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지유 기자] "요즘 마트 가면 채소 코너에서 한참을 망설이게 됩니다. 배추 한 포기에 5000원이 넘는다니, 겁이 나요."
서울 송파구에 거주하는 주부 김모(42)씨는 최근 장바구니 물가가 부쩍 올라 장 보기가 부담스럽다고 토로합니다. 특히 채소와 과일 등 신선식품 가격의 급등은 일상 소비에 직격탄이 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주요 채소 폭등세 뚜렷
실제로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29일 기준 주요 농산물의 소매가는 한 달 전 내지는 전년보다 크게 오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여름철 폭염과 장마가 번갈아 나타나며 작황에 차질이 생긴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됩니다.
대표적인 여름 채소인 배추는 이날 기준 한 포기당 평균 5445원으로, 지난 6월 평균(3440원)보다 58.3% 급등했습니다. 여름철 김치 재료로 많이 쓰이는 배추 가격이 이처럼 오른 건 무더위에 의한 생육 부진과 국지성 폭우로 인한 포전 침수 피해가 겹쳤기 때문으로 풀이됩니다.
주요 식품 품목별 물가 상승률 비교표. (제작=뉴스토마토)
과일 가격도 큰 폭으로 올랐습니다. 수박 한 통 평균 소매가는 2만9073원으로 한 달 전인 6월(2만2309원)에 비해 30.3% 상승했습니다. 수박은 수요가 집중되는 대표적인 여름 과일이지만 이번 여름에는 고온으로 인한 품질 저하와 수확량 감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했습니다. 복숭아 10개당 평균 가격은 1만9939원으로 지난해 9월(1만8805원)보다 6% 상승했는데요. 비슷한 시기 과일 가격과 비교해도 가격 상승 흐름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오이 가격도 한 달 만에 15.5% 올랐습니다. 10개 기준 소매가는 지난달 7076원에서 29일 8171원으로 뛰었죠. 오이는 고온과 다습에 민감한 작물로 이번 장마철 반복된 비와 고온이 병해충 발생과 수확량 저하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상추 100g 가격도 큰 폭으로 상승했습니다. 6월 평균 932원에서 7월 29일 1343원으로 올랐고, 상승률은 44.1%에 달합니다.
기상이변에 따른 공급 불안정 만성화
가격이 오른 건 단순히 수요가 늘어서가 아닌 기상이변에 따른 공급 불안정 탓이 큽니다. 지난 6월 중순부터 시작된 이례적인 폭염에 이어 이달에는 국지성 폭우가 자주 발생하면서 작물 생육과 수확에 연쇄적인 악영향을 끼쳤습니다.
한낮 기온이 35도 안팎까지 치솟는 날이 많아지자 채소는 웃자람 현상으로 상품성이 낮아졌고, 잦은 비로 인한 병충해와 침수 피해도 속출했습니다. 특히 밭작물의 경우 배수가 원활하지 못해 피해가 컸다는 점에서 향후 추가 가격 인상 우려도 남아 있습니다.
충남 부여에서 상추와 오이를 재배하는 이모(65)씨는 "이상기온에 너무 애를 먹고 있다"며 "덥고 습한 날이 이어지니 상추는 시들고 오이는 병이 들어 수확량이 절반 이하로 줄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출하량이 적으니 단가가 오른 건 이해는 되지만, 농민도 손해가 큰 상황"이라고 토로했습니다.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롯데마트 내 전경. (사진=이지유 기자)
'기후플레이션'이라는 용어도 현실화하는 모습입니다. 이는 기후 변화로 인해 농산물 공급이 불안정해지고 이로 인해 물가가 전방위적으로 자극받는 현상인데요. 과거에도 이상기후로 인한 일시적 농산물 가격 급등은 종종 있었지만, 최근에는 이 같은 현상이 점차 반복되고 구조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큽니다.
이 같은 기후발 물가 상승은 올해만의 현상이 아닙니다. 지난 2021년 여름에도 폭염과 장마가 번갈아 닥치면서 채소류 가격이 급등했고, 당시 배추와 무 가격은 평년 대비 2배 가까이 치솟기도 했습니다. 이후 2022년과 2023년에도 장마철 직후 상추, 열무, 고추 등의 출하량이 급감하면서 소비자 가격이 급등한 사례가 반복됐죠.
특히 이번 여름처럼 무더위와 폭우가 반복되는 패턴이 일상이 되면 단순한 일시적 현상이 아닌, 생활 물가 전반을 끌어올리는 상시적 압력 요인이 됩니다. 특히 채소·과일 등 신선식품은 대체재가 마땅치 않고 서민들이 매일 소비하는 기본 식재료라는 점에서 체감 물가 상승폭은 실제 수치 이상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서울 송파구의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폭염과 비로 인해 산지 출하량 자체가 줄어들고 유통 단계에서의 손실도 커진 상황"이라며 "여름철에는 가격이 들쭉날쭉하기 마련이지만 올해는 가격 상승 폭과 기간 모두 예년과 다르게 길어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지유 기자 emailgpt12@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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