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장 뚫는 환율…‘슈퍼사이클’ 반도체도 ‘스트레스’
원·달러 환율 1470원대 ‘고착화’ 전망
매출 90% 이상 달러…순익 증가지만
달라로 사는 ‘장비’…시설 투자비 부담
2025-11-24 15:40:48 2025-11-24 16:15:31
[뉴스토마토 이명신 기자] 최근 환율이 1470원대까지 치솟으면서 ‘초고환율’ 상태가 고착화되자 ‘슈퍼사이클’(초호황기)에 역대급 실적을 찍고 있는 반도체 업계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습니다. 통상 환율 상승으로 수익이 개선되는 효과가 있지만, 천문학적 금액의 장비 구입 비용도 덩달아 오르기 때문입니다. 해외 대규모 투자와 현지 인력 인건비 부담도 커지는 상황입니다. 이에 고환율 구조가 산업계의 ‘뉴노멀’이 되면서, 환율 상승이 수출 산업에 ‘호재’라는 인식이 바뀌고 있습니다. 
 
삼성전자 반도체사업장의 내부 클린룸 모습. (사진=삼성전자).
 
‘고환율=호재’…실적 훈풍 계속
 
24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1470원대를 등락하고 있습니다. 지정학적 리스크 등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달러 강세가 이어지고, 국내 투자자들의 대미 투자가 확대되면서 1400원대를 유지하던 달러가 1470원대까지 치솟은 겁니다. 시장에서는 환율이 1500원을 돌파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옵니다.
 
이에 원화의 실질 가치도 떨어졌습니다. 한국은행과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화폐 구매력을 나타내는 실질실효환율은 지난달 말 기준 89.09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한 달 전보다 1.44포인트 하락한 수치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이어졌던 2009년 8월(88.88) 이후 16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습니다.
 
통상 환율이 오르면 업계에는 호재로 작용합니다. 반도체업계는 제품 대금을 달러로 받는 수출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매출의 90% 이상이 달러로 발생하는 만큼, 환율 상승은 순이익 증가로 이어집니다.
 
실제로 SK하이닉스의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3분기 기준 환율이 10% 상승 시 법인세비용차감전순이익은 6885억원 개선됩니다. 올해 1~3분기 누계 기준 64조원의 매출 중 45조원이 미국에서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삼성전자도 지난해 말 기준 환율 5% 상승 시 법인세비용차감전순이익이 3652억원 상승한다고 공시했습니다. 올해 3분기 기준 삼성전자의 미국 시장 매출은 약 50조원으로 전체 매출 173조원의 약 29%를 차지합니다.
 
특히 인공지능(AI) 시장 확대로 메모리 슈퍼사이클이 도래하면서, 반도체 수출액도 고공행진을 이루고 있습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반도체 수출액은 1419억달러로, 전년 수출액 986억원 대비 44% 상승했습니다. 이는 전체 수출액 6836억원의 20.8%나 되는 수준입니다.
 
SK하이닉스가 청주에 건설 중인 신규 팹(공장) ‘M15X’ 조감도. (사진=SK하이닉스).
 
이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올해 3분기 영업이익 ‘10조 클럽’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올해 3분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각각 32.5%, 61.9% 늘어난 12조1661억원, 11조3834억원을 기록했습니다. 특히 삼성전자는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는 DS부문의 영업이익이 8조4470억원으로 나타나면서 큰 폭으로 개선됐습니다.
 
특히 내년 메모리 재고 ‘완판’을 기록한 만큼 호실적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입니다. 삼성전자는 올해 3분기 컨퍼런스콜에서 “2026년 고대역폭메모리(HBM) 생산계획은 올해보다 확대 수립했지만, 계획분에 대한 고객 수요를 이미 확보한 상태”라고 밝혔습니다. SK하이닉스 역시 “HBM은 주요 고객들과 내년 공급에 대한 협의를 모두 완료했다”며 “HBM뿐만 아니라 D램과 낸드 생산 물량 모두 사실상 솔드아웃 됐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국내 반도체업계에 고환율이 마냥 좋은 건 아닙니다. 무엇보다 대규모 해외 투자를 진행하고 있는 업계 입장에서 고환율은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삼성전자는 170억달러를 들여 미 텍사스주 테일러에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공장을 짓고 있습니다. 해당 비용에 환율 1400원을 적용했을 경우 투자비는 23조8000억원이지만, 환율 1500원을 적용하면 투자비가 25조5000억원으로 상승합니다. 
 
SK하이닉스도 39억달러를 투자해 인디애나주에 패키징 공장을 건설할 계획입니다. 위와 같은 환율 기준을 적용해 보면, SK하이닉스의 투자액은 5조4600억원에서 5조8500억원으로 오릅니다. 여기에 현지 생산시설에 투입되는 인력들의 인건비도 부담을 더 키울 것으로 예상됩니다. 
 
달러로 사는 장비…시설투자 ‘껑충’
 
특히 천문학적 금액의 반도체 장비를 대부분 해외에서 수입하고 있다는 점 또한 고환율에 취약한 구조를 보여줍니다. 네덜란드 ASML의 하이-NA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는 대당 5000억원이 넘는 수준으로 알려졌습니다. 기존 EUV 노광장비도 2000~3000억원대 수준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HBM 등 고성능 메모리 생산을 위해선 공정의 미세화가 필수적인 만큼 첨단장비의 도입은 필수적입니다. 반도체 기업들의 설비투자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이유입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는 철강·석유화학과 같은 ‘장치산업’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첨단장비와 인프라가 중요하다”면서 “장비가 워낙 고가인 탓에 시설투자의 대부분을 장비가 차지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삼성전자가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짓고 있는 반도체 공장. (사진=삼성전자).
 
실제로 반도체 업체들의 설비투자 비용은 늘어나고 있습니다. SK하이닉스는 올해 3분기까지 설비투자에 17조8250억원을 들였습니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약 70% 상승한 수치입니다. 지난달 청주 M15X 팹(공장)에 장비 반입을 시작했고,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건설에도 속도를 내는 만큼 금액은 더 늘어날 전망입니다.
 
삼성전자 DS부문 역시 올해 1~3분기 시설투자에 28조5237억원을 투입했습니다. 이는 전체 투자의 88.45%로 내년 투자액은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5년간 국내에 450조원을 투자한다고 발표한 데다 최근 평택 5공장 건설 재개가 이뤄졌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고환율이 수익을 상쇄시키는 면은 있겠지만, 기업들에게 엄청난 타격을 주진 않을 것”이라면서도 “다만 환율 부담이 장기화되면, 투자 계획을 조정하거나 환헤지(위기 회피) 비용이 오를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과 교수는 “고환율로 수익성이 높아질 수 있어도 원재료와 장비 등을 수입해 와야 생산이 가능하기 때문에, 국내 사업장에서는 환율 리스크가 더 부각될 수 있다”면서 “아직은 미국 현지 생산이 덜 되고 있지만, 생산이 본격화되면 반도체 기업들이 환율 변동에 따른 리스크를 상쇄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했습니다.
 
이명신 기자 si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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