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동 파노라마)'배당권'이 뭐길래…'제왕적 대법관'이냐 '판사회의'냐
민주당 법안, 본회의 통과…판사회의 권한 ↑, 대법원장 영향력 ↓
법원 내부선 '무작위 배당 원칙' 고수 움직임 보여…위헌 논란도
법조계 "아직 대법원장 입김 가능성…'무작위'는 절대 원칙 아냐"
2025-12-23 16:33:00 2025-12-23 16:33:00
[뉴스토마토 강석영 기자] 민주당이 추진한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이 23일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각급 법원 판사회의가 내란재판부 구성을 의결하도록 해 대법원장 권한을 견제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다만 법원 안에서는 "'무작위 배당' 방식을 유지해야 법안의 위헌 논란이 완전히 사라진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반면 법조계에서는 "무작위 배당도 대법원장의 영향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며 "무작위 배당 그 자체가 재판 독립의 절대 원칙은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이날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민주당의 '내란·외환·반란 범죄 등의 형사절차에 대한 특례법안'의 핵심은 내란재판부 구성 방식입니다. 처음 법안을 논의할 땐 '법무부 장관 등 외부 인사가 참여하는 추천위원회가 법관을 2배수 추천한 뒤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조항'이 있었지만, 삭제됐습니다. 대신 재판부 구성은 법원에 완전히 맡겼습니다. 각급 법원 판사회의가 전담재판부 기준을 정하면, 해당 법원 사무분담위원회가 사무를 나누고 최종적으로 판사회의 의결을 거치도록 했습니다. 법원조직법상 사법행정 심의 기관인 판사회의에 의결 권한을 준 겁니다. 대법원장과 각급 법원장이 사건 배당에 미치는 영향력을 크게 줄였습니다.
 
서울고법이 위치한 서울 서초구 서울법원종합청사. (사진=뉴시스)
 
내란재판부 설치는 조희대 대법원장과 '지귀연 재판부'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됐습니다. 지귀연 재판부는 기존 구속기간 산정 관행을 깨고 윤석열씨에 대한 구속취소 결정,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줬습니다. 조 대법원장도 이재명 대통령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 관해 파기환송을 선고, 논란에 불을 지폈습니다. 이런 탓에 정치권과 국민들은 사법부가 12·3 계엄을 일으킨 내란범들을 제대로 단죄할 수 있을지 의문을 품게 됐습니다. 
 
지귀연 재판부가 내란 혐의 사건을 배당받은 과정에도 의혹도 불거졌습니다. 지귀연 재판부는 지난 1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사건을 무작위 배당받은 뒤 윤씨 사건 등까지 담당하게 됐습니다. 형식적으로 무작위 배당이었지만, 적시처리사건이었다가 일반사건으로 바뀐 뒤 지귀연 재판부에 배당됐다는 점에서 '법원 내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한 게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판사 출신 변호사는 "적시처리사건은 당직처럼 순서가 있는데, 그 재판부를 제외하려고 일반사건으로 돌렸을 가능성이 있다"며 "사법농단 당시 진보당 배당 조작 의혹도 있지 않았느냐"라고 지적했습니다.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무작위 배당이 진짜 무작위인지 알 수 없다"며 "이런 저런 이유로 재판부들을 배제하고 대법원장 입맛에 맞는 모집단에서 무작위 배당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재판부 설치를 위한 예규를 내놨지만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당시 대법원은 민주당 수정안에 있던 추천위원회 법관 지정에 반대하며 무작위 배당으로 내란재판부를 만들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대법원장이 배당 권한을 놓치기 싫은 것"이라며 "내란 사건을 전담한다는 점만 빼면 기존 실무와 다를 게 없다. 사실상 내란재판부를 만들지 않겠다는 의미"라고 꼬집었습니다.
 
서울고법이 위치한 서울 서초구 서울법원종합청사. (사진=뉴시스)
 
사실 그동안 무작위 배당은 '재판 독립'을 지키는 불가침 영역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5차 사법파동의 계기가 된 신형철 전 대법관의 임의배당 논란이 대표적 사례입니다. 신 전 대법관은 이명박정부 당시 서울중앙지법원장이었습니다. 그런데 2008년 촛불집회 사건을 보수성향 재판부에 몰아줬다는 의혹이 불거지자, 일선 법관들이 이에 항의하며 연판장을 돌린 겁니다. 이 사건 이후 임의배당 대신 전자배당 방식이 보편화됐습니다.
 
법원 안에선 '무작위 배당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서울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민주당 법안만 보면 기존 법원 배당 절차와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면서도 "사실상 특정 사건을 겨냥해 법률로 전담재판부를 만들었다는 논란이 있다. 특정 사건에 특정 법관을 지정했다는 임의배당 논란까지 더해지면 위헌 가능성이 더욱 커진다"고 했습니다. 다른 부장판사도 "재판부 구성 어떤 단계든 무작위 배당이 보장돼야 한다"며 "임의 배당은 내부 반발을 사게 될 것이다. 전자 배당은 외부뿐 아니라 내부적 측면에서도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법조계에서 '무작위 배당이 절대 원칙은 아니다'는 반론도 제기됩니다. 법원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헌법과 법률 어디에도 무작위 배당 원칙은 없다"며 "헌법상 권리가 보장되고, 법관 지정에 정치적 편향성만 없다면 법관 지정이 어떤 사건에선 합리적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무작위 배당이 절대 원칙이라면 대법원이 그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며 "이유도 설명하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무작위 배당 입장만 고수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강석영 기자 ksy@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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