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포스트 EV)③ESS 승부는 안전성…배터리사 경쟁 판도 바뀐다
안전성 고도화가 글로벌 수주 경쟁력
열폭주 억제·AI 모니터링·국제 인증
한국산 ESS '톱티어' 자리매김
2025-11-21 06:00:00 2025-11-21 06:00:00
이 기사는 2025년 11월 18일 15:13  IB토마토 유료 페이지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전기차 시장의 성장 둔화, 이른바 '캐즘' 구간이 장기화되면서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가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에너지저장장치(ESS) 사업에 힘을 싣고 있다. ESS는 탄소중립 실현과 재생에너지 확대, 전력망 안정화 등 정책·산업적 수요가 맞물리며 폭발적인 성장 잠재력을 지닌 분야로 평가받는다. <IB토마토>는 이번 기획을 통해 ESS 시장에서 배터리 3사가 펼치는 사업 전략과 기술·안전 과제, 글로벌 경쟁 구도, 그리고 재활용·재사용을 포함한 미래 생태계의 변화를 집중 조명한다.(편집자주)
 
[IB토마토 권영지 기자] 에너지저장장치(ESS) 산업에서 ‘안전성’이 글로벌 경쟁의 핵심 변수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ESS는 대규모 전력망 운영에 투입되며 장시간 고출력 운전이 기본 전제이기 때문에, 배터리 제조사 입장에서는 안전성 확보 자체가 곧 수주 경쟁력으로 직결되는 구조다. ESS 산업 초기 국내에서 ESS 관련 화재가 연이어 발생하며 기술 신뢰도가 흔들렸지만, 이후 업들의 열관리 기술 고도화와 국제 인증 확보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안전성 신뢰 회복과 동시에 관련 기술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2024 세계 태양에너지 및 세계 배터리&충전 인프라 엑스포에 전시된 ESS의 센서를 가리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최근 5년간 ESS 화재 감소세 ‘뚜렷’
 
18일 업계에 따르면 2020~2021년 화재 사고로 위축됐던 국내 ESS 산업은 안전기술 고도화와 국제 인증 확보 전략을 통해 2022년 이후 빠르게 회복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글로벌 프로젝트 수주가 재개된 데다 북미와 유럽에서 ESS 대형 계약이 늘어나면서 국내 기업의 경쟁력도 강화되는 추세다.
 
국내 ESS 화재는 정부 공식 집계 기준 2017년부터 2021년까지 34건이 발생했다. 최근 5년 동안은 2020년 약 8건, 2021년 4건을 기록한 뒤 2022년에는 사고가 0건으로 떨어졌고, 2023년 1건, 지난해 1건이 보고되며 감소세가 뚜렷해졌다. 원인은 셀 내부 결함, 설치·운영 미흡, 먼지·습기·고온 등 환경 요인, 일부 장치의 오동작 등이 복합적으로 지목됐다. 화재가 집중 발생한 2020~2021년, ESS 시장 전반에서는 설치 기준이 느슨하고 현장 관리 체계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정부는 2020년 ‘ESS 안전관리 강화 종합대책’을 발표해 설치 기준과 점검 의무를 대폭 강화했다. 배터리 관리 시스템(BMS) 점검 주기 의무화와 운영 환경 모니터링 고도화, 화재 대응 매뉴얼 표준화 등의 제도가 연이어 도입됐고, 민간 기업들도 자체 모니터링 플랫폼을 통해 현장 감시 범위를 확대하기 시작했다.
 
ESS용 배터리는 전기차(EV)용과 구조적으로 다르다. EV 배터리는 경량화·공간 효율·가속 성능을 중심으로 설계되지만, ESS는 단위 용량이 훨씬 크고 하루 수 시간에서 수십 시간까지 장주기 운전이 요구된다. EV는 운행 중 열 발생이 많지만 충전-주행-대기 주기가 반복되며 휴지 시간이 존재한다. 반면 ESS는 고정 장소에서 24시간 전력망에 연결된 상태로 장시간 유지되기 때문에, 열폭주 발생 시 인접 셀·모듈로 전파될 위험이 높다.
 
