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 인도차이나반도. 일반적으로 태국과 베트남을 떠올리게 합니다. 온화한 기후 탓에 전 세계 최고의 휴양 국가이자 관광 국가로 알려진 곳입니다. 하지만 이들과 맞닿아 있는 인도차이나반도 유일의 내륙 국가 '라오스'. 낯선 만큼 모든 것이 어색하지만 그 속살을 살펴보면 의외로 우리와 많은 부분이 통할 수 있을 것 같은 친숙한 곳이기도 합니다. 뉴스토마토 K-정책금융연구소의 글로벌 프로젝트 '은사마'가 주목하는 해외 거점 국가 라오스의 모든 것을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오렌지당의 3대 당수, 텡
1987년생으로 서른여덟 살. 본명은 나타퐁 르앙빤냐웃티. 부동산 재벌 차난톤그룹 회장의 넷째다. 부동산개발회사 차난톤은 톤부리 지역에서 고급 주택, 콘도미니엄, 타운하우스를 개발한다.
텡은 쭐라롱꼰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다. 대학을 졸업한 뒤 클라우드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를 창업했다. 2013년에는 부동산 매매, 인사, 주택, 콘도미니엄 등을 관리하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현재 텡은 이 회사에 이름을 올리지 않고 있지만, 아내가 이사로 등재돼 있다.
텡의 자산은 170억원가량이다. 텡은 부러울 것이 없는 '오렌지족'으로 살 수 있었지만, 험난한 오렌지당의 길을 선택했다. 오렌지는 태국 진보정당의 상징색이다. 텡은 초대 당수였던 엑이 제시한 정치적 비전에 매료되어 정치에 투신했다. 엑은 텡의 우상이다. 새로운미래당은 텡 소유 건물에서 창당됐다. 엑은 텡을 신임하여 당의 온라인 운영을 총괄하게 했다.
텡은 2019년 선거에서 방콕 28선거구에 출마해 지역구 의원이 됐다. 2023년에는 비례대표 후보로 당선되어 재선에 성공했다. 당은 텡을 디지털경제사회부 장관 후보로 내세웠다. 팀이 '거의' 수상이었듯, 서른여섯 살의 텡은 '거의' 장관에 그쳤다.
두 번째로 당이 해산되고 인민당이 창당되면서 텡은 경선을 거치지 않고 당수로 지명됐다. 텡은 엑이나 팀처럼 강력한 카리스마는 없다. 엑의 거침없는 등장은 충격이었고, 팀은 모든 것을 갖춘 데다 정적들이 인정할 정도로 설득력이 있다. 게다가 연예인 같은 용모와 스토리까지 갖췄다. 텡은 당 지지율에 비해 선호도가 아직 낮다.
텡에 대한 시선은 엇갈린다. 냉철한 실무형 리더로 강력한 팬덤을 가진 두 지도자 엑과 팀에 비해 선거에서 약점을 드러낼 수 있다는 평가가 있다. 반대로 낙관적인 관찰자들은 급진적인 엑이나 화려한 팀보다 궁지에 몰린 지배 세력에게 일격을 당할 가능성이 적다고 본다.
불경죄로 2년8개월 징역형을 받았던 인민당 의원 룩껫. (사진=룩껫 페이스북)
보이지 않는 당, 반야이
2025년 지방선거 결과, 어느 당이 승리했을까? 당이 아닌 '반야이(Big House)'라는 세력이 20개 지방을 장악했다. '반'은 마을이나 집을 뜻하는 타이어 단어이고, '야이'는 크다는 의미다. 한국어로는 토호나 유지쯤 된다. 초대 당수인 엑이 발 벗고 지원했지만, 인민당은 47개 선거구 중 람푼주에서 겨우 1명을 당선시키는 데 그쳤다. 위안이 될 수 있는 성과는 33개 선거구에서 132명의 지방의원을 배출해 거점을 확보한 것이다.
가장 큰 성공을 거둔 것은 타이자부심당이으로 12개 지방에서 대표를 배출했다. 타이자부심당은 반야이들과 강력한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대마 합법화에도 가장 적극적이었는데, 이들의 정치 성향은 보수적이지만 농민 소득 증대라는 관점으로 접근했다. 캄보디아 훈센 상원의장과의 통화가 공개돼 웅잉이 실각하면서 수상 후보가 된 아누띤도 타이자부심당 소속이다.
따이 문명의 정치적 전통은 므앙이고, 므앙들의 만달라 체제가 곧 따이인에게는 국가였다. 오늘날 므앙의 지배자가 곧 반야이다.
