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유지웅 기자] "훌륭한 수치!"라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자화자찬이 끝났습니다. 6월 소비자물가(CPI)가 시장 예상치를 웃돌면서, 관세정책에 부담이 커지고 있는데요. 임박한 협상 시한 속에 고용지표마저 악화하고 있습니다. 상대를 벼랑 끝까지 몰아붙이는 전술을 펴는 트럼프 대통령이지만, 합의가 늦어질 경우 자신이 거꾸로 그 끝에 서게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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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예상에 부합?…"인플레이션 우려 현실화"
미 노동부는 6월 CPI가 전년 동월 대비 2.7% 상승했다고 15일(이하 현지시간) 밝혔습니다. 이른바 '해방의 날'(4월2일) 이후 처음 시장 예상치를 상회한 수치입니다.
전월 대비 상승률은 0.3%로, 지난 1월 이후 가장 큰 폭의 월간 상승 폭입니다. 특히 자동차를 제외한 '핵심 상품 가격'은 3년 만에 가장 빠른 속도로 상승하고 있습니다.
관세의 영향이 얼마나 클지, 언제부터 본격적인 가격 인상이 시작될지에 대해선 경제학자마다 의견이 엇갈립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트럼프발 관세 여파가 경제에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점인데요. 전 세계와 중국을 대상으로 한 국가별 상호관세는 부과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통상적으로 수입 가격 충격의 50%가량은 첫 3개월 이내에 반영되는데, 수입 업체의 사전 재고가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올 후반기 상당한 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클리블랜드연방준비은행의 '나우캐스팅'은 당장 7월 '전년 대비 CPI'가 2.73%를 찍을 걸로 예상했습니다.
장기적 전망도 어둡습니다. 글로벌 투자은행 UBS는 경기 침체나 관세 인하가 발생하지 않는 한, 전체 물가상승률이 2027년 말까지 4월(2.3%) 수준으로 내려가긴 어려울 걸로 내다봤습니다.
예일대 예산연구소의 14일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관세로 인해 미국 물가 수준은 단기적으로 2.1% 상승하며, 연간 가계 소득에 2800달러(약 388만원)에 해당하는 타격을 줄 걸로 예측됩니다. 실업률도 2025년 말까지 0.5%포인트 상승하고, 임금 고용은 64만1000명 감소할 전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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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급한 트럼프…한·미 협상 카드로 'AI 협력' 부상
그런데도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매우 낮은 인플레이션"이라며 연준에 3% 금리인하를 재차 촉구했습니다. 상승률 반등 수준이 '전문가 예상'에 부합했다는 논리인데요. 올 하반기 쏟아내야 하는 최대 1조달러(약 1388조원) 국채의 이자 비용을 줄여보자는 몸부림입니다.
그러나 당장 고용 시장도 불안한 건 마찬가지입니다. 6월 미국 일자리 증가폭(비농업 신규고용)은 14만7000명 증가하며 견고한 흐름을 보였지만, 이는 사실상 '계절적 영향' 덕인데요. 여름학교 수요로 교직원·보조 인력을 늘리려는 수요가 늘면서, 공공 부문에서 7만3000명 신규 고용이 늘어났다는 분석입니다.
반면 민간 부문 고용은 7만4000명 증가에 그쳐, 2024년 10월(-2만8000명)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습니다. 연준은 기준금리 인하의 조건으로 '고용 둔화'를 가장 중시하는 분위기지만, 성장률 하락에 인플레이션까지 겹치면서 금리를 낮출 경우 '스태그플레이션'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결국 급한 건 트럼프 대통령입니다. 각국과의 협상이 장기화할 경우, 스태그플레이션 우려만 커지는데요. 그는 15일 인도네시아와 협정을 발표한 데 이어, 중국과의 막바지 협상에도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중국의 희토류 수출 제한에 굴복, 엔비디아의 인공지능(AI) 반도체인 H20 칩의 수출까지 허가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다음 협정 대상국으로 삼은 인도는 중극·러시아와 밀착하는 행보를 보입니다. '보복 패키지'를 준비해 놓은 유럽연합(EU)도 손쉬운 상대는 아닙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입지가 점점 좁아지면서, 한국으로선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는 구도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인니산 구리에 '무관세 혜택' 가능성도 시사했는데, 미국 인공지능(AI) 생태계에 필수적인 한국 반도체에 대해서도 낮은 품목 관세가 적용될 가능성이 점쳐집니다.
가장 중요한 협상 카드는 '대미 투자'가 될 전망인데요. 미국은 일본과의 협상에서 4000억달러(약 550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 펀드의 조성을 제안했고, 한국에 대해서도 비슷한 요구를 했다고 알려졌습니다. 결국 자국 제조업 부흥을 해외 자본으로 이루겠다는 목표인데, 이 천문학적인 액수를 어떻게 줄일 수 있는지가 관건이 될 걸로 보입니다.
미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15일 보고서에서 한·미 간 협력의 실질적 대안으로 'AI 스택(전 분야) 협정'을 제시했습니다. 한국은 생산성 둔화를 감안할 때, 미국의 혁신 생태계의 역동적 요소와 통합해 이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미국에도 한국은 중국을 제외하면 조선, 반도체 제조, 원자력 발전 등 제조 노하우와 급성장하는 AI 연구 인력을 포함해 전 과정을 아우르는 기술·산업 역량 갖춘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입니다.
유지웅 기자 wisema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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