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숨소리)아파트 숲에서 만난 새호리기
2025-07-28 11:50:23 2025-07-28 14:28:43
새호리기가 작은 새를 사냥해 둥지로 향하고 있다.
 
여름은 뭇 생명들에게 가장 분주한 계절입니다. 곤충과 새, 식물들에게 이 시기는 번식과 성장을 위한 결정적인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뜨겁고도 치열한 자연의 흐름은 도시에서도 통합니다. 진득한 더위가 눌어붙은 도심지에서 작고 날렵한 매, 새호리기를 만났습니다. 
 
작은 새들을 홀리듯 날아다닌다 하여 이름 붙은 새호리기는 사냥할 때 그 어느 때보다 민첩합니다. 날개를 접었을 때 날개 끝이 꽁지 깃에 닿는 모습이 제비와 닮아, 중국에서는 제비를 뜻하는 '연(燕)'과 작은 매를 뜻하는 '준(?)'을 합쳐 '연준'이라고 부릅니다. 새호리기는 비행 중에도 먹잇감을 포착해 빠르게 낚아챌 만큼 솜씨 좋은 포식자입니다. 하지만 포식자는 홀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곤충, 작은 새, 다양한 생물들이 일정한 개체수로 균형을 이루며 살아가고, 이를 지탱하는 서식 환경이 유지될 때에야 새호리기 같은 포식자도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도시 한복판에 새호리기가 번식하고 있다는 사실은 하나의 생물 지표로서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 지역 생태계가 종 다양성과 유기적인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새호리기 수컷(오른쪽)이 암컷에게 사냥해 온 매미를 건네고 있다. 
 
새호리기는 한반도에서 여름철에 만날 수 있고, 숲이나 개활지에서 주로 관찰됩니다. 그런 새호리기가 도시 한복판, 서울 송파구 성내천 인근 아파트 단지에 둥지를 틀어 많은 사람의 이목을 끌었습니다. 빽빽한 건물들 사이에 높게 솟아 있는 소나무 위, 오래전 까치가 지었던 것으로 보이는 둥지를 새롭게 단장했습니다. 6월과 7월, 도시의 소음과 열기, 이어진 장마에서도 새호리기 부부는 오로지 둥지 안 생명에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부모 새는 하루에도 여러 차례 먹이를 물어 왔습니다. 새호리기는 매미나 잠자리 같은 곤충은 물론, 참새와 직박구리 같은 작은 새들까지 사냥해 어린 새들을 기릅니다. 덕분에 둥지 안 생명들은 무사히 자라나 이제는 둥지 가장자리에 올라 날갯짓을 연습하며 세상으로 나아갈 본능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장마가 끝나자 본격적인 폭염이 시작됩니다. 콘크리트 바닥의 지열과 유리창의 반사열로 달아오른 무더위 속에서도 새호리기 부부는 쉼 없이 먹이를 물어 와 어린 새들을 돌보고 있습니다. 둥지에서의 시간이 무르익고, 어린 새들은 이미 깃털이 다 자라 날갯짓에도 힘이 붙었습니다. 나뭇가지 끝에 앉아 바람을 기다리는 어린 새들이지만, 머지않아 도시의 하늘로 힘차게 날아오를 것입니다. 그 작은 날갯짓은 한 생명의 성장이며, 동시에 도시에도 생명이 살아 숨 쉴 거라는 기분 좋은 바람입니다. 
 
글·사진= 김용재 생태칼럼리스트 K-wild@naver.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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