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유근윤 기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11일 채해병 특검으로부터 수사를 받고 있는 지휘부의 직무유기 혐의가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적법 절차를 따랐다"고 재차 강조했습니다. 국회에서 위증을 은폐했다는 의혹에 대해 전면 부인하는 입장을 낸 겁니다.
오동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이 11일 오전 경기 과천시 정부과천종합청사 공수처 사무실 출근길에 취재진의 질문을 들으며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사진=뉴시스)
공수처는 이날 오전 입장문을 통해 "이 사건을 적법 절차에 따라 그리고 원만하게 처리하기 위해 노력했을 뿐, 직무를 의식적으로 포기하거나 방임한 것이 결코 아니다"라며 "모든 처리 과정과 절차에는 정당한 이유들이 있었고, 반대로 직무유기의 고의나 동기는 전혀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이 사건'이란, 오동운 공수처장 등 공수처 지휘부가 송창진 전 수사2부장검사의 국회 위증 사건을 대검찰청에 통보하기까지 1년여간 미뤘다는 의혹입니다. 공수처법에 따르면 공수처장은 소속 검사의 범죄 혐의를 발견하게 될 경우 자료와 함께 이를 대검에 통보해야 합니다.
앞서 송 전 부장검사는 지난해 7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이종호 전 블랙펄인베스트 대표가 이른바 '임성근 구명 로비 의혹'에 연루됐다는 사실을 모른다고 증언한 바 있습니다. 송 전 부장검사는 당시 공수처 차장 대행이었습니다. 이에 민주당은 송 전 부장검사가 공수처 수사팀으로부터 관련 보고를 받아 모를 리 없을 것이라고 판단해 그를 위증 혐의로 고발했습니다.
공수처는 지난해 8월19일 고발장을 접수하고, 수사3부에 해당 사건을 배당했습니다. 당시 수사3부의 부장검사는 박석일 부장검사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박 전 부장검사가 해당 사건을 '셀프 배당'한 뒤, 송 전 부장검사 사건과 관련해 공수처가 자체적으로 불기소 처분하는 방안 등의 내용이 담긴 보고서를 만든 겁니다.
각각 지난 10월29일, 27일 채해병 특검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는 송창진 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부장검사(왼쪽)와 박석일 전 공수처 수사3부장. (사진=뉴시스)
특검이 애초 공수처의 국회 위증 은폐 의혹에 관한 정황을 포착하게 된 건 박 전 부장검사가 본인의 사직서가 수리되기 전, '신속 검토 보고서' 문건과 내용이 유사한 '수사 상황 보고'를 작성해 수사 기록에 붙여놨기 때문입니다. 특검은 대검으로부터 사건을 이첩받은 뒤 문건을 검토하다가 이 점을 포착했다는 겁니다.
신속 검토 보고서의 요지는 △공수처가 자체적으로 불기소 처분하는 방안 △공수처장이 국회 상대로 유감 표명 △추측성 고발을 한 국회의원들을 무고로 인지할 것을 검토 △청문회의 적법성이 권한쟁의심판을 통해 다뤄지고 있으므로 그 결과를 검토한 후 처분 검토 등 이었습니다.
공수처에 따르면 이재승 공수처 차장은 '부별 배당 원칙'에 따라 위증 사건을 이해관계가 없던 수사3부에 배당했으나, 박 전 부장검사는 자신을 주임검사로 지정하는 '셀프 배당'을 했습니다. 이어 '신속 검토 보고서'를 작성해 차장에게 보고했지만, 공수처 지휘부는 박 전 부장검사의 '셀프 배당'은 문제가 있다고 인지했습니다.
박 전 부장검사는 자신의 보고서가 처장까지 올라가지 않자, 처장에게 '신속 검토 보고서'를 첨부해 이메일로 보내놓기도 했습니다. 공수처 관계자는 특히 이 과정에서 "처·차장은 해당 사건 보고와 관련한 어느 단계에서도 결재권을 행사하지 않았다"고 강조했습니다. 결재권자는 '결재'로 말하는데, 보고 내용에 따른 결재가 이뤄지지 않은 점 등을 들어 직무유기 혐의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공수처는 이후 사건 처리가 늦은 데에는 해당 검사 사직 이후, 공수처가 이해관계가 없이 사건을 처리할 새 부장검사를 임명하기까지 시간이 걸려서라고 해명했습니다. 윤석열정부에서 한동안 공수처 검사 등의 임명이 늦었고, 이후 비상계엄 사건까지 연이어 터지며 공수처에는 담당할 부장검사가 없는 상황이 됐다는 설명입니다. 공수처에 새 부장검사가 부임한 건 올해 5월26일입니다. 이후 사건 처리 절차를 진행했고, 특검이 출범하며 7월22일 사건을 이첩했다는 겁니다.
공수처 관계자는 '왜 대검에 즉각 통보하지 않느냐'는 취지의 질의에 "구체적인 처분 건의나 결재 상신이 없는 상태에서 대검 통보 의무가 발생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또 "모든 고발이 들어왔을 때 모두 다 범죄 혐의라고 해서 이첩을 보낸다면 행정력 낭비만 되는 경우가 있다"며 "실질적인 혐의가 발견됐을 때 보내는 것이 맞아 보인다"고도 말했습니다.
공수처 관계자는 '제 식구 감싸기' 지적에 대해서도 "만일 제 식구 감싸기를 하려고 했다면 신속 검토 보고서의 내용을 받아들여서 빨리 불기소 처분하라고 했을 것"이라며 "하지만 올리라고 지시한 적이 없고, 자신의 뜻이 관철되지 않은 주임검사는 곧 사표를 제출했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앞서 오 처장은 11일 출근길에 기자들을 만나 "공수처 부장검사 위증 고발 사건 처리 과정은 제 식구 감싸기가 아니라 제 식구 내치기라는 비판을 감수하면서 공수처 조직을 재정비하는 과정"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어 "공수처는 내란 수사에 즉각 착수하고 현직 대통령을 체포 구속함으로써 내란 진압에 이바지해 국민 신뢰를 얻은 바 있다"며 "그런데 공수처장과 차장이 직무유기 했다는 사실로 입건돼 마치 공수처가 내부 직원의 대한 고발 사건 처리와 관련해 부적절하게 처리했다는 듯한 외관이 형성됐다. 국민의 공수처에 대한 신뢰가 약화될 수 있다는 염려에 소상하게 이 사건 처리 과정 밝히는 게 도리라고 생각했다"고 말했습니다.
유근윤 기자 9nyoo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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