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하버드대 공중보건 대학원(Harvard School of Public Health)과 건강보험회사인 엘리밴스 헬스(Elevance Health)의 과학자들은 미국 국립보건원(National Institute of Health)의 지원을 받아 팬데믹 기간 동안 대면 수업 재개가 학생들의 정신건강에 미친 효과를 연구했습니다.
마스크를 쓴 채 대면 수업을 받고 있는 학생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그 결과 2021년에 대면 수업을 위해 학교가 문을 연 이후 학생들의 정신건강이 크게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연구진은 이러한 증거를 통해 장기간의 학교 폐쇄로 인한 위험이 당시 정책 입안자들이 알고 있던 것보다 더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번주 초 학술 저널 <에피데미올로지(Epidemiology>에 발표된 이 연구는 등교가 재개되기 전후 몇 달 동안 캘리포니아에서 민간 보험에 가입한 5세에서 18세 사이의 아동과 청소년 18만5735명의 의료 청구 내역을 추적·분석했습니다.
등교 재개, 정신건강에 청신호
2020년 3월, 코로나바이러스가 미국 전역을 휩쓸면서 약 5500만명의 미국 아동·청소년들은 갑자기 학교에 나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캘리포니아주는 팬데믹 내내 일률적인 등교 재개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인구 밀도, 감염률, 지역보건 사정에 따라 어떤 카운티는 비교적 빠른 시점에 등교를 재개했고, 다른 카운티는 2021년 봄까지 학교 문을 굳게 닫아두었습니다. 어떤 지역의 아이들은 교실로 돌아갔지만, 다른 지역의 아이들은 여전히 고립된 채 화면 앞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동일한 팬데믹이라는 조건 아래에서 학교 재개 시점이라는 변수만 달랐습니다.
이 시간 차이 덕분에 연구진은 여러 해 동안 축적된 행정 의료 데이터를 토대로, 등교 재개가 실제로 아동·청소년의 정신건강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면밀하게 분석할 수 있었습니다. 응급실 기록, 정신건강 진료, 자해·자살 위험 지표에 이르기까지, 아이들의 심리적 상태는 의료 체계 곳곳에서 흔적을 남기며 연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팬데믹 기간 동안 온라인 수업이 지속된 지역에서는 우울과 불안으로 진료를 받는 아동·청소년의 비율이 꾸준히 상승했지만, 등교가 재개된 지역에서는 그 상승세가 눈에 띄게 완만해지거나, 일정 기간이 지나면서 아예 감소하는 양상을 보였습니다.
한 어린이가 집에서 온라인 수업을 하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연구진은 학교가 다시 문을 연 지 9개월 후, 아동·청소년들이 정신건강 문제로 진료를 받을 확률이 43% 줄었음을 발견했습니다. 또 정신건강 관련 약품에 대한 지출은 7.5% 줄었고, 진단과 치료에 대한 지출은 10.6% 감소했습니다. 연구진은 아이들이 다시 일상 리듬을 찾기 시작하면서 정서적 조절 능력도 함께 회복되었을 가능성을 제시했습니다.
하버드대 공중보건대학원의 사회 역학자이자 이 연구의 공동 저자인 리타 하마드(Rita Hamad) 박사는 이 연구 결과를 통해 일부 지역의 공무원들이 팬데믹 기간 동안 감염과 전파를 막는 데만 집중해 학교 폐쇄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학교 폐쇄로 인한 위험이 감염과 전파를 차단하는 효과보다 크다는 것을 알았다면 결정이 달라졌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요컨대 팬데믹으로 인한 성급한 학교 폐쇄는 득보다 실이 컸다는 것입니다.
하마드 박사는 이번 조사에는 주로 직장에서 제공하는 민간 보험에 가입한 학령인구만을 대상으로 삼고 있어 저소득층 아동·청소년의 정신건강 피해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을 가능성을 지적하며, 보다 취약한 계층을 포착하기 위해 메디케이드(Medicaid) 가입자를 대상으로 후속 분석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학교의 중요성, 데이터로 재확인
현대사회에서 학교는 단순히 배우는 곳에 그치지 않습니다. 정서, 사회성, 협력, 규칙, 자기조절, 관계, 정체성 등 아이들이 한 사람의 성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에 필요한 거의 모든 것이 학교라는 공간에서 형성되고 확장됩니다. 그래서 학교는 위기 상황에서도 유지해야 할 필수 사회기반시설입니다. 팬데믹 이후 아이들이 교실로 돌아가면서 아이들의 정신건강이 회복되기 시작했다는 연구 결과는 학교가 아이들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계량적 데이터로 증언합니다.
이번 연구는 공중 보건 정책의 일환으로 학교 폐쇄를 결정할 때, 감염 위험뿐만 아니라 아동·청소년의 전반적인 복지(well-being)를 균형 있게 고려해야 한다는 강력한 논거를 제시합니다.
서경주 객원기자 kjsuh57@naver.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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