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6년 04월 15일 06:00 IB토마토 유료 페이지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2026년 정기주주총회 시즌이 끝났다. 상법 개정안 시행을 앞두고 치러진 첫 주총답게 분리선출 감사위원 확대, 집중투표 배제조항 삭제 등을 위한 정관 개정이 봇물처럼 쏟아졌다. 나름 소수주주의 이사회 진입 문턱을 낮추겠다는 입법 취지가 관철되는 듯했다. 하지만 바뀐 정관을 살펴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사진=연합)
먼저 집중투표제가 걸린다.
이번 주총에서 다수의 기업이 이사 임기를 ‘3년’에서 ‘3년 이내’로 바꾸고, 이사별로 임기를 달리 정할 수 있도록 했다. 보선 이사 임기는 전임자 잔여기간으로 제한했다. 동시에 선임 이사 수 상한을 두거나 줄이기도 했다. 집중투표제에서는 선임 이사 수가 많을수록 소수주주가 추천한 후보 당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반대로 이사 수를 줄이면 대주주의 표 분산 부담이 줄어들고, 소수주주 후보의 이사회 진입은 어려워진다. 개정안은 따르되, 집중투표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도록 설계한 것이다.
‘합산 3% 룰’을 둘러싼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기업 상당수는 분리선출 감사위원 확대 조항을 정관에 반영하고 추가 선임에도 나섰다. 하지만 정작 최대주주의 영향력을 실질적으로 줄이는 ‘합산 3% 룰’ 강화 조항은 법 시행 시점에 맞춰 유예하는 방식을 택했다. '합산 3% 룰'이란 감사위원 선임 시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 의결권을 합산해 3%로 묶는 규정으로 개정의 핵심이다. 형식적으로는 상법 개정안을 반영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견제장치는 마지막까지 늦춰놓은 셈이다.
물론 기업들도 할 말이 있다. 경영 안정성 없이는 장기투자나 주주가치 제고도 어렵다. 이들 주장을 단순히 기득권 방어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행동주의펀드 후보가 이사회에 들어와 단기 수익 극대화를 압박하는 상황이 주주 전체의 이익에 맞는지도 따져볼 문제다. 이사 수 상한 설정이나 임기 분산도 사실 특별한 일이 아니다. 적대적 인수·합병(M&A)에서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다.
하지만 논리가 정당성을 가지려면 최소한 개혁 취지를 훼손하지는 않아야 한다. 견제를 줄이기 위한 정관 설계를 ‘경영 안정성 확보’로 포장하는 순간, 시장의 신뢰는 무너지기 마련이다. 이사 수 상한 설정·축소, 임기 분산 같은 집중투표제 효과 최소화 시도에 기관투자자와 자문기관들이 반대한 이유기도 하다.
한국 자본시장의 고질적인 문제의 원인은 대주주에게 과도하게 기울어진 지배구조였다. 이번 상법 개정안은 기울기를 바로잡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이마저도 기술적으로 피해가려 한다면 기업 스스로 시장의 의심을 키우는 꼴이 된다.
정관 개정이 진짜 개혁이 되려면 최소한의 형식이 아니라 권한 분산과 감시 강화를 수용하는 의지가 따라야 한다. 정관은 바꿨지만 개혁은 미뤘다는 비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유창선 금융시장부 부장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