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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4월 7일 19:10 IB토마토 유료 페이지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미국·이란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이 막히면서 국내 석유화학 업계가 전례 없는 위기와 맞닥뜨렸다. 중국발 공급 과잉으로 수익성이 이미 흔들린 상황에서 나프타 가격 급등과 원료 수급 차질까지 겹치며 부담이 한층 커졌다. <IB토마토>는 전쟁이 불러온 원가 압박과 공급망 마비의 실태를 진단하고 이번 위기를 계기로 중동 의존도를 낮출 원료 다변화와 고부가가치 중심의 사업 재편 방안을 살펴본다.(편집자주)
[IB토마토 권영지 기자] 미국과 이란 간의 군사적 긴장 고조로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면서 국내 석유화학 산업의 핵심 원료인 나프타 수급에 차질이 발생하고 있다. 국내 나프타 도입 물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중동발 물류가 사실상 마비됨에 따라
롯데케미칼(011170)과
LG화학(051910), 여천NCC 등 주요 석유화학 업체들의 가동률 하락과 공장 셧다운(가동 중단)이 현실화되고 있어 이를 바라보는 시장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수출길 막힌 자동차. (사진=연합뉴스)
수입 나프타 물량 54% '중동산'
7일 업계에 따르면 현재 국내 석유화학 업계의 중동 의존은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기준 국내 나프타 수요는 약 5900만톤으로 집계됐으며, 이 중 45%인 약 2655만톤을 해외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수입 나프타 물량의 54%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중동산인 것으로 파악된다. 결과적으로 국내 전체 나프타 수요의 약 25%가 이번 호르무즈 해협 봉쇄 리스크에 직접 노출된 상태다.
수급 불안은 가격 급등으로 직결돼 NCC(나프타분해시설) 업계의 수익성을 악화시키고 있다. 지난 2월 배럴당 68.51달러 수준이던 두바이유 가격은 3월 말 100.44달러를 상회하며 가파르게 상승했다.
유가 급등에 연동돼 아시아 지역으로 도입되는 나프타 가격 역시 중동 분쟁 이전 대비 약 60% 상승했다. 원료비 비중이 높은 NCC 공정 특성상, 나프타 가격 상승분만큼 제품 가격(에틸렌 등 기초유분)을 인상하지 못할 경우 생산할수록 손실이 발생하는 역마진 구간에 진입하게 된 것이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국내 업체들의 원가 부담은 한계치에 도달한 것으로 분석된다.
'가동 중단' 확산…후방산업도 '도미노 셧다운' 위험
원료 확보 실패와 원가 압박이 겹치면서 국내 주요 석유화학 기업들은 공장 가동률을 축소하거나 선제적 셧다운에 돌입했다. 롯데케미칼은 전남 여수공장의 가동을 약 2개월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회사는 이를 정기보수 일정의 조기 이행으로 설명하고 있지만, 업계에서는 원료 부족에 따른 고육지책으로 평가하고 있다.
여천NCC는 호르무즈 봉쇄에 따른 물량 확보 어려움을 이유로 고객사들에 '불가항력'을 통보했다. 특히 회사는 현재 프로필렌 전용공장(OCU)을 비롯한 일부 라인이 최소 가동 수준으로 하향 조정되거나 멈춰 선 상태에 접어들었다. LG화학 역시 여수 2공장 가동 중단에 이어 여수 국가산업단지 내 추가 설비들의 가동 중단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석유화학 업계에서는 이와 같은 연쇄 조치가 지속될 경우 국내 전체 NCC 가동률이 60% 미만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업계 안팎에서는 나프타 기반의 기초 소재 생산 차질이 석유화학 제품을 원료로 사용하는 후방 산업 전반의 공급망 붕괴로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포장재 및 식품 유통 산업의 경우 나프타 가격 급등으로 플라스틱 용기와 비닐, 필름류의 원가가 약 40% 이상 상승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는 외식 및 배달 산업의 마진 압박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일부 품목에서는 이미 물량 확보 지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정부는 규제 완화와 검사 기간 단축을 통해 대체 포장재 공급을 지원하고 있으나 수급난 해소에는 한계가 있는 상황이다.
자동차 산업의 생산 차질 역시 만만치 않은 문제로 떠올랐다. 범퍼나 내장재 등에 쓰이는 ABS와 수지류 공급이 불안정해지면서
현대차(005380)를 포함한 완성차 업체들은 1·2차 협력사의 원료 재고를 긴급 점검 중이다. 한국은행의 최근 분석에 따르면 석유화학 분야의 공급 충격은 자동차 및 자동차부품 생산 감소를 유발하며, 이는 전체 산업생산 지표 악화의 주요 원인이 될 전망이다. 건설·생활소비재 분야에서도 배관과 단열재, 창호 등에 쓰이는 합성수지 조달 비용 상승과 납기 지연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한편 한국은행은 석유화학 산업 수급 차질 및 구조조정 여파로 올해 산업생산이 최대 6조 7000억원 규모로 감소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이로 인해 고용 감소와 가치 창출 저하 등 거시 경제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분석이다.
정부는 사태 해결을 위해 나프타 수출 제한 조치를 시행하고 수입선 다변화를 독려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나프타 수입 보조금으로 4695억원을 책정해 기업들의 원가 부담 완화를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또 나프타 수출제한과 비축유 방출 같은 공급 간리 대책을 병행하고 있지만, 물류 경로인 호르무즈 해협의 물리적 봉쇄가 해소되지 않는 한 단기간 내에 공급망 정상화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국내 대형 석유화학 기업의 한 관계자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정부 지원책이 일부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근본적으로 중동지역 지정학적 리스크가 해소되지 않는 한 석유화학 산업의 수급 문제가 전반적인 후방산업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권영지 기자 0zz@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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