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태은 기자] 동해 심해 가스전(7개 석유·가스 유망 지질 구조) 개발 사업이 1차 '대왕고래' 시추 실패로 위기를 맞았지만, 2차 시추 투자 입찰에 브리티시 페트롤리엄(BP) 등 글로벌 기업이 참여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반전 가능성이 제기됐습니다. 석유공사는 '경제성 없음' 결론이 난 대왕고래 탐사는 중단하고 외국계 업체와 다른 유망구조에 대한 2차 시추를 추진할 계획입니다. 다만 22일 정치권 안팎에선 재정 부족과 정치적 부담으로 사업의 현실성은 '미지수'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70% 전망이 6.3%로…'대왕고래' 경제성 '없음'
한국석유공사는 전날 "대왕고래 구조에 대해 추가 탐사는 없다"고 발표했습니다. 공사에 따르면 1차 시추에서 취득한 시료 등을 정밀 분석한 결과 대왕고래 유망구조는 "경제성이 없는 것으로 최종 확인됐다"는 설명입니다.
지난해 6월 윤석열씨가 직접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서 35억~140억배럴의 석유·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물리 탐사 결과가 나왔다"고 발표한 지 약 15개월 만에 나온 결론입니다.
동해 심해 가스전 개발은 울릉분지에 위치한 6-1광구와 8광구 등 약 2만㎢ 해역을 중심으로 추진 중인 대규모 자원 개발 프로젝트입니다. 이 구간에는 석유·가스 매장 가능성이 높은 7개의 유망 지질 구조가 분포해 있습니다. '대왕고래' 유망구조는 그 중에서도 가장 가스 발견 확률이 높다는 평가를 받아왔습니다.
그러나 지난 2월 채취 시료에 대해 6개월간 정밀 분석한 결과, 최대 70%까지 예상된 가스포화도는 6.3%에 불과했습니다. 회수 가능한 가스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석유공사는 대왕고래 탐사는 중단하되, 다른 유망구조에서는 2차 시추를 이어가기로 했습니다. 실제로 동해 해상광구 투자 유치(지분 참여) 입찰에는 복수의 외국계 업체가 참여했습니다.
포항시 남구 구룡포 앞바다에서 석유·가스 탐사 시추 작업 중인 '웨스트 카펠라호' 모습. (사진=뉴시스)
오일 메이저 '눈독'…외국계 최대 49% 지분 유치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메이저 석유 기업 2~3곳이 입찰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특히 글로벌 석유·가스 기업인 영국 BP가 입찰 제안서를 낸 것으로 보입니다. BP는 당초 6월로 예정됐던 석유공사의 입찰 기한이 이달 19일로 3개월 더 연장됐을 당시, 새 정부의 사업 지속 의향을 확인하는 차원에서 연장 요청을 한 기업으로 거론되는 회사입니다.
지난해 7월 석유공사가 첫 탐사 시추를 앞두고 투자 유치 설명회를 진행했을 때 사업에 관심을 보이며 석유공사를 접촉한 미국 엑손모빌도 이번 입찰에 참여했을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국내 기업 중 응찰한 곳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외국계 기업이 입찰에 참여한 배경에는 '명태', '오징어' 등 유망구조에 여전히 개발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 꼽힙니다. 지난 2월 액트지오의 추가 분석에서는 '마귀상어' 등 14개 유망구조가 새롭게 확인됐습니다. 이 가운데 마귀상어 구조에만 최대 51억7000만 배럴의 가스가 매장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평가입니다.
석유공사는 입찰 마감에 따라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할 계획입니다. 투자 유치 자문사인 S&P글로벌을 통해 입찰 평가 및 입찰 제안서에 대한 충분한 검토를 거친 뒤 적합한 투자자가 있을 경우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할 계획입니다.우선협상자가 선정되면 세부 계약 조건에 대해 협상을 거쳐 조광권 계약 서명 절차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외국계 업체의 최대 지분율은 49%이며, 석유공사가 과반 지분율을 갖습니다.
석유공사는 "투자 유치 성사 시 공동 조광권자와 함께 유망성 평가, 탐사 등 사업계획을 새롭게 수립할 예정"이라며 "우리나라의 자원 안보에 기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예산은 '제로'…개발 동력 '흔들'
문제는 재정입니다. 가장 가스 발견 확률이 높다고 여겨진 대왕고래 구조가 '경제성 없음' 판정을 받은 가운데 정부가 실질적 재정을 들여 투자를 이어갈지는 불투명하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이에 따라 사업의 현실성도 미지수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석유공사는 지난 1차 시추에선 자체 예산 약 1263억원을 투입했습니다. 윤석열씨는 지난해 "최소 5개의 시추공을 뚫어야 하는데 1개당 1000억원이 넘는 비용이 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석유공사는 동해 심해 가스전 사업 성공 확률을 20%로 추정해 왔습니다.
현재 동해 가스전 개발사업 예산은 전액 삭감된 상태입니다. 윤석열정부 당시 올해 예산 편성 과정에서 1차 탐사 시추에 필요한 497억원을 편성했으나, 국회 예산 심의 과정에서 당시 야당인 민주당의 반대로 전액 삭감됐습니다. 최근 제출된 내년도 예산안에서도 관련 사업비는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석유공사 자체 예산으로 개발사업을 할 수밖에 없는데, 공사는 2020년부터 자본잠식 상태에 빠진 상황입니다. 심지어 대왕고래 사업은 '윤석열정부' 대표 사업이라는 상징성을 갖고 있어 새 정부가 추가 재정을 투입할 가능성도 낮다는 평가입니다.
일각에서는 에너지의 약 94%를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에서 자원 개발 문제가 정치 쟁점화된 점에 대한 우려도 나옵니다. 외국 자본의 투입은 자원 탐사에 들이는 자금과 투자 리스크를 분산할 수 있다는 점도 있지만, 실제 자원이 발견될 경우 채굴 권한과 이익을 외국 기업과 나눠야 한다는 한계가 따릅니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이날 <뉴스토마토>에 일본의 JOGMEC(석유·가스·금속광물자원기구) 사례를 언급했습니다. JOGMEC는 석유·천연가스·금속광물 자원을 통합 관리하며 안정적 공급을 도모하고, 해외 자원 개발 프로젝트에도 참여하는 일본의 공공기관입니다.
유 교수는 "우리나라는 자원 공기업이 한국석유공사, 한국가스공사, 한국광해광업공단 등으로 다 분리돼 있다"며 "일본처럼 일원화해 효율적으로 운영해 외국 자본을 끌어들이지 않고, 자체적으로 탐사 및 시추하는 환경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습니다.
김태은 기자 xxt197@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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