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사이언스)기후 리더 키우는 MIT
1000명 신입생, '지구 시뮬레이션'으로 현실 체험
세계적 대학의 '기후 리터러시(Climate Literacy)' 1
2025-10-28 08:55:22 2025-10-28 13:30:59
En-ROADS 시뮬레이터를 탐색하고 있는 MIT 학부생들. (사진=MIT)
 
[뉴스토마토 임삼진 객원기자]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의 새 학기 풍경이 달라졌습니다. 실험복 대신 노트북을 든 1000여명의 신입생들이 세계의 기후정책 결정자 역할을 맡아 ‘지구의 운명’을 시험대에 올렸습니다. MIT 슬론경영대학원과 공학대학이 공동으로 진행한 ‘En-ROADS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은 단순한 오리엔테이션이 아니라, 기후위기를 과학적 데이터와 정책 협상으로 직접 체험하게 하는 살아 있는 수업입니다. 
 
“기후위기는 선택이 아닌 사명”
 
MIT는 “기후 대응을 대학의 핵심 사명으로 삼겠다”는 선언 아래, 올해 처음으로 모든 신입생에게 En-ROADS 프로그램 참여를 의무화했습니다. 아난타 찬드라카산(Anantha Chandrakasan) MIT 교무처장은 “MIT는 앞으로 10년간 세계에서 가장 협력적이고 다학제적인 기후 해법의 산실이 될 것”이라며 “이 세대의 학생들이 그 변화를 주도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학생들은 팀별 워크숍에서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설정하고, 탄소세·재생에너지 투자·산림 복원·기술혁신 등 다양한 시나리오를 조합해 지구 온도 상승을 섭씨 2도 이하로 억제하는 방안을 모색했습니다. 파리협정의 핵심 목표를 ‘정책 실험’으로 구현한 셈입니다. 
 
MBA 신입생 450명, “국제 기후정상회의 대표”로 변신
 
특히 MIT 슬론 MBA 신입생 450명은 세계 기후정상회의 참가국 대표 역할을 맡았습니다. 각국의 이해관계를 조율하며 협정을 이끌어내는 과정은 실제 외교 협상 못지않게 치열했습니다. 
 
여기서 중국시진핑 국가주석 역할을 맡은 앨리슨 소먹(Allison Somuk) 학생은 “기후위기의 속도를 데이터로 직접 보니 충격적이었다”라며 “모든 산업이 동시에 행동하지 않으면 늦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기후정책이 여성 건강, 특히 개발도상국의 산모 건강에도 영향을 준다는 사실이 놀라웠다”며 “앞으로 공중보건을 설계할 때 기후 변수까지 고려하겠다”고 덧붙였습니다. 
 
과학과 감성, 세대와 세대 잇는 학습 설계
 
이 프로그램을 공동 개발한 앤드루 존스(Andrew Jones) 연구원은 “학생들의 열정이 MIT의 기후 목표와 완벽히 맞물렸다”며 “캠퍼스 전체가 변곡점을 맞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En-ROADS는 MIT 슬론 경영대학원과 비영리단체 '클라이밋 인터랙티브(Climate Interactive)'가 공동 개발한 글로벌 기후·에너지 정책 시뮬레이션 모델입니다. 
 
이 교육 프로그램 디렉터인 크리스 레이브(Chris Rabe)는 “En-ROADS는 단순한 과학 시뮬레이션이 아니다. 감정적 몰입, 세대 간 관점, 집단적 성찰을 결합한 학습도구”라며 “학생들은 복잡한 기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얼마나 다양한 ‘정책수단(lever)’이 필요한지 깨닫게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숨 쉴 수 있는 공기, 안전한 도시”…학생들이 본 미래
 
워크숍이 끝난 뒤 학생들은 ‘당신이 만든 미래에서 무엇이 가장 기쁜가?’라는 질문에 답했다. 화면에는 “깨끗한 공기”, “아이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자라는 세상”, “홍수 없는 고향”, “풍요로운 해양 생태계”, “새로운 청정산업의 기회”, “사회적 평등 확대” 같은 단어들이 떠올렸습니다. 
 
MIT 학생 루비 아이젠버드(Ruby Eisenbud)는 “En-ROADS는 단순한 게임이 아니라 리더로서 우리가 맞닥뜨릴 현실을 보여줬다”며 “현실의 복잡성을 인정하되, 행동의 필요성을 절감했다”고 말했습니다. 
 
MIT는 이번 프로그램이 단순한 체험을 넘어 “기후 리더십 교육의 새 표준”이 될 것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시스템다이내믹스 연구의 권위자인 존 스터먼(John Sterman) 교수는 “이제 MIT의 신입생 1000명이 기후위기의 원인과 해법을 동시에 경험했다”며 “이들은 첫 학기부터 더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습니다. MIT의 실험은 명문대학 교육의 패러다임이 ‘지식 축적’에서 ‘행동적 전환’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미래의 CEO와 엔지니어, 과학자들이 대학시절 경험한 ‘기후 리터러시(Climate Literacy)’에서 얻은 깨달음을 갖고 살아간다면, 인류가 그토록 어렵게 합의한 파리협정의 ‘2℃ 약속’은 실현 불가능한 목표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En-ROADS 오리엔테이션 워크숍에 참석한 MBA 학생들. (사진=MIT)
 
임삼진 객원기자 isj2020@daum.net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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