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한국은 왜 HEU가 아닌 'LEU 기반 핵잠'을 선택해야 하는가
'자립+협력형' 제3의 모델 구축해야
2025-12-11 10:36:01 2025-12-11 11:29:39
지난 10월 22일 경남 거제 한화오션(042660)에서 열린 장영실함(3600톤급) 잠수함 진수식에 참석한 주요 인사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해군)
 
한국형 핵추진잠수함(K-SSN) 사업이 본격화되면서 일각에서 우리도 호주처럼 고농축우라늄(HEU) 기반 추진체계를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한다. 그러나 기술·외교·전략적 요소를 종합하면 한국이 HEU를 선택해야 할 이유는 사실상 없다. 오히려 HEU는 불필요한 갈등과 비용, 국제적 부담을 초래할 뿐이다.
 
우선 기술적 측면에서 그렇다. 한국은 이미 APR1400과 차세대 소형모듈원자로(SMR) 개발 과정에서 저농축우라늄(LEU) 기반 고정밀 제어 기술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확보했다. 군사용 원자로 설계는 이 민수 기술을 바탕으로 출력 밀도와 안전계통을 군사 환경에 맞게 최적화하면 된다. 즉 LEU 기반 군용 원자로는 새로운 기술을 처음부터 개발해야 하는 사업이 아니며, 이미 확보한 기술의 확장에 가깝다. 한국이 HEU를 선택해야 할 기술적 이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둘째, 외교·안보적으로도 HEU는 한국의 선택지가 될 수 없다. HEU는 미국과 국제원자력기구(IAEA), 미국 핵공급그룹(NSG)이 가장 민감하게 규제하는 핵심 영역이며, 핵무기 전용 가능성과 직결된다. 한국이 HEU 추진체계를 요구하는 순간, 국제사회는 한국을 '잠재적 핵확산 우려국'으로 의심할 수밖에 없고, 불필요한 정치적 소모전까지 발생할 수 있다. 반면 LEU는 국제 규범의 틀 안에서 운용이 가능하며, 미국 비확산 전문가들조차 “LEU 기반 핵잠은 비확산 체제를 강화한다”고 평가한다.
 
셋째, LEU 선택은 국제정치적으로도 한국에 유리한 구조를 만든다. 한국이 LEU를 기반으로 핵잠을 확보한다면 비확산 규범을 전혀 훼손하지 않으면서 '책임 있는 핵잠 운용국'이라는 이미지를 얻는다. 이는 향후 한·미 간 별도 협정(Article 14 IA), IAEA 사찰체계 설계에서도 한국의 협상력을 높여주는 전략적 자산이 된다.
 
일부에서는 "LEU는 핵잠 성능이 떨어진다"는 우려를 제기하지만 사실과 거리가 멀다. 핵잠의 성능을 결정하는 요소는 단순한 농축도가 아니라 원자로 출력, 열효율, 연료 집적도, 열 제거 능력 등 종합 설계에 달려 있다. 실제로 세계 최초 핵잠 USS 노틸러스는 약 20%대 LEU 계열 연료를 사용하고도 1958년 북극해를 통과하며 사실상 '세계 일주 항해'를 수행했다. 이는 LEU가 작전 반경이나 지속 속력에서 결코 부족하지 않다는 역사적 증거다. 2020년대 한국 기술력은 그보다 훨씬 발전했으며, 한국형 LEU 기반 원자로는 동중국해·태평양을 포함한 모든 원양작전 요구 조건을 충족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
 
또한 "LEU는 연료 교체 주기가 짧아 작전 공백이 생긴다"는 주장도 사실이 아니다. 연료봉 교체는 10여년 주기로 1년 반 정도 이뤄지는 잠수함 정기 수리 기간에 맞춰 수행되며, 이는 전 세계 모든 핵잠 보유국이 동일하게 운용하는 방식이다. 별도의 추가 작전 공백이 발생하지 않는다.
 
종합하면 한국형 LEU 모델은 호주의 HEU 기반 오커스(AUKUS) 방식이나 프랑스의 완전 자립형 LEU 방식과도 다르다. 한국은 잠수함의 설계·건조·운용을 독자적으로 수행하면서, 연료 공급과 사찰·제도 설계는 미국 및 국제기구와 공동 구조로 운영하는 '자립+협력형 제3의 모델'을 구축할 수 있다. 이 구조는 국제 규범과 충돌하지 않으면서도 한국의 전략적 자율성을 최대화하는 최적의 균형이다.
 
핵잠의 연료 선택은 단순한 공학적 사안이 아니라 향후 10~20년 대한민국 안보 전략의 방향을 결정하는 국가적 선택이다. HEU는 한국이 선택해야 할 이유도, 선택해서는 안 되는 이유도 분명하다. 반대로 LEU 기반 모델은 기술적 타당성, 외교적 수용성, 국제정치적 이익, 작전 성능, 비확산 책임성까지 모두 충족하는 현실적이자 전략적인 해답이다.
 
결국 한국의 선택은 핵잠 확보를 넘어,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에서 어떤 방식으로 신뢰받는 책임 있는 해양 강국으로 자리매김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문제다. LEU 기반 한국형 핵잠 모델은 그 길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문근식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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