는 업체는 200여개나 된다.
이처럼 단기간에 수많은 업체들의 기술로 만들어낸 고속차량이지만 고속철도 운영의 짧은 역사가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고속열차 사고에서 가장 빈번하게 발생한 신호장치 오류의 경우 제작사가 미처 고려하지 못한 부분에서 발견됐다. 기술 부족이나 시스템 오류가 아닌 '경험부족'이 원인이라는 것.
20여년간 고속철도 개발 연구를 맡아온 현대로템 연구소 관계자는 "프랑스 등 고속열차 선진국들의 운영역사와 노하우를 무시할 수 없다"고 털어놨다.
그는 또 "작업오류나 설계 내구성 등이 발견되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리기 때문에 안정화 단계에 이를 때까지 앞으로 1~2년 사이에는 고장이 계속 일어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안정화까지 2~3년...예상치 못한 고장 잦을 것
대한민국의 고속철도 역사는 지난 199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부는 50% 국산화를 목표로 고속철도를 도입할 계획을 수립했다.
철도공사와 제작업체 관계자들은 1995년 고속철도 제작 기술을 배우기 위해 프랑스 알스톰사 공장에서 교육을 받고 돌아와 'G-7'이라는 한국형 고속열차를 개발하게 된다.
이후 2005년 12월 대전에 있는 한국철도공사 본사 회의실에서 알스톰사를 제치고 추가 고속철도 발주 국제입찰 수주에 성공한다.
이렇게 빠른시간내 자체기술로 개발한 고속열차를 운영하는 나라가 됐지만 일본, 프랑스, 독일은 우리보다 40년전인 1960년대 중반부터 고속철도 시대를 열었다. 따라서 수많은 개발·운영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이들 업체도 개통초기 고장이 다수 발생했으나 2~3년 안정화 기간을 거쳐 고장이 감소하는 추세를 보였다.
프랑스 알스톰사의 KTX-1의 경우 2004년 개통 초기고장이 많이 발생했지만 KTX의 모델이 된 TGV-A, TGV-R 시리즈보다 고장률이 낮았다.
또 개통 첫해 81건, 2005년과 2006년 각 50건, 2007~2010년 연간 20여건 등 점차 고장 빈도가 줄어들면서 안정화에 접어든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철도공사 관계자는 "이처럼 철도차량 영업운행을 개시하면 모든 철도는 초기고장이 발생하다가 일정기간의 안정화기간을 거쳐 고장이 줄어드는 특성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 유지보수 인력 줄이면서 안전지침은 "항공기 수준(?)"
제작업체와 철도공사의 분석을 추정해 보면 KTX-산천은 당분간 불가피하게 사고가 발생할 수 밖에 없다.
현대로템은 고장대응 대책으로 96명의 품질전담조직을 구성해 차량기지에 상주시키며 24시간 비상 근무체제를 운영하고 있다. 또 200여명의 연구소 직원을 투입, 사고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현대로템 관계자는 "절대로 인명피해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반면 코레일은 제작업체와 달리 인력과 점검 주기를 줄이고 있다. 코레일은 고장 사고가 끊임없이 발생하자 지난달 13일 부품을 교체하고, 안전지침도 항공기 수준으로 높이는 등의 'KTX안전강화 대책'을 발표했다.
국민들의 불안감을 줄이기 위해 운전, 관제, 설비, 신호 등 철도 운행체계 전반을 재점검하겠다는 것.
그러나 코레일은 최근 몇년동안 인력운영 효율화 등을 위해 현장 유지보수 인력과 평상시 검사 횟수도 대폭 줄이고 있다.
전국철도노조에 따르면 '업무효율화'라는 이유로 지난 2009년 5115명이 일괄감축 됐는데 이중 현장 유지보수 인력이 반이 넘는 2598명에 이르고 있다.
정원감축으로 KTX 운행점검이 3500km에서 5000km로, 신호설비는 2주에서 한달 등 각 분야의 상시적인 점검 횟수가 줄었다.
또 KTX 산천, 경의선·경춘선 등 신규노선이 개통돼 업무를 감당할 수 없자 유지보수 업무 점검 주기를 줄이고, 업무를 민간 외부업체에 위탁하는 방안도 추진됐다.
이에 대해 철도노조 한 관계자는 "업무효율화를 목적으로 현장 유지보수 인력의 대폭적인 감축과 외주화는 열차 사고로 계속 이어질 수 밖에 없다"고 비난했다.
반면 코레일측은 "부품 성능이 향상됐기 때문에 유지보수 횟수를 줄인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도입 당시 5000km 마다 안전점검을 하도록 설계돼 있으며, 프랑스 기술진도 매5000km 운행 시 점검하도록 권장하고 있다는 게 코레일 측의 입장이다.
코레일 관계자는 "인력효율화 관련, 당시 구조조정을 통해 인위적으로 감축한게 아니라 내년까지 퇴직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인원을 줄이겠다는 것"이라며 "KTX 정비인력도 2009년 841명에서 2011년 현재 975명으로 증원돼 인력 축소 때문에 정비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지난달 안전지침을 항공기 수준까지 높이겠다는 코레일 측의 안전관리 계획 진행 상황에 대해서는 답변을 피했다.
또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KTX산천의 경우 제작사인 현대로템 측에 문의하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현대로템 관계자는 "앞으로 당분간 사고가 더 발생하기 때문에 더 많은 전문가 인력이 투입 돼 고장대응 대책과 철저한 점검이 필요할 것" 이라며 "해외보다 짧은역사를 만회하는 방안은 더 철저한 고장 재발방지를 위한 기술검토와 품질향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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