이때 가장 중요한 기술이 바로 열폭주(Thermal Runaway) 억제 기술이다. 최근 기업들은 모듈 내 내열 차단 시트, 셀 간 차열재, 화염 확산 방지 구조, 다단계 차단 기구를 적용해 ‘전파 지연’ 또는 ‘전파 차단’ 성능을 끌어올리고 있다. 일부 제조사는 모듈 내부에 열·가스 센서를 촘촘히 배치해 이산화탄소 농도나 비정상 온도 상승을 조기에 감지하는 시스템까지 도입했다.
 
또 하나의 핵심 기술은 AI 기반 실시간 모니터링이다. 최근 BMS는 온도·전압·전류뿐 아니라 셀 상태 변화 패턴, 충방전 이력, 외부 환경 데이터를 종합 분석해 고장 징후를 미리 포착하는 ‘예지 진단(Predictive Maintenance)’ 기능을 탑재하고 있다. 일부 기업은 원격 제어를 통해 이상 징후 발생 시 자동 절연·부하 차단까지 수행하는 시스템을 상용화했다.
 
업계 안팎에서는 ESS 산업에서 국제 인증 보유 여부는 사실상 ‘입찰 기본 조건’으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북미·유럽 대부분의 프로젝트는 UL9540(시스템통합안전인증), UL9540A(열폭주 및 화재전파 시험인증), IEC 62619(산업용 리튬이온배터리 안전성인증) 등의 인증이 없는 제품은 입찰 자체가 불가능하거나 감점 요인이 된다. 특히 UL9540A는 열폭주 시험을 포함한 고난도 화재 안전성 인증으로, 배터리 셀·모듈·랙·시스템 레벨에서 단계별 시험을 모두 통과해야 한다.
 

(표=소방청 및 국가화재정보센터 공식 통계자료 갈무리)
 
국내 배터리 3사, 안전 기술 경쟁 가속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LG에너지솔루션(373220)·삼성SDI(006400)·SK온 등 국내 배터리 3사와 주요 ESS 시스템 업체의 ESS 랙·시스템 90% 이상이 UL9540A 등 국제 인증을 확보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는 2020년 약 30% 수준에서 4년 만에 3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LG에너지솔루션은 모듈 내부 차열 구조와 열 차단막 등 다중 차단 설계를 적용하며, ‘셀 간 전파 제어’ 성능을 강화한 ESS 전용 라인업을 확대했다. 삼성SDI는 고내열 소재 기반의 ‘3중 차단 시스템’과 실시간 안전관리 소프트웨어를 적용한 차세대 ESS 제품군을 확장하고 있다. SK온은 열 확산을 최소화하는 ‘Z-스태킹 구조’와 고감도 센서 기반 모니터링 솔루션을 ESS로 확대 적용하고 있다.
 
2022년 이후 글로벌 ESS 수주 시장은 미국 IRA(인플레이션감축법)와 유럽 REPowerEU 정책을 기반으로 급격히 확대됐다. 특히 미국 에너지부(DOE) 산하 프로젝트, 호주 전력망 안정화 사업, 중동 대규모 태양광 연계형 ESS 프로젝트 등에서는 ‘인증 여부’가 초기 평가 단계부터 필수항목으로 명시되면서 한국 제조사들이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 있다.
 
배터리업계 한 전문연구원은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ESS 시장에서는 글로벌하게 인정받는 인증을 얼마나 확보하고, 열폭주·운영 리스크를 얼마나 정교하게 관리하느냐가 해외 프로젝트 수주력의 핵심 기준 가운데 하나가 되고 있다”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과거 국내 시장은 화재 이슈로 한동안 위축됐지만, 최근 기업들의 안전기술 투자가 빠르게 성과를 내고 있다”며 “안전성 기술 수준이 글로벌 톱티어로 올라선 만큼 향후 북미와 유럽에서 한국 ESS의 점유율 확대 가능성도 한층 커질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전망했다.
 
권영지 기자 0zz@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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