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오대산에 다녀왔다. 이른 아침 안개가 숲을 감싸고 있었고 햇빛은 전나무 사이로 가늘게 스며들었다. 잠시 걸음을 멈추자 숲의 보이지 않는 움직임이 느껴졌다. 지상에서는 나무들이 빽빽이 서서 햇빛을 두고 경쟁하는 듯 보이지만 땅속에서는 전혀 다른 질서가 작동한다. 뿌리와 균류가 촘촘히 연결되어 영양분을 나누고 병충해나 가뭄의 신호를 서로에게 전달한다는 연구 결과가 떠올랐다. 이른바 ‘우드 와이드 웹’이라 불리는 이 네트워크에는 중앙 통제자가 없다. 그럼에도 숲은 무질서에 빠지지 않는다. 각 개체가 연결된 채 전체의 균형을 유지한다.
산에서 내려오며 떠오른 생각은 인공지능이었다. 오늘의 AI 생태계 역시 거대한 네트워크로 작동한다. 수많은 데이터와 알고리즘이 연결되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문명의 전환기라는 표현을 자주 쓰지만 어떤 시기가 되면 그 말이 수사가 아니라 현실이 된다. 지금이 그렇다. 증기기관이 산업의 지형을 바꾸고 인터넷이 정보의 흐름을 뒤집었다면 인공지능은 인간의 역할 자체를 묻고 있다. 무엇을 더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이제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전면에 등장했다.
인공지능은 이미 의료 진단과 신약 개발, 금융 리스크 분석, 번역과 창작 영역까지 확장되었다. 세계경제포럼은 자동화로 사라질 일자리와 새로 생길 직무가 동시에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낙관론자들은 반복 노동에서 벗어난 사회를 상상한다. 기본소득과 주 4일제 논의도 현실 정치의 의제가 되었다. 기술은 인간을 과로에서 해방시킬 가능성을 품고 있다.
그러나 다른 전망도 있다. 일이 줄어드는 자리에서 삶의 목적은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고대 로마의 상류층은 노동에서 벗어났지만 풍요가 황폐한 쾌락과 타락으로 이어졌고 결국 로마 멸망의 단초가 됐다. 반대로 전후 폐허 속 유럽 여러 도시는 협동조합과 복지 제도를 통해 사회적 연대를 강화했다. 조건은 달랐지만 공통점은 분명하다. 기술이나 환경보다 인간의 선택과 가치가 방향을 결정했다는 사실이다.
숲은 각 개체가 연결된 채 전체의 균형을 유지하기 때문에 무질서에 빠지지 않는다. 강원 평창군 오대산 월정사 전나무 숲. (사진=뉴시스)
AI 네트워크는 숲의 구조와 닮았지만 작동 원리는 다를 수 있다. 알고리즘이 제공하는 맞춤 정보는 편리함을 주는 동시에 각자의 좁은 방을 만들기도 한다. 생각이 다른 이들을 차단한 채 확신만 강화하는 현상은 반복적으로 지적된다. 한 그루 나무의 병이 숲 전체로 번지듯 온라인 공간의 왜곡된 정보 하나가 사회 전반의 불신으로 확산되기도 한다. 연결이 많아질수록 책임도 커진다.
기계가 계산과 예측을 대신할수록 인간에게 남는 영역은 무엇일까. 윤리적 판단,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 아름다움을 감지하는 감수성은 여전히 완전히 수치화하기 어렵다. 인공지능이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더라도 숲길에서 문득 바람 소리에 마음이 움직이는 경험까지 동일하게 재현한다고 단정하기는 힘들다.
AI의 파도는 피할 수 없다. 기술을 거부하거나 맹신하는 양극단 대신 방향을 점검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속도와 성과의 경쟁을 넘어 관계와 존엄을 어떻게 지킬 것인지 묻는 일이다. 인공지능 시대는 인간이 쓸모를 증명해야 하는 시간이 아니라 어떤 가치에 따라 기술을 사용할 것인지 선택해야 하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숲이 보여준 연결의 질서를 떠올리며 효율성과 연대 사이의 균형을 다시 생각해 본다.
백승권 비즈라이팅 강사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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