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16일 전체 병력 1만5000명에 세계 최대 항공모함인 제럴드 포드가 주축인 항모 타격 전단을 베네수엘라 바로 앞 카리브해에 배치했다. 미국이 이 정도 함정과 병력을 카리브해에 배치한 것은 1989년 파나마 침공 이후 36년 만에 처음이다. 당시 아버지 부시정부는 2만7000명 규모 병력을 투입해 파나마의 실권자 마노엘 노리에가를 체포한 뒤 미국으로 압송했다. 콜롬비아 마약 카르텔과 결탁해 미국으로 마약을 유통하는 데 관여했다는 혐의였다.
올해 1월7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장남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가 그린란드 누크에 도착했다. (사진=연합뉴스)
이번에 미국 정부가 베네수엘라를 군사적으로 압박하면서 내세운 명분도 마약 문제다. 마르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카리브해 병력 배치 다음날인 17일, 베네수엘라의 범죄단체 '카르텔 데로스 솔레스'를 외국테러조직으로 지정하겠다고 예고하면서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그 배후라고 지목했다. "우리 반구 전역의 테러 폭력과 미국과 유럽으로의 마약 밀매에 책임이 있다"는 것이었다. 피트 해그세스 국방부 장관도 카리브해 작전 목표를 "조국을 지키고 우리 반구에서 마약 테러리스트들을 제거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두 사람 다 '우리 반구'라고 표현하는 반구는, 물론 서반구(western hemisphere)를 말한다. 미국은 자신이 위치한 북미뿐 아니라 아메리카 대륙 전체를 자신의 영역으로 인식하고, 특히 중남미는 뒷마당쯤으로 여겨왔다. 그러니 명백한 물증도 없이, 지난 9월부터 카리브해를 지나는 소형 함정을 마약운반선이라며 20여차례 공격해 80명 이상을 사살할 수 있었던 것이다.
1823년의 '먼로 독트린'(먼로주의)이 그 공식적인 시작이었다. 미국의 뿌리 깊은 고립주의 외교정책을 상징하는 '먼로 독트린'은 건국 초기 미국의 국력이 약한 상태에서 '미국은 유럽에 간섭하지 않을 테니, 유럽도 아메리카 대륙에 간섭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 이후 미국은 아메리카 대륙 전체를 확실하게 자신의 영향력 아래 뒀다.
미국-텍사스 전쟁(1846년~1848년)이 대표적이다. 이 전쟁을 통해 미국은 현재의 캘리포니아, 네바다, 유타, 애리조나 전체와 뉴멕시코, 콜로라도, 와이오밍의 일부 등 한반도 넓이의 15배에 달하는 영토를 확보했다. 현재 미국의 서부 영토가 완성된 것이다. 미국이 세계 최강국으로 등장한 냉전 시기에는 남미의 친미·우익 독재정권들을 지원하면서 인권탄압과 폭정을 묵인하는가 하면, 파나마의 노리에가처럼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인사들은 제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1월 △캐나다의 미국 51번째 주 편입 △파나마 운하의 '미국령화' △그린란드 장악 △멕시코만 아메리카만 개칭 등을 주장하면서 두 번째 임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현재 베네수엘라를 정조준한 데 이어, 콜롬비아와 멕시코에 대한 공격 의사도 밝히고 있다. 트럼프의 정책이 '먼로 독트린'에 빗대 '돈로 독트린'(도널드 트럼프의 먼로 독트린), '돈로주의'라고 불리는 이유다.
미국 뒷마당 중남미 불안…33개국 중 22개국 '중국 일대일로' 참여
<뉴욕타임스>는 17일자 "The 'Donroe Doctrine': Trump's Bid to Control the Western Hemisphere"('돈로독트린': 트럼프의 서반구 지배 시도) 기사에서 "트럼프 행정부 고위 관계자들이 그들의 궁극적인 목표가 지구의 절반에 대한 미국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분명히 밝혔다"면서 루비오 국무장관의 '미주 우선(Americas First) 정책'을 소개했다. 미국이 유럽·중동·아시아에 집중하면서 너무 오래 서반구를 소홀히 해왔으나, 이제 다시 '지구의 절반'에 대한 미국의 지배력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미 1기 때부터 중·남미를 불안하게 여겼다. 중국 때문이다. 미국이 직접 공격 대상으로 상정하고 있는 베네수엘라, 콜롬비아를 비롯해 중·남미 33개국 중 22개국이 중국이 2013년부터 세계 전략으로 시작한 '일대일로'에 참여하고 있다. 트럼프 1기 행정부는 전임 오바마 행정부가 추진했던 쿠바와의 국교 정상화를 파기하고, 베네수엘라·니카라과 등 사회주의 성향 국가들과 묶어서 다시 불량국가로 지정했다. 그러나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와 '반이민 정책', '장벽 건설' 정책에 중·남미 국가들이 반발하면서 중국은 그 틈을 더 적극적으로 파고들어 영향력을 확대했다. 결국 베네수엘라 등에 대한 무력 행동의 진정한 목적은 중국의 영향력 차단인 것이다.
미국 해군의 제럴드 포드 항공모함 전단. (사진=연합뉴스)
"트럼프 미·중·러 강대국 '세력권 정치' 구상" 분석…한반도에는 위험 요인
이와 관련해 트럼프가 세계를 강대국들의 '세력권'(sphere of influence)으로 분할하는, '19세기 제국 통치 스타일'로의 회귀를 구상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5월 "Trump's Vision: One World, Three Powers?"(트럼프의 비전: 하나의 세계, 3대 강국?)기사에서 "일부 외교정책 분석가들은 트럼프의 행동과 발언을 보면 그가 소위 3대 강대국, 즉 미국, 중국, 러시아가 지구상에서 각자의 지역을 지배하는 세상을 상상하고 있는 것일 수 있다"고 짚었다. "서반구에서 미국의 지배력을 확대하려는 시도"가 그 신호라는 것이다.
또 트럼프가 동맹국들을 비판하고 전 세계 미군 철수를 거론한 것은 유럽과 아시아에서 미국의 안보 입지를 약화시키려는 러시아와 중국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으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영토 일부에 대한 통제권과 미국의 우크라이나 광물 자원 접근권을 공식화하려는 것도 제국주의 시대의 강대국들이 그랬던 것처럼 사실상 우크라이나를 분할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국내에서도 동일한 분석이 나온다.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은 신간 『좋은 담장 좋은 이웃』에서 "세계는 19세기의 '세력권 정치'로 나아갈 조짐을 보이고 있다"며 "미국은 미주 대륙과 태평양을, 중국은 동아시아를, 유럽연합은 서유럽을, 러시아는 동유럽과 중앙아시아를 세력권에 두는 그림"이라고 진단했다.
이런 세력권 분할은 우리에게는 대단한 위험 요인이다. 조선은 러시아, 일본, 미국의 강대국 간 세력 분할 과정에서 식민지로 전락했다. 구조는 지금도 비슷하다. 미국의 아메리카-태평양 세력권과 중국이 추구하는 동아시아-서태평양 세력권이 가장 민감하게 충돌하는 곳이 대만과 함께 바로 우리 한반도 아닌가?
황방열 통일외교 전문위원 bangyeoulhwa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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