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보라·김주하 기자] 신한투자증권이 미국 뉴욕법인(Shinhan Investment America Inc.)과 함께 실리콘밸리 사무소(Shinhan Securities Silicon Valley Representative Office)를 정리합니다. 미국 시장에 선제적으로 발을 들였지만 계속되는 적자를 이기지 못하고, 사업을 접는 모습입니다. 종합금융투자사(종투사) 등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해외 진출을 서두르고, 적자를 감수하며 투자하는 것과 상반됩니다. 회사는 '선택과 집중'에 따른 전략적 결정이라는 입장이지만, 금융투자업계에서는 국내 은행 및 금융지주가 이미 진출해 있는 아시아 시장으로 집중은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1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신한투자증권은 미국 현지 법인 매각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유력한 매각 대상자로 키움증권이 거론되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양사는 이에 대해 "확인해줄 수 없다"며 말을 아끼고 있습니다. 2022년 국내 증권사 최초로 미국 캘리포니아주 팔로알토에 개소한 '실리콘밸리 사무소'도 미국 법인과 함께 매각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실리콘밸리는 글로벌 벤처 생태계의 메카로 유명합니다. 개소 당시만 해도 신한투자증권은 세계 유망 스타트업과 현지 투자자를 위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투자 기회를 모색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회사 측은 "실리콘밸리 사무소 거취는 미국 법인 거취에 달려 있다"면서 "선택과 집중 원칙 하에 검토 중인 사안으로 매각이 결정된 것은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종투사 가운데 비교적 앞선 1993년, 미국에 법인을 설립한 신한투자증권이 사업을 접는 배경으로는 실적 악화가 꼽힙니다. 신한투자증권 미국 법인은 최근 10년 동안, 2019년~2021년을 제외한 모든 해에 당기손실을 기록했습니다. 이에 따라 2014년 2억원에 불과했던 미국 법인의 부채(총계)는 2024년 17억원으로 늘었습니다. 미국 법인 가치 하락에 따라 2023년과 2024년 연이어 손상차손을 반영, 자산(총계)과 자본(총계) 모두 하락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국내 금융시장서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대형 증권사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해외로 눈을 돌리는 것과 반대되는 행보로 분석됩니다. 1992년 NH투자증권을 필두로 삼성증권(1998년), KB증권(1996년), 한국투자증권(2001년), 미래에셋증권(2008년) 순으로 미국에 법인을 설립했습니다. 리테일 기반 증권사인 토스증권은 지난해 미국 법인을 설립했고,
키움증권(039490) 역시 미국 진출을 꾀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미래에셋증권(006800) 미국 법인은 지난해 세전이익 945억원을 기록하며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달성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신한투자증권의 미국 법인이 미국의 브로커리지 라이센스를 보유한 법인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끕니다. 토스증권은 미국에 진출한 이후 이 라이선스를 확보했고, 키움증권도 이를 노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증권업계에서는 해외주식 거래 안정성과 수수료 절감 등을 위해 현지 법인 인수 및 현지 라이선스 취득에 주목하는 분위기입니다. 신한투자증권 관계자는 "해외주식 브로커리지 사업이 활성화되고 있지만 현지 국내 증권사들의 역할은 한정적이라 수익 확대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전했습니다.
금융투자업계 안팎에서는 신한투자증권의 미국 법인 정리에 대해 수익보다는 안정을 택한 전략적 결정이라고 보는 분위기입니다. 다만 아시아 시장 집중은 결국 한국 금융사끼리 경쟁이 될 수 있어 경계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옵니다. 업계 관계자는 "당기순손실이 쌓인 적자 법인을 없애면 당장의 실적을 낼 수 있으니 미래보다는 현재를 위한 선택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한 학계 관계자는 "신한투자증권은 상업은행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증권업에 접근했다"며 "리스크 테이킹보다 안정을 추구하는 은행 DNA를 가진 증권사는 해외에 진출했을 때 경쟁력이 현저히 낮은 경향이 있다"면서 "지주 측에서 자본을 보완하고 지원을 하지만 증권사 DNA를 가진 한투나 미래의 성장 속도에 비해 더디다"고 평가했습니다. 학계의 다른 관계자는 "현지 법인 사업 성과가 크지 않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면서 "미국보다는 베트남 등 아시아 법인에 주력하려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미 증권사들이 아시아 지역에 많이 진출해 있어, 국내사끼리 경쟁하면 수익 내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보라·김주하 기자 bora11@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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