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그룹, 하도급 ‘현금잠그기’…대기업 협력사 ‘돈맥경화’ 주의보
지급액 삼성전자·현대차·한진·SK·한화 순
두산·쿠팡, 현금 외 결제수단 의존도 높아
하도급 대금 지연시 중소기업 부담은 커져
2026-02-19 15:48:31 2026-02-19 15:48:31
[뉴스토마토 백아란 기자]국내 30대 그룹이 협력사에 지급하는 하도급 대금 중 ‘현금’으로 주는 비용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고금리와 경기 불확실성이 지속되면서 대기업들이 현금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어음이나 어음 대체 결제 수단 비중을 높인 결과로 풀이됩니다. 특히 지난해 하도급 업체로부터 자체브랜드(PB) 상품을 납품받는 과정에서 공급 단가를 인하하도록 갑질을 저지른 사실이 드러난 쿠팡과 SK실트론 인수를 위해 현금 확보가 필요한 두산 등에서 어음 의존도가 높았습니다.
 
테헤란로를 따라 늘어선 서울 강남구의 고층 건물들. (사진=연합뉴스)로
 
19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공시된 ‘지급수단별·지급기간별 지급금액’을 분석한 결과, 작년 하반기 국내 30대 그룹의 하도급대금 지급액은 총 4조9449억원으로 집계됐습니다. 이는 지난해 상반기(4조9025억원) 대비 0.86% 증가했지만 전년 동기(5조3438억원)보다는 감소한 수준입니다.
 
기업별 하도급 지급액을 보면 삼성전자가 1조3715억원으로 가장 많았으며 현대차(8271억원), 한진(7018억원), SK(5342억원), 한화(5001억원) 순으로 뒤를 이었습니다. 수주·생산 규모가 큰 제조·물류 대기업이 하도급 대금 지출에서도 상위를 차지한 모습입니다.
 
눈길을 끄는 것은 결제의 질입니다. 현금·수표나 만기1일 이하 어음대체결제수단, 만기10일 이하 상생결제와 같은 현금 결제 비율(단순 평균 기준)은 92.17%로 1년 전보다 1.31%포인트 하락했습니다. 반면 만기 하루 이상 60일 이하의 어음 대체 결제수단과 어음 비율은 19.6%에서 24.%로 늘었습니다. 대기업들의 자금 운용 방식이 보수적으로 변한 것입니다.
 
업계에서는 경기 둔화와 금리 부담 등으로 대기업의 자금 사정이 빠듯해지면서, 하도급 거래에서도 현금 보유를 우선하는 전략이 강화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현금 결제는 협력사의 현금 흐름을 즉각적으로 안정화하는 핵심 수단이지만, 대기업들이 자금 사정 악화와 미래 불확실성에 대비해 현금을 내부에 쌓아두면서 어음 등 대체 수단 비중을 높인 것으로 풀이됩니다.
 
(인포그래픽=뉴스토마토)
 
현금 대신 어음이나 어음 대체 결제수단 비중이 커지면, 협력사 입장에선 운영 자금 조달 비용이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어음은 만기까지 기다려야 하고, 어음할인료와 같은 금융비용도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이재명 대통령은 설 명절을 앞두고 삼성과 LG가 협력사 납품 대금을 조기에 지급하기로 한 결정에 대해 ‘협력사 입장에서 가장 체감도가 큰 상생 조치’라고 치켜세우기도 했습니다. 대기업들이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해 쌓아두는 현금이 협력사들에게는 ‘돈맥경화’로 작용할 수 있어섭니다.
 
실제 일부 기업의 경우 ‘현금 잠금기’에 나서며 어음 대체 결제수단에 대한 의존도가 심화되는 실정입니다. 협력사에 대한 어음 대체 결제수단(만기 1일 이상 60일 이하) 비율을 보면 두산이 올해 하반기 71.37%로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습니다. 두산의 현금 결제 비율은 28.63%로 1년 전(38.34%)보다 10%포인트 가량 급락했습니다. 지난해 SK실트론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면서 실탄 확보가 필요해진 결과로 풀이됩니다.
 
같은 기간 이커머스 공룡인 쿠팡의 현금 결제 비율은 72.21%에서 57.6%로 낮아졌으며, 27.79%였던 어음대체결제수단(1일 초과 60일 이하 비율)은 42.40%로 늘었습니다. 이밖에 한국앤컴퍼니의 현금 및 수표 결제도 55.8%에서 51.68%로 떨어졌으며 KT의 만기 60일 이하 어음은 0.35%로 나왔습니다.
 
이와 관련해 공정위 관계자는 “하도급대금 결제조건 공시의무 이행 여부를 철저히 점검하는 한편 하도급대금 관련 불공정관행을 면밀히 감시해나갈 계획”이라고 했습니다.
 
백아란 기자 alive020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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