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효진 기자] 1번의 승리와 7번의 패배. 지역주의의 벽을 무너뜨리기 위해 진보 불모지 포항의 문을 두드리던 바보 허대만. 최근 조국 조국혁신당 혁신정책연구위원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며 지역주의 극복에 헌신한 허대만 정신이 다시금 조명받고 있습니다. 동료들은 허대만 전 민주당 경북도당 위원장의 '공존의 정신'을 기억해야 한다고 당부했습니다.
"내가 아니라도 다음, 또 다음이 될 것"
25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을 방문한 조 혁신위원장이 노 전 대통령 묘소 참배록에 "돌아왔습니다. 그립습니다. 초심 잃지 않겠습니다"라고 적었습니다. 한국에서 지역주의 문제를 가장 치열하게 고민했던 노 전 대통령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그리움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이런 노 전 대통령과 닮은 사람이 있습니다. 허대만 위원장입니다.
허 위원장은 지난 1995년 만 26세의 나이로 전국 최연소 포항시의원으로 정치권에 발을 들였습니다. 기세를 이어 1998년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보수정당인 자유민주연합 후보로 경상북도의회 의원직에 도전했지만 실패했습니다. 2002년 노 전 대통령 선거캠프를 거쳐 열린우리당 창당에 참여한 허 위원장은 2008년부터 '민주당' 소속으로 선거에 뛰어들었습니다.
6번의 낙선이 이어졌습니다. 2008년 경북 포항 남·울릉 국회의원 선거에서 득표율 17.06%로 낙선을 시작으로 △2010년 경북 포항시장 지방선거 18.93% '낙선' △2012년 경북 포항 남·울릉 국회의원 선거 17.84% '낙선' △2013년 경북 포항 남·울릉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18.50% '낙선' △2018년 경북 포항시장 지방선거 42.41% '낙선' △2020년 경북 포항 남·울릉 국회의원 선거 34.31% '낙선'을 거듭했습니다.
포항은 보수의 심장이라고 불리는 TK(대구·경북) 최대 도시입니다. 거듭된 실패에도 허 위원장이 진보 불모지 포항을 포기하지 못한 건 지역주의 극복 때문입니다. 정치를 근본적으로 개혁하기 위해선 지역주의를 타파해야 한다는 게 허 위원장의 신념이었습니다. 이에 지역구나 정당을 옮기라는 권유도 마다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허 위원장과 같은 지역구에서 뛰고 있는 김상헌 민주당 포항남·울릉지역위원회 위원장은 "아무리 42.41%를 얻어도 당선되는 게 아닌 데 왜 도전하냐고 물었다"라며 "허 위원장은 ‘내가 열심히 해서 당선되면 좋고, 당선되지 않으면 네가, 그렇지 않으면 다음 누군가가 될 것'이라 말했다"고 전했습니다.
당장의 당선보다 후발 주자에게 길을 열어주려 한 허 위원장의 희생정신은 지금도 포항에 남아있다고 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허 위원장이 오랫동안 출마하고 낙선하는 과정에서 전체적으로 지지율이 높아졌다"며 "지역에서 피부로 느끼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허대만 전 민주당 경북도당 위원장이 지난 2013년 경북 포항 남·울릉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문재인 당시 민주당 상임고문과 유세를 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상대가 있어야 정치고 민주주의"
허대만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의 '공존의 정신'을 강조합니다. 허대만 추모 문집 발간위원회의 박규환 집행위원장은 "7번이나 낙선하면서도 상대방을 인정하고 대화하는 자세를 소홀히 하지 않았던 사람"이라며 "고인이 타개하고 난 이후에 진보 인사뿐만 아니라 보수 인사들도 굉장히 아깝게 생각하고 추모 행사에 많이 참여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요즘 사회는 진보는 진보대로, 보수는 보수대로 서로를 인정하지 않고 극단적으로 대입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허 위원장이 그랬던 것처럼 지역, 세대 간에 상호 인정하고 이해하기 시작하면 우리 사회 문제를 근본적으로 치유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민병덕 민주당 의원은 '건강한 정치를 위해 기꺼이 조연을 자처하던 사람'으로 허 위원장을 기억했습니다. 민 의원은 "허 위원장은 '상대가 있어야 정치고 민주주의다' 이 공존의 정치를 평생 얘기하고 싶었던 사람"이라며 "그래서 보수세가 강한 자신의 지역에 자신이 스스로 상대방이 돼 지역주의를 타파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선거제도 개편의 필요성도 강조했습니다. 현행 선거제도는 정당이 비례대표 당선 순서를 매기는 '폐쇄형 명부'입니다. 지역에서 특정 정당의 표를 독식할 수 있는 구조로 같은 지역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기 어렵습니다. 이에 권역별비례대표제와 이중등록제 등 지역주의를 깰 방안을 고안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민 의원은 "광역선거에서 단체장과 지방의원이 완전히 똑같은 목소리를 내는 데서 어떻게 견제가 이뤄지겠냐"라며 "이건 시민에게 불행한 일"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이효진 기자 dawnj789@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