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송정은 기자] 장윤기 사건을 수사하던 광주 광산경찰서 수사팀이 이채원양 살인 사건과 외국인 여성 강간·스토킹 사건의 병합수사를 거듭 요구했지만, 당시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지휘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으로 검찰 수사 결과 드러났습니다.
검찰은 스토킹 신고 부실 대응에 대한 경찰 비판 여론이 확산되자 국수본 지휘부가 "강간은 조용히 하자"는 취지의 지시를 내려 수사에 부당하게 개입한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살인 이틀 전 강간·스토킹…광산서는 '병합수사' 판단
3일 검찰에 따르면 광주지검은 전날 박성주 전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 등 전·현직 경찰 간부 4명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습니다. 이들은 광산서 수사팀의 병합 수사·송치 건의에도 장윤기의 외국인 여성 강간·스토킹 사건과 이양 살인 사건을 분리해 수사하도록 지시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박성주 전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 (사진=뉴시스)
장윤기는 지난 5월3일 직장 동료인 외국인 여성의 주거지에 침입해 강간·감금한 뒤 스토킹했습니다. 이틀 뒤인 5일 광주 광산구에서 귀가하던 이양을 흉기로 살해하고, 이를 막으려던 남학생까지 살해하려 했습니다. 사건 당일 붙잡힌 장윤기는 5월7일 구속됐습니다.
광산서 수사팀은 두 사건이 시간·장소와 범행 수법상 밀접하게 연관됐다고 판단했습니다. 5월7일 경북 칠곡으로 이사한 외국인 여성을 조사한 뒤 다음 날 광주경찰청과 함께 국수본에 병합수사 방침을 보고했습니다.
"강간은 조용히"…살인혐의 먼저 송치
당시 경찰은 지난 3월 '남양주 스토킹 살인 사건'에서 피해 신고에도 적절한 보호 조치가 이뤄지지 않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부실 대응 비판을 받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병합수사 방침을 보고받은 박 전 본부장은 "강간은 조용히 하자", "굳이 우리가 먼저 꺼낼 것은 아니지 않느냐"는 취지로 말하며 두 사건을 각각 다른 부서에서 수사하도록 지시했습니다.
광주경찰청과 광산서는 5월11일까지 병합수사·송치를 거듭 건의했지만, 국수본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검찰은 강간·스토킹에서 이양 살인으로 이어진 경과가 알려질 경우 경찰이 제대로 대응했다면 살인을 막을 수 있었다는 비판이 다시 확산할 것을 박 전 본부장 등이 우려했다고 판단했습니다.
결국 장윤기는 5월14일 살인 혐의 등으로 먼저 검찰에 구속 송치됐습니다. 앞선 강간·스토킹 사건은 이와 분리돼 같은 달 22일 별도로 송치됐습니다.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보완수사를 통해 살인의 성범죄 목적과 앞선 범행과의 연관성을 추가로 규명했고, 6월2일 장윤기에게 강간살인 혐의 등을 적용해 구속기소했습니다.
신태훈 광주지검 차장검사가 지난 2일 전남광주 동구 광주지검 중회의실에서 장윤기 사건 관련 경찰관 수사에 대한 브리핑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수사팀 의혹에서 국수본 '윗선'까지
장윤기에 대한 보완수사 과정에서는 현직 경찰관인 장윤기의 부친에게 수사 상황이 전달되고 주요 증거물이 은폐·조작된 정황도 드러났습니다. 의혹이 불거지면서 검찰은 7월3일 광산서 경찰관들을 입건했고, 수사는 국수본 지휘 라인으로 확대됐습니다.
결국 지난 7월21일 검찰과 경찰 특별수사단은 국수본 관련 부서를 압수수색했습니다. 이후 검찰은 당시 보고·지휘 과정을 추적해 지난 2일 박 전 본부장 등의 분리수사 지시가 수사지휘권의 부당한 남용이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다만 국수본의 분리수사 지시와 광산서 강력팀장·장윤기 부친 등이 연루된 증거인멸·수사정보 유출 의혹 사이의 연관성까지는 이번 수사에서 규명되지 않았습니다.
검찰 "부당 개입"…박성주 "통상적 지시"
검찰은 이번 수사가 경찰 최고 수사지휘부의 일선 수사 개입을 규명한 사례라는 데 의미를 뒀습니다.
신태훈 광주지검 차장검사는 "이번 사건은 단순한 개인의 일탈이 아니다"라며 "경찰 수사 최고 지휘부가 조직 보고 체계를 이용해 사건 수사에 부당하게 개입해 정당한 수사를 방해한 사건"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박 전 본부장은 혐의를 부인했습니다. 그는 2일 발표한 입장문에서 "국수본이 경찰 조직의 부실 대응을 은폐하고 여론의 비난을 피하기 위해 분리수사를 지시했다는 것은 부당한 논리"라며 "기능별로 철저히 수사하고 보안을 유지하라는 통상적인 업무 지시였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이번 사건은 경찰 지휘부의 수사 지휘가 일선 수사팀의 판단과 충돌할 경우 이를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에 대한 과제를 남겼습니다. 특히 사건을 직접 수사하는 현장의 판단이 지휘 과정에서 충분히 반영될 수 있는 절차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조세희 목원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당시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면서 송치를 서두른 것으로 보이지만, 두 사건의 연관성을 고려하면 병합수사하는 것이 타당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경찰 수사권이 독립된 만큼 사건을 직접 수사하는 일선 경찰의 판단이 충분히 반영돼야 한다"며 "일선 수사팀의 팀장·계장이 수사 방향을 확인하는 절차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송정은 기자 johnnyso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