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무장지대(DMZ)를 둘러싼 논쟁이 다시 불붙고 있습니다. 민주당 소속 이재강·한정애 국회의원이 각각 발의한 '비무장지대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법률(일명 DMZ법)'이 계기가 됐습니다. 이 법안은 현재 유엔군사령부가 DMZ 남쪽 지역 출입 관리를 모두 하는 것과 달리, 비군사적이며 평화적인 목적의 출입에 대해서는 한국 통일부 장관이 권한을 행사하도록 규정했습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지난달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법안 처리 관련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1953년 7월27일 한국전쟁 교전 쌍방은 정전협정을 맺으면서 양쪽 군대 중간 지점에 군사분계선(MDL)을 긋고 이 선으로부터 남과 북 각각 2km씩 합계 폭 4km의 완충지대(비무장지대)를 설정했습니다. 비무장지대 북쪽은 북한군과 중국군(당시 중국공산당 군대)이, 남쪽은 유엔군사령부가 관리하기로 정했습니다.
당시 한국 정부는 정치적인 이유로 정전협정에 서명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남쪽 구간을 유엔군사령부가 도맡게 됐죠. 세월이 흐르면서 현장 상황이 많이 바뀌었는데요. 오늘날 비무장지대 남쪽 구간은 한국군이 100% 관리합니다. 비무장지대로 들어가는 통문도 한국군이 여닫고 있죠. 유엔사는 병력은 넣지 않고 출입 승인 권한만 행사하고 있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유엔사가 DMZ를 과도하게 통제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벌어졌습니다. 한국 정부가 DMZ에서 학술 조사나 민간 행사를 하려고 할 때 유엔사가 출입을 불허하곤 해서입니다. 최근에는 김현종 국가안보실 차장이 DMZ에 들어가려는 것을 유엔사가 차단했죠. 사람들은 "DMZ도 한국 정부의 주권 행사 지역"이라며 유엔사 처사를 비판하기도 합니다. 한마디로 말해, DMZ가 안정감 있게 관리되지 않고 있죠.
이재강·한정애 의원은 군사적 목적과 비군사적 목적을 구분해, 유엔사와 한국 정부가 나눠 관리하도록 하자고 대안을 냈습니다. 그런데 유엔사는 12월17일 공식 성명까지 내어 “정전협정에 따라 DMZ 통제 권한은 유엔사에 있다”고 강하게 반박했습니다.
우리 정부에서 통일부는 이 법안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국방부와 외교부는 유엔사와 잘 협의해야 한다면서 어정쩡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아마 한·미 동맹에 금이 가는 것처럼 비칠까 걱정하겠죠. 국민의힘은 "유엔사 권한을 흔드는 것은 안보 자해"(12월19일 박성훈 수석대변인 논평)라고 주장했습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상황 변화와 현실에 맞고 관련 당사자가 두루 이해할 만한 해법을 마련해야 합니다. 이런 차원에서 유엔사 대신에 주한 미군을 주체로 세우고, 한국군과 주한미군이 공동으로 DMZ를 관리하는 아이디어를 필자는 제안합니다. 다음과 같은 논거 때문입니다.
북한군이 DMZ 북쪽 구간을 관리하며 군사분계선 일대에서까지 철책 작업을 하고 있지만, 한국군은 DMZ 관리 권한도 부여받지 못하고 있다. (사진=합참 제공.뉴시스)
첫째, 한국군이 DMZ를 100% 관리하는 현실을 반영해야 합니다. DMZ 북쪽 구간은 애초 북한군과 중국군이 공동 관리했습니다. 중국군이 철수한 뒤로 북한군이 이 구간을 전적으로 관리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북한군 병사들이 DMZ 북쪽 구간에 수시로 진입해 군사분계선에 철책을 설치하기도 합니다. 한국군은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습니다. 북한군이 군사분계선을 넘어올 때 경고 방송과 경고 사격을 가해 해당 인원을 몰아냅니다. 같은 DMZ에서 북한군은 활개 치는데, 한국군은 관리 권한이 없다니 불합리하기 짝이 없죠. 현실에 맞도록 한국 국방부에 권한을 부여해야 합니다.
둘째, 유엔사보다는 주한미군 사령부로 미국 쪽 DMZ 관리 주체를 명확히 세우면 좋겠습니다. 1950년 유엔은 북한군의 대한민국 침략을 저지하기 위해 유엔군 파병을 결정했습니다. 유엔군사령부를 구성했으며 여기에 미국을 비롯한 16개국 군대가 참여했습니다. 1953년 정전협정 체결 당시 유엔사는 유엔 결의에 기반한 유엔 기구 성격이 확고했죠.
그 뒤 72년 세월이 흘렀습니다. 오늘날 유엔사는 유엔에 업무를 보고하거나 유엔의 업무 지시를 받지 않습니다. 유엔사는 이제 유엔 기구가 아니라고 유엔 사무총장이 서한을 통해 밝히기도 했죠. 유엔사는 미국 합참에 보고하고 지시를 받습니다. 미군 중심 조직에 가깝습니다. 유엔사에는 행정 업무 인원이 소수 근무하며, 전투 병력은 많지 않다고 합니다. 유엔사보다는 주한미군 사령부가 한미 연합방위의 실질적인 파트너죠. 간판과 실체가 일치해야 일하기 편합니다. 한·미 연합방위의 실질적 파트너인 주한미군이 DMZ 관리 주체가 되면 DMZ를 훨씬 안정적으로, 책임감 있게 관리할 수 있을 겁니다.
셋째, DMZ는 군사지역 성격이 강합니다. 국방부가 앞장서는 게 합리적입니다. 이재강·한정애 의원 법안을 보면 통일부가 DMZ의 평화적 이용 업무를 총괄하도록 했습니다. 일리 있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DMZ는 남과 북이 뜨겁게 대치하는 위험한 군사지역입니다. 국방부가 관리 중심을 맡고 통일부와 협조하는 게 안정적일 겁니다.
DMZ 관리 주체를 완벽하게 바꾸려면 정전협정을 개정해야 합니다. 남북 대화가 막힌 현실에서 협정을 당장 고치긴 어렵죠. 한·미가 협의하면, 협정을 그냥 둔 상태로도 DMZ 남쪽 구간을 관리하는 한·미 공동 군사위원회 정도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관련 당사자들이 열린 자세로 고민해보면 좋겠습니다.
필자 소개/박창식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 광운대에서 언론학 석사와 박사를 했다. 한겨레신문 정치부장 논설위원을 지내고 국방부 국방홍보원장으로 일했다. 뉴스토마토 K국방연구소장과 객원논설위원을 맡고 있다. 국방 생태계에서 소통을 증진하는 방법에 관심을 두고 있다. <국방 커뮤니케이션> <언론의 언어 왜곡>과 같은 책을 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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