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 풀고 금감원 죄고…은행 자본규제 완화 엇박자
2026-04-17 14:12:55 2026-04-17 15:38:25
[뉴스토마토 이종용 선임기자] 금융당국이 생산적금융 확대를 위해 은행 자본규제 완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내부 기조가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과징금 등 손실사건을 자본비율에 반영하는 은행의 부담을 덜어주겠다면서도 금융사고에 대한 무관용 원칙을 내세우고 있는데요. 은행권 입장에서는 생산적금융 추가 공급 부담에 정책 불확실성이 겹치면서 혼란스러운 상황입니다.
 
'과징금 자본부담 해소' 실효성 의문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정부가 생산적금융 확대를 위해 금융권 자본 규제 완화를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금융당국 내부 정책이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전날 공동으로 '생산적 금융 대전환 회의'를 열고 이런 내용의 은행·보험업권 자본 규제 합리화 방안을 마련했습니다. 핵심 내용은 △운영리스크 손실인식 합리화 △구조적 외환포지션 확대 △내부신용평가모형 개선 등인데요. 이 중 운영리스크 산출 방식 조정은 은행권의 과징금, 보상금 등 손실사건에 대한 자본 부담을 덜어주는 내용입니다.
 
기존에는 은행이 과징금 등 제재를 받을 경우 해당 손실을 최대 10년간 위험가중자산(RWA)에 반영해야 했지만, 이를 3년으로 단축하기로 했습니다. 일정 요건을 충족할 경우 과징금 등을 운영리스크 손실 인식에서 제외하는 방안도 추진됩니다. 금융위는 이 같은 조치를 통해 은행권의 자본 부담을 줄이고, 기업대출 등 생산적 분야로 자금이 흘러가도록 유도하겠다는 구상입니다.
 
문제는 소비자보호를 전면에 내세우며 감독 강화를 강조하는 금감원 정책과 배치된다는 점입니다. 금감원은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사태 이후 불완전판매에 대한 무관용 원칙을 강조하며 은행권 영업 행위 전반을 들여다보겠다는 입장입니다. 고위험 상품 판매에 대한 점검 강화, 내부통제 책임 확대 등 규제 기조는 오히려 강화하는 흐름입니다. 금융권 IT·보안 사고가 반복되는 가운데 법정 상한금을 뛰어넘는 과징금을 부여하겠다고 엄포도 내렸습니다. 
 
특히 운영리스크 손실 인식 제외는 금감원장의 최종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요. 단순히 제도 변경만으로 자동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감독당국이 개별 사안별로 판단하는 방식입니다.
 
은행권 관계자는 "자본 규제 완화 기조에 대해서는 반갑게 생각한다"면서도 "각 은행에 몇 개의 사안을 낸다고 해서 그걸 전부 승인해줄 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다른 관계자는 "금융위가 규제 완화 방향을 제시하더라도 금감원의 재량에 달려 있는 셈"이라며 "생산적금융 확대를 위해 감독권을 행사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본다"고 꼬집었습니다.
 
지난 16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이억원(사진 오른쪽) 금융위원장 주재로 '제5차 생산적 금융 대전환 회의'가 열렸다. 금융위는 과징금, 손실금 등에 대한 자본 부담을 덜어주는 내용의 은행·보험 자본규제 합리화 방안을 발표했다. (사진=뉴시스)
 
"74조원 추가 투자 여력 부족"
 
금융당국은 이번 자본규제 완화 조치에서 은행권에서 74조5000억원의 자금 여력이 추가로 생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당국은 운영리스크 손실인식 합리화로 5대 금융지주 기준 보통주자본비율(CET1)이 최대 26bp(1bp=0.01%포인트) 개선될 것으로 산출했습니다.
 
5대 금융지주는 오는 2030년까지 508조원을 공급하기로 약속한 상태입니다. KB금융지주와 신한금융지주가 각각 110조원, 농협금융지주 108조원, 하나금융지주(086790) 100조원, 우리금융지주(316140) 80조원씩입니다. 이 중에는 정부가 추진한 총 150조원 규모의 국민성장펀드 출자 자금도 포함돼 있습니다. 금융지주사 입장에서는 생산적금융 확대를 명분으로 74조5000억원을 추가 공급해야 한다는 주문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금융사에선 감독당국이 리스크를 엄격하게 보면 실제 대출 확대나 투자로 이어지기 어렵다고 보고 있습니다. 환율 불안정성이 커지면서 외환자산의 가치 절하가 이어진 만큼 자금 여력이 당국 기대치만큼 늘어난다고 보기 어렵다는 얘기입니다.
 
환율이 오르면 외화표시 자산의 원화 환산 규모가 커지면서 별도의 자산 확대 없이도 RWA가 증가하게 됩니다. 특히 해외투자나 외화대출 비중이 높은 은행일수록 이 같은 영향이 크게 반영됩니다.
 
RWA는 대출·투자자산에 위험가중치를 반영한 값으로, 금융사의 실질적인 건전성 부담을 보여주는 핵심 지표인데요. 지난해 RWA가 확대된 배경으로는 기업대출 증가와 환율 상승이 꼽힙니다. 정부가 생산적금융을 강조하면서 위험가중치가 상대적으로 높은 기업대출 비중이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연초부터 기업대출이 증가세를 보이고 있는 데다 원·달러환율 역시 지난해 4분기(1444.70원)보다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RWA 추가 확대가 불가피하다는 분석입니다. RWA 증가는 보통주자본비율(CET1) 등 주요 자본비율 하락 압력으로 이어집니다. 자본비율이 떨어질 경우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 등 주주환원정책에 제약이 생길 수 있어 금융지주 입장에서는 민감한 변수입니다.
 
금융권 관계자는 "자본비율 관리와 주주환원 정책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금융지주 입장에서는 규제 완화보다 감독 불확실성이 더 큰 리스크로 작용한다"면서 "생산적금융 확대를 위한 정책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단순한 규제 완화에 그칠 것이 아니라, 감독 기준과 승인 절차까지 일관된 방향으로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금융감독원은 금융소비자 보호 강화를 위해 각종 불완전판매, 금융전산사고 등에 대해 징벌적 과징금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사진은 이찬진 금감원장. (사진=금융감독원)
 
이종용 선임기자 yo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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