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한동인 기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6년여 만에 중국을 방문합니다. 이로써 김 위원장의 다자외교 데뷔전이 초읽기에 들어갔습니다. 김 위원장은 중국 전승절 80주년 열병식 참석을 통해 한·미·일 대 북·중·러라는 '신냉전' 구도에 편승할 전망인데요. 김 위원장의 이번 방중에서 어떤 메시지를 낼 것인지, 북·중·러 3자 회담이 진행될 것인지, 우원식 국회의장과 조우 여부 등이 관전 포인트로 떠올랐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내부 단속 후 다자 무대로…2일 베이징 도착
1일 <조선중앙통신>은 김 위원장이 전날 새로 조업한 중요군수기업소를 방문해 미사일종합생산공정을 살펴봤다고 보도했습니다. 통신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각종 미사일의 계열생산을 평가하고 미사일이 대량생산 체계에 들어갔다고 시사했습니다.
김 위원장의 이번 군수기업소 시찰은 중국 방문을 앞두고 진행됐는데요. 북·중 국경에 인접한 자강도 지역의 군수공업 지역을 시찰한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은 <노동신문>을 통해서도 김 위원장의 전승절 참석을 주민들에게 알렸는데요. 군수기업소 방문으로 내부를 단속하고, 전통 우방국인 중국·러시아 지도자와 함께 하는 모습을 통해 체제 정통성과 리더십을 극대화하려는 의도로 보입니다.
김 위원장은 중국 방문을 앞두고 사흘 연속 전국 곳곳을 찾으며 내부 현안을 점검하기도 했는데요. 김 위원장은 이날 오후 특별열차를 타고 평양에서 출발해 신의주로 이동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북한 신의주와 중국 단둥에는 '조중 우의교'라는 철교가 있는데, 김 위원장은 해당 철교를 통해 중국으로 넘어갈 전망입니다. 실제로 중국 철도 예매 시스템상 단둥에서 베이징으로 향하는 저녁 열차편 일부가 예매 불가 상태인 데다, 주변 지역의 호텔 등 보안이 강화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단둥역에서 베이징까지는 1132㎞로 통상 20~24시간이 걸리는 점을 고려하면 김 위원장은 2일(현지시간) 베이징에 도착해 중국 정부의 공식 영빈관인 시내 댜오위타이(조어대)에 묵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후 3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열병식 행사에 참석합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부인 리설주 여사가 21일 오후 평양국제비행장에서 국빈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부인 펑리위안 여사를 환송했다. (사진=뉴시스)
①김정은 메시지
지난 2019년 1월 이후 약 6년 8개월 만에 중국을 방문하는 김 위원장의 행보는 달라진 국제 지정학 구도의 현실을 반영합니다. 2018년까지 이어졌던 북·미 대화에 따른 한반도 평화 국면은 2023년 12월 말 '적대적 두 국가론'에 따라 무너졌습니다. 또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라 북한이 중국에 더해 러시아와의 '밀월'까지 진행하면서 한·미·일 대 북·중·러라는 신냉전 구도는 더욱 고착화됐습니다.
결국 김 위원장은 이번 전승절 참석을 통해 핵보유국 지위 확보라는 노선에 더욱 집중할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다자외교의 데뷔를 계기로 대외적으로 이를 인정 받으려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남·북 관계 역시 새 국면을 맞이하게 될 전망인데요. 이재명정부의 '관계 개선' 신호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적대적 두 국가론을 세계 무대에서 선언할 경우 남·북 관계는 실타래를 풀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즉 북한이 중·러와 밀착하고, 미국의 제재 문제를 궁극적인 목표로 설정한다면 우리의 접근법이 현실화되기 어렵다는 겁니다. 이로 인해 한반도 비핵화라는 궁극적인 목표가 흔들릴 수 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페이스 메이커'(보조자)를 띄웠지만 한반도 문제에 있어 '패싱'당할 우려가 큰 셈입니다.
블라디미르 푸틴(왼쪽) 러시아 대통령이 2024년 6월19일 평양 외곽 순안국제공항에서 베트남으로 떠나기 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배웅을 받고 있다. (사진=뉴시스)
②북·중·러 3자 회담
이번 전승절 행사에서는 신냉전의 상징적 장면이 연출될 예정입니다. 러시아 크렘린궁 발표에 따르면 3일 중국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열리는 전승절 기념 열병식 망루에 김 위원장→시 주석→푸틴 대통령 순으로 앉게 됩니다. 역사상 전례 없는 3국 정상의 집결이 연출되는 겁니다.
크렘린궁은 이번 전승절 행사를 통해 북·러 정상회담도 예정돼 있다고 밝혔는데요. 김 위원장의 일정을 고려하면 2일 베이징에 도착한 직후 푸틴 대통령과 양자 회담을 진행할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북·중·러 3국 정상회담 개최 여부는 전망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그간 북한과 러시아에 전략적 거리를 둬온 중국이 정상회담 개최라는 3각 협력까지 강화하는 모양새를 선전할지 의문입니다.
실제로 중국은 북한에 대한 제재에 일정 부분 동참해왔습니다. 또 시 주석이 오는 10월 말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 참석을 예고했고, 미·중 정상회담 가능성이 높은 만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자극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습니다. 만약 3자 회담이 성사된다면 2023년 한·미·일 3자 회담과 대비될 것이라는 평가도 있습니다.
대신 중국과 러시아, 북한과 중국 사이의 개별적인 정상회담은 예정된 수순입니다. 북·중 정상회담이 성사되면, 소원해졌던 '혈맹 관계' 역시 복원 수순으로 접어들 수 있습니다.
2018년 4월 남북 정상회담 만찬장에서 우원식 당시 민주당 원내대표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대화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③우원식·김정은 조우
이번 전승절에는 우리 정부 대표로 우원식 국회의장이 직접 참석합니다. 참여 국가 중 서방 정상은 대한민국이 유일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 의장은 지난 2018년 4월 남북 정상회담 환영 만찬 자리에 민주당 원내대표로 참석한 바 있는데요. 당시 만찬 자리에서 우 의장은 김 위원장과 "시원하게 한잔했다"며 대화를 나눴던 소식을 전했습니다. 국가 서열 2위인 우 의장이 이번 전승절에서 김 위원장을 만날 경우 관계 개선의 첫발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이 '적대적 두 국가론'을 이야기한 상황에서 만남이 쉽지 않다는 전망도 만만치 않습니다. 우상호 대통령실 정무수석도 이날 <YTN>라디오 인터뷰에서 "접촉할 기회가 있다면 우 의장이 알아서 남북 관계 회복을 권유할 수는 있겠지만, 지금으로서는 그 문제에 관해 우 의장과 최종적으로 조율된 것은 없다"고 했습니다.
한동인 기자 bbha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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