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지유 기자] SPC그룹이 최근 이재명 대통령의 공개 질책 직후 야간 맞교대 노동 폐지를 발표했습니다. 최근 3년간 SPC 사업장에서 3명의 산재 사망자가 발생하자, 이 대통령이 "12시간 야근이 가능한 구조인지 의문"이라며 SPC의 고강도 근무 체제를 지적한 직후 내린 조치입니다.
그럼에도 정작 총수인 허영인 회장은 초호화 법률 대응으로 책임을 피해왔던 전력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물리적 노동시간의 단축을 넘어 근본적인 근무 시스템의 구조 개선이 반드시 뒷받침돼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나오는데요. 특히 정작 불매운동 등으로 피해를 입는 점주들의 불안감은 더욱 커지는 모습입니다.
이재명 대통령 질책 이틀 만에 SPC 근무 개편 대책 발표
28일 업계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25일 경기 시흥 SPC삼립 시화공장에서 열린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간담회'에 참석하며 "야간 12시간 교대 근무를 주 4일 반복하는 것이 인간적으로 가능한 구조인지 의문"이라고 강도 높게 질책했습니다. 이 같은 발언의 배경에는 지난 5월 평택 공장 사망사고가 단초가 됐는데, 당시 피해자는 크림빵 생산 라인의 윤활유 작업 중 컨베이어에 끼이는 사고로 숨졌고 야간 근무 중이었습니다.
결국 SPC는 이 대통령 방문 직후인 지난 27일 생산직의 야간 근무 시간을 8시간으로 제한하고 생산 구조를 개편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대책을 발표했습니다. 먼저 SPC는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또 주간 근무 시간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방침도 세웠습니다.
아울러 이번 근무제 개편이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노동조합과 협의하고, 전환 과정에서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한 교육과 매뉴얼 정비도 함께 추진키로 했습니다. 이는 오는 10월1일부터 단계적으로 전 계열사에 적용됩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5일 경기 시흥시 SPC 삼립 시흥 공장에서 열린 산업재해 근절 현장 노사간담회에서 허영인 SPC그룹 회장 등 회사 임원들에게 근로자 노동 환경 등에 대해 질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3년간 반복된 사망사고…피해는 오롯이 점주들에게
SPC의 이번 발표는 이재명 대통령이 지적했듯, 단순한 단일 사건이 아닌 구조적 사고 반복을 방지하자는 차원에서 추진된 것입니다. SPC에서는 최근 3년 동안 모두 세 건의 사망 사고가 발생했는데요. 세 건 모두 심야 시간대에 단독 또는 인력 부족 상태에서 작업을 수행하던 중 발생했습니다.
특히 이들 사례 모두 공통적으로 기계 설비와 관련된 직접적 위험 요소가 원인이 됐고, 사고 당시 작업자들은 충분한 보호 장비나 인력 지원 없이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모두 야간 시간대에 단독 작업 또는 인력 부족 상태에서 발생했고, 안전관리 시스템이 전반적으로 부실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SPC 계열사 최근 3년 간 사망사고 일지 인포그래픽. (제작=뉴스토마토)
하지만 이 같은 조치에도 프랜차이즈 가맹점주들은 여전히 불안해하는 모습입니다. 특히 SPC는 산재 사망사고가 불매 운동으로 직결된 경우가 많았는데요. 서울 남부 지역의 파리바게뜨 한 점주는 "사고 보도만 나오면 곧바로 소비자 불매 움직임이 시작되고, 많게는 매출이 30%까지 줄어든 적도 있다"며 "사고는 공장에서 나지만 책임은 점주가 지고 있다"고 토로했습니다.
반면 허영인 SPC 회장은 반복된 산업재해에도 원론적 입장만 반복해왔는데요. 지난 2022년 SPL 사고 당시에도 전관 출신 변호사로 구성된 대형 로펌 변호인단을 꾸려 수사 대응에 나섰고 기소되지 않았습니다. 이번 5월 사고에 대해서도 SPC는 "조사 결과에 따라 책임 소재가 확인되면 그에 맞는 조치를 취하겠다"고 답했습니다.
SPC의 구조 개편과 관련해 임금 감소에 대한 불안감을 내비친 현장 노동자들도 적지 않습니다. SPC 노조 관계자도 "노동 강도와 수당이 줄어드는 만큼, 임금 보전 등 실질적 대책이 없다면 이번 개편도 보여주기식에 그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에 SPC 관계자는 "임금 삭감 우려와 관련해서는 근로 시간이 줄어들면 일정 부분 영향은 있을 수 있지만, 임금에 대한 논의는 이제 막 시작되는 단계고 아직 내부적으로도 결정된 바는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전문가들 "8시간 넘어 근본적 구조 개선 절실"
이번 SPC 조치를 바라보는 전문가들의 우려도 적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SPC의 야간 노동시간 단축 조치에 대해 근본적인 구조 개선이 절실하다는 조언도 나오는데요.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교수는 "현재 SPC는 야간 노동을 8시간 이내로 줄이겠다 했지만, 생산량을 유지하면서 노동시간만 줄인다면 결과적으로 남은 시간 안에 더 높은 노동 강도를 요구하게 될 수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는 노동자에게만 고통이 전가되고, 오히려 새로운 안전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김 교수는 "단순히 시간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임금 보전, 자동화 투자, 인력 재배치, 권한 분산 등 다층적 계획이 함께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곽경선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 사무처장은 "현재 SPC에서 발표한 8시간 초과 야간 근로 폐지는 긍정적인 출발점이 될 수 있지만, 임금 보전과 인력 확충, 권한 분산 등 실질적인 개선 방안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며 "장시간 근무에 따른 피로 누적과 집중력 저하 문제는 구조적 개선 없이는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궁극적으로는 노동시간 단축, 규칙적인 근무 체계 도입, 정기적인 건강검진을 통해 교대 근무자의 안전과 건강을 확보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지유 기자 emailgpt12@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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