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변소인 기자] 생성형 인공지능(AI)이 벤처 생태계 전반을 흔들고 있습니다. AI가 많은 것을 대체하면서 존립을 걱정하는 벤처기업이 늘어났고 투자자들은 기업들의 방향 전환을 두고 고민이 깊어졌습니다. 벤처캐피털 어센도벤처스를 이끄는 이정석 대표는 단호합니다. "적절한 변화는 필요하지만 AI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잘 하고 있는 것을 뭉개버리면 안 된다"고 말합니다.
지난 28일 <뉴스토마토>와 만난 이 대표는 "요즘 벤처기업들이 찾아와 가장 많이 묻는 질문이 '이대로 해도 되나요', 'AI 시대에 어떻게 해야 하나요'다"라며 "한때 각광받던 기업들이 꽃을 피우기도 전에 AI 시대가 왔다"고 운을 뗐습니다.
이 대표가 제시하는 답은 본질에 대한 고찰입니다. 그는 "매크로가 변화하면 어쩔 수가 없다"면서 "사업의 본질을 들여다보고 새로운 정체성 정의가 필요한지, 필요하다면 어떤 방향의 진화가 필요한지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이어 "AI를 적극 활용하되 정체성을 놓치지 않고 변화해야 한다"며 "제품이나 서비스를 사용하는 사람의 의사결정에 필요한 존재인지 스스로 물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정석 어센도벤처스 대표가 지난 28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서 투자 방향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사진=변소인 기자)
그러면서도 이 대표 역시 투자자로서 깊은 고민을 드러냈습니다. "보편적인 AI에 투자하는 것은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산업을 먼저 바라보고 있는 입장에서 겁도 나지만 한국의 속도가 너무 빨라서 그렇다. 막연해서 불안해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어센도벤처스의 최근 투자 영역은 소프트웨어보다 실체가 있는 사업에 가깝습니다. 산업에 쓰이는 AI, 배터리 소재, 반도체 관련 소프트웨어, 딥테크, 원전이 핵심 카테고리입니다. 최근에는 에너지 분야 원전과 리사이클링이 추가됐습니다. 어센도벤처스는 올해 하반기에는 해외 파트너와 공동 운영하는 북미성장펀드를 5000만 달러 규모로 조성할 계획입니다.
이 대표는 삼성전자·LG전자 연구소를 거쳐 LB인베스트먼트에서 본격적으로 투자 업무를 시작했습니다. 이후 LS그룹 지주회사와 제일기획 투자팀장을 역임한 뒤 지난 2017년 말 신동석 대표와 함께 어센도벤처스를 공동 창업했습니다.
창업 첫해는 펀드 결성에만 1년이 걸렸습니다. 이 대표는 "투자자라고 얘기하지만 펀드가 없는 투자자였다. 결혼 안 한 아빠 같은 상황이었다"고 회상했습니다. 2018년 220억원 규모의 첫 블라인드 펀드를 결성한 뒤 2021년 387억원 규모의 두 번째 블라인드 펀드로 안정 궤도에 올랐습니다. 누적 펀드 자산은 1800억원에 달합니다.
이 대표가 투자를 결정할 때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은 스토리텔링과 화자의 진정성입니다. 그는 "자신이 하는 이야기나 자신이 쓰는 단어를 정확히 알고 얘기하는 사람인지 본다"며 "자기 경험과 지식으로 녹여서 스토리텔링을 잘 하는 사람을 구별해 내려고 한다"고 말했습니다.
어센도벤처스는 창업 초기부터 지역 투자에 공을 들여 왔습니다. 2018년 초 대전에 자체 자금으로 액셀러레이터를 설립하고 대덕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약 3년간 프로그램을 운영했습니다. 현재 대전 스타트업파크에 사무실을 두고 카이스트 출신 창업자들과 지속적으로 교류하고 있습니다.
지역별 투자 전략도 구체화하고 있습니다. 충남에 대해서는 자동차 부품 기업 600여 개의 합종연횡과 구조화를 통한 투자 방안을 논의 중입니다. 전북은 새만금 데이터센터와 신에너지 분야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또 학창시절을 부산에서 보낸 이 대표는 부산을 원전 실증 실험이 가능한 유일한 지역으로 꼽고 관련 산업 성장에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신발산업 등 오래된 사업을 트랜스포메이션 할 수 있는 벤처기업에도 주목하고 있습니다.
어센도벤처스는 사업 초창기 중국·미국·싱가포르를 아우르는 크로스보더 투자를 강점으로 내세웠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전략을 수정했습니다. 이 대표는 "한국에 여전히 기회가 많더라"며 "VC는 투자하고 나서 적극적으로 소통해야 하는데 원거리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가까운 곳에서 기회를 찾기로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변소인 기자 bylin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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