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 기자] 가상자산 2단계(디지털자산기본법) 입법이 장기간 표류하는 가운데 쟁점 사안에 '모피아(재정경제부·금융위원회 출신 관료)'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는 의혹이 커지고 있습니다. 가상자산 정책이 금융위 등 금융당국 지배력을 키우고, 금융 관료들의 자리 늘리기를 위한 사익 추구로 전락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거래소 지분 제한' 이해상충 논란
9일 정치권 및 금융권에 따르면 디지털자산기본법 관련 정부 입장을 조율하는 핵심 관계자로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김 실장은 금융위 부위원장을 지낸 금융 관료 출신으로, 정책 설계와 조율 과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위치에 있습니다.
김 실장은 금융위를 떠난 이후 가상자산 투자사인 해시드 계열 연구조직 '해시드오픈리서치' 대표를 맡았던 이력이 있습니다. 김 실장이 초대 정책실장을 맡으면서 이재명정부에서 가상자산업 활성화에 속도를 낼 것이라는 기대감도 컸습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가상자산거래소 대주주 지분 제한 등 규제 일변도 정책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정부 한 관계자는 "김 실장이 가상자산거래소 등에 대해 관리가 필요한 곳이라며 부정적 입장을 피력하면서 금융위도 규제 강화 기조로 정책 방향을 잡은 것으로 안다"고 전했습니다. 당국이 추진하고 있는 대표적 가상자산 규제로 꼽히는 거래소 대주주 지분 제한은 특정 주주의 지분 보유 한도를 일정 수준 이하로 제한하는 내용입니다.
구체적으로는 개인 또는 법인의 최대 지분을 약 20% 수준으로 제한하고, 법인의 경우 예외적으로 30%대 중반까지 허용하는 방안인데요. 이를 초과하는 지분은 시장 매각 등을 통해 강제로 처분해야 하는 방식입니다. 기존 지분 구조에 대해서도 사후적으로 규제를 소급 적용하는 것이 특징인데요. 국회 입법조사처와 헌법학계에서는 해당 규제에 대해 재산권 제한과 과잉금지원칙 위반 등 위헌 소지가 있다는 의견이 제기된 상태입니다.
금융위가 무리한 의견을 피력하는 과정에서 금융위 출신인 김 실장이 가상자산 투자사에서 몸을 담았던 이력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정치권에서도 김 실장 개입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국민의힘 등 야당 의원들은 최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 실장이 해시드에 유리한 방향으로 정책을 구상하면서 지분 제한이 포함됐다는 얘기가 돌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정무위 관계자도 "금융위가 청와대 입장이라며 거래소 지분 제한을 포함시켜야 한다는 의견을 제출했다"고 전했습니다.
가상자산거래소 대주주 지분 제한이 그대로 통과될 경우 일정 지분 이상을 보유한 기존 대주주들은 거래소 지분을 처분해야 합니다. 가상자산업을 노리는 벤처 투자사나 가상자산 투자사 입장에서는 지분 확보 기회로 이어지는데요. 해시드 역시 대표적인 가상자산 투자사로 블록체인 프로젝트와 가상화폐에 투자하는 벤처캐피털(VC) 성격의 기업입니다.
가상자산업계 한 관계자는 "거래소 지분 구조 변화가 발생하면 은행 등 기관투자자 위주로 진입하겠지만 가상자산업을 노리는 투자사 입장에서도 주요주주가 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며 "가상자산 규제가 까다로워지면서 신규 진입이 어려워졌는데 이들 입장에서는 손 쉽게 시장 진입이 가능해지는 구조"라고 말했습니다.
김용범(가운데) 청와대 정책실장, 이억원(오른쪽) 금융위원장이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대화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꽃놀이패 쥔 금융위
정치권에서는 금융위에 정부안을 발표하라고 압박하고 있습니다. 지난 31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여야 의원들은 권대영 금융위 부위원장에게 "디지털자산기본법의 정부안은 도대체 언제 발의가 되는 거냐"고 따져 물었습니다. 여당 의원 조차 "여야가 법안을 내놓은지 1년이 지났는데 해도 해도 너무한 거 아니냐"며 "정부안이 없다고 확신한다. 없으니까 지금까지 못 내는 거다"라고 지적했습니다. 권대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알겠습니다"라고만 답했습니다.
금융위는 청와대와 여당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당정 간 또는 청와대 내부에서도 디지털자산기본법 중 거래소 제한에 대해 이견이 크기 때문인데 정부부처인 금융위는 '교통정리'를 기다리는 상황입니다.
표면적으로는 정치권으로부터 지적을 받고 있지만 금융위 입장에서는 '꽃놀이패'를 쥐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재명정부의 국정 과제인 만큼 당정은 어떤 방식으로든 디지털자산기본법을 추진해야 하는데, 현재 안대로라면 금융위 권한을 키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김 실장과 금융위 연결 고리도 다시 부각되고 있습니다. 금융위 해체를 중심으로 한 금융감독 체계 개편 때도 김 실장 덕에 기존 금융위 체제를 지킬 수 있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당초 감독 체계 개편 구상은 금융위 해체와 금감원 기능 강화였는데 최종안은 금감원 분리, 소비자보호원 신설로 귀결됐기 때문입니다.
가상자산 생태계 활성화를 위한 제도 정비가 금융 관료들의 자리 늘리기로 변질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디지털자산기본법은 장기간 표류하고 있는 반면, 가상자산시장감시원과 투자자 보호 기구 등 새로운 감독 조직 신설 논의는 비교적 빠르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금융위원회 산하 유관 기관 중심으로 인력 수요가 늘어나면서 모피아들의 재취업 통로로 활용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업계 한 관계자는 "가상자산 생태계를 활성화하는 법 제도 정비는 무기한 미뤄지는데 감독 조직을 확대하는 내용의 규제는 결정과 진행 속도가 빠르다"며 "권한 확대는 결국 관료 조직 확대로 이어진다"고 지적했습니다.
정부서울청사 내 금융위원회 모습. (사진=뉴시스)
이종용 기자 yo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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