21세기에도 태국 왕실이 현실적 권력이라는 사실은 외부인에게 낯설다. 짜끄리 왕조는 따이인에게 최초의 국가다. 짜끄리 왕조 이전에는 강한 므앙과 약한 므앙이 있었을 뿐, 태국이라는 국가는 존재하지 않았다. 란나, 쑤코타이, 아유타이인이 정체성이었을 뿐이다. 민족은 근대적 현상이다. 짜끄리 왕조가 '타이 민족'을 조직했고, 초기 근대화는 계몽 군주들에 의해 추진됐다. 따이인들의 왕실에 대한 복종심은 단순히 '식민 지배를 막아줬다'는 감사의 차원을 넘어 정체성의 일부다.
아이띰 인민당 대변인이 국경에서 다친 사람을 위해 헌혈 중인 모습. (사진=빠릿 페이스북)
어부지리를 노리는 타이자부심당
훈센 캄보디아 상원의장의 전화 통화가 누설되면서 탁신의 딸 웅잉과 타이를위한당(PT)은 실각했고, 탁신은 다시 1년 형기를 채워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존재감을 드러낸 인물이 타이자부심당의 아누띤 수상 후보였다.
텡은 아누띤의 집권을 돕고자 했다. 연합정권의 파트너가 되려는 생각은 없었다. 텡이 아누띤에게 제시한 조건은 두 가지였다. 첫째, 집권 기간은 4개월로 한정한다. 둘째, 다수파 연합정권을 구성하지 않는다. 텡의 의도는 의회 해산을 통한 조기 총선과 개헌이었다. 69석에 불과한 소수당 수상 후보인 아누띤은 이 제안을 당연히도 받아들였고 협약이 체결됐다. 텡과 인민당은 국민투표를 통해 개헌회의를 구성하려 한다. 목표는 새로운 헌법을 통한 군 쿠데타 방지와 왕실에 대한 문민 통제 실현, 사실상 제헌이다.
1932년 입헌군주국 형태를 갖춘 첫 쿠데타 이후 태국은 '쿠데타 왕국'이 됐다. 공인된 쿠데타만 12번, 무산되거나 조용히 끝난 시도까지 합치면 20차례가 넘는다. 성군으로 존경을 받는 라마9세의 권위로 인해 왕실은 쿠데타에 대한 사실상 비토권을 갖게 됐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부가 장기 집권을 하지 못한 배경이다.
태국 왕실은 막대한 부를 보유한 재벌이다. 산유국을 제외하면 세계 최고 부자 왕실로 평가되기도 한다. 은행, 시멘트, 바이오, 병원 등 없는 것이 없다. 방콕의 노른자위 구역에 대규모 토지를 소유하고, 세금을 내지 않으며 감시받지도 않는다. 이를 문제 삼으면 곧바로 불경죄가 된다. 태국 헌법 제6조는 '국왕은 존엄한 지위에 있으며 어떠한 사람도 모독할 수 없'으며, '그 어떠한 방법으로도 비난하거나 고발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형법 제112조는 '국왕, 왕비, 왕세자를 비방하거나 위협한 자는 최소 3년에서 최고 15년 징역형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군부가 조직한 정당은 왕실과 달리 물질적 기반이 없어 가난하다. 2001년 이후 선거에서 군부 출신 왕당파 정당은 '가난한 선거'를 치렀다는 것이 일반적 평가다. 왕실 보호는 명분일 뿐 왕을 빙자해 선거 자금을 모을 수는 없다.
인민당 당수와 하원 야당 대표로 의정 활동 중인 텡. (사진=나타퐁 페이스북)
인민당의 정적과 경쟁자들
인민당은 지난 총선에서 1400만표를 얻었다. 다음 총선에서 2000만표를 얻어 50%의 득표율로 과반 이상의 의석을 얻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2019년 총선에는 77개 당, 2023년에는 67개 당이 참가했다. 이런 다당제 선거에서 50%를 얻는다는 것은 목표일 수는 있지만 정말 어렵다.
탁신계는 다음 총선에서 고정표 1000만표는 확보할 수 있다고 장담한다. 선거전은 에누리 없는 제로섬 게임이다. 인민당이 목표를 달성하려면 최대한 탁신계 표를 잠식해야 한다. 지난 총선에서 탁신의 본거지인 치앙마이에서는 선전했으나, 동북부 지역에서 상대적으로 저조한 성과를 냈다. 반야이가 지배하는 공간에서 탁신파를 눌러야 한다.
진짜 정적은 군부다. 태국에서 추진된 쿠데타 방지법은 한국이 모델이다. 쿠데타 시도는 오히려 급진적 개혁을 불러올 가능성도 있다. 지배 블록은 불경죄나 정당 해산과 같은 제도적 괴롭힘을 우선 사용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 점에서 인민당이 개헌에 전심전력하는 것은 적절한 방향이다.
라오스=프리랜서 작가 '제국몽'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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