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에 중국 맹비난한 트럼프, 2025년에는 어정쩡
(황방열의 한반도 나침반) '국가안보전략' 8년 만에 극적 변화
2025-12-12 06:00:00 2025-12-12 06:00:00
'트럼프 1기' 정부 시절인 2017년 12월에 공개한 '국가안보전략'(NSS)은 중국을 러시아와 묶어서 "미국의 권력, 영향력, 이해관계에 도전하며 미국의 안보와 번영을 약화시키려 시도하고 있다"(China and Russia challenge American power, influence, and interests, a empting to erode American security and prosperity)고 진단했다. 미국에 대한 '도전자'라는 것이다. "매년 중국과 같은 경쟁국들은 수백억 달러에 달하는 미국의 지적 재산을 훔친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또 "미국의 가치와 이익에 반하는 세계를 만들고 싶어한다"고 했다. 그래서 종합적으로 중국은 '수정주의 세력'(evisionist power)이라는 것이었다.

지난 10월30일 부산에서 시진핑(오른쪽)과 악수하는 트럼프(왼쪽). (사진=연합뉴스)
 
미국은 1987년 레이건 행정부 시절 때 처음으로 NSS를 의회에 보고하면서 공개했고, 아들 부시 행정부부터는 대략 대통령 4년 임기마다 1회씩 발표했다. 해당 시기 미국의 안보 목표와 우선순위, 전략의 방향성을 천명하는 '대통령의 국가전략 최고 문서로, 미국의 국가전략 피라미드의 정점에 위치한다. 국방부의 '국가방위전략'(NDS)도 NSS에 맞춰 결정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인사말로 시작하는 이 NSS가 중국을 '수정주의 세력'이라고 규정한 것이다. 미국에서 '수정주의 세력'은 단순한 경쟁자(competitor)가 아니라 미국이 주도해온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근본적 재편을 노리는 세력이라는 뜻이라는, 점에서 중대한 의미를 가진다.
 
그 이듬해 2018년, 3월 트럼프는 연간 500억달러 규모의 중국 수입품에 25%의 고율 관세 부과를 허용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미·중 무역전쟁의 시작이었다. 
 
"베이징과 상호이익적 경제 관계 유지하면, 미국 경제 40조달러로 성장"
 
한 번을 건너뛰고 대통령 권좌에 복귀한 트럼프가 지난 4일, 역시 자신의 인사말로 시작하는 NSS를 발표했다. 역시 최대 관심은 중국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한마디로 어정쩡하다. 어디서나 자화자찬, 큰소리치는 트럼프의 모습은 찾기 어렵다. 중국에 대한 경계심을 드러내는 대목에서는 '비서구권 경쟁국' '타국' 정도로 돌려서 표현했고 그나마 가장 강한 표현이 '잠재적 적대세력' 정도였다. 반면 중국과의 경제 협력을 강조하는 대목에서는 에두르지 않고 중국이라고 직접 표현했는데, 그 내용이 눈을 휘둥그레 뜨게 만든다.
 
"미국이 성장 궤도를 유지하고, 베이징과의 진정한 상호 이익적 경제 관계를 유지하면 2025년 현재 30조달러 규모의 경제가 2030년대에는 40조달러로 성장할 것"이라며, "이는 세계 최대 경제 대국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는 부러움을 살 만한 위치에 우리를 놓을 것"이라고 한다. 중국과의 경제 협력이 미국이 세계 최대 경제 대국이라는 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 '전제 조건'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중국과의 경제적 관계를 재조정할 것"이라고 했다. 이 재조정이 어떤 조정일까?
 
'돌아온 트럼프'는 올해 4월 '해방의 날'이라며 다시 무역전쟁의 포문을 열었다. 그러나 전 세계 대상 무역전쟁에 국·내외적 반발에 거셌고, 결정적으로 중국이 미국의 취약점인 희토류 수출 통제로 전면 반격하면서 '트럼프의 패배'라는 평가 속에 막을 내리고 말았다. 8년 만에 나온 NSS의 극적 변화는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물론 중국을 겨냥한 제1도련선(일본 열도와 오키나와에서 대만–필리핀–말라카 해협) 방어는 적극 강조하면서 "미군 혼자 이를 할 수 없으며 해서도 안 된다"고 했다. 한국과 일본에 방위비 증액, 항만 접근, 연합 훈련 등 적극적 역할을 주문한 것이다. 그런데 대만 방어 관련해 "이상적으로는(ideally) 군사적 우위를 유지하여 대만을 둘러싼 분쟁을 억제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고 한다. 이상적으로는? 중국에 대한 군사적 우위가 보장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인가? "대만 해협에서 어떤 일방적 현상 변경도 지지하지 않는다"(does not support)는 표현도, 그 이전 미국의 '반대한다(oppose)'에서 물러선 것이다. 트럼프는 이에 앞서 지난달 24일 시진핑과 통화하면서 "미국은 중국에 있어 대만 문제의 중요성을 이해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TSMC가 아무리 대만의 '호국신산'(護國神山·나라를 지키는 신령스러운 산)이라 해도 대만으로서는 범상하게 지나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중국 매체에 나온 6일 중국군(붉은색) 전투기와 일본 자위대(푸른색) 전투기 비행도. (사진=연합뉴스)
 
미 국방장관은 "중국의 군사력 증강 존중"…중·일 충돌에도 트럼프는 침묵
 
피트 헤그세스 국방 장관이 6일 '레이건 국방포럼'에서 한 "냉전 이후 이어진 단극체제는 끝났다"(that unipolar moment is over)는 연설은, 이틀 전 NSS의 오디오 버전이라 할 만하다.
"미국은 중국과 안정된 평화, 공정한 무역, 상호 존중의 관계를 추구한다"면서 "우리는 중국을 압도하려 하지도, 그들의 성장을 옭아매려 하지도 않는다"고 했다. 심지어 "중국이 진행하고 있는 역사적인 군사력 증강을 존중한다"는 취지의 발언도 나왔다. 그러면서 "미국이 추구하는 것은 지배가 아니라 세력 균형이며, 우리의 목표는 중국이 미국이나 동맹을 압도할 능력을 갖추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고 정리했다.
 
지난 6일 일본 오키나와섬 남동쪽 공해 상공에서 중국 공군 함재기가 일본 항공자위대 F-15 전투기에, 미사일 발사 직전 행위로 인식되는 '레이더 조준'을 실시했다. 이어 지난 9일에는 중국군 폭격기 2대와 러시아군 폭격기 2대가 동중국해에서 일본 시코쿠 남쪽 태평양까지 공동 비행하는 노골적인 무력시위를 벌였다. 지난달 7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대만 유사시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통한 개입' 시사 발언으로 촉발된 중·일 갈등이, 군사적 대치 상황으로 번진 것이다.
 
트럼프는 일본의 지원 요청에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오히려 다카이치에게 중국을 자극하지 말라고 했다. 이제 트럼프의 미국은 G2의 한 축인 중국의 '세력권'을 인정하려는 것일까?
 
트럼프는 10월30일 부산에서 시진핑과 한 정상회담 전후로 미국과 중국을 묶어 'G2'라고 표현했다. 그는 내년 4월 중국 방문 계획을 공개하면서는 "이제 우리는 큰 그림(big picture)에 시선을 둘 수 있게 됐다"고 반겼다. 미국은 내년 한 해에만 4차례의 미·중 정상회담을 구상하고 있다. 
 
황방열 통일외교 전문위원 bangyeoulhwang@gmail.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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