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몽블랑 산맥에서 녹아내리는 빙하 물이 더 크고 빈번한 지진을 유발하고 있다.(사진=게티이미지)
[뉴스토마토 임삼진 객원기자] 지구온난화가 단순히 폭염과 가뭄을 악화시키는 수준을 넘어 이제는 지진마저 유발하고 있다는 놀라운 연구 결과가 발표됐습니다. 유럽의 지붕이라 불리는 알프스 산맥에서 녹아내리는 빙하가 지진을 빈발하게 하고 그 강도를 증가시킨다는 명확한 증거가 제시된 것입니다.
스위스 취리히 연방공과대학(ETH Zürich)의 지진학자 토니 크라프트(Toni Kraft)는 지난주 국제 학술지 <지구·행성 과학 회보(Earth and Planetary Science Letters)>에 발표한 연구에서, 몽블랑 산맥의 그랑드 조라스(Grandes Jorasses) 빙하 아래에서 지난 15년간 수집한 지진 데이터를 분석했습니다. 연구진이 발견한 것은 상당히 충격적인 내용입니다.
연구진은 논문에서 “우리의 고해상도 미세지진 분석은 2006년 11월부터 2022년 10월까지 그랑드 조라스 지진 시퀀스(GJES, Grandes Jorasses Earthquake Sequence)의 공간적·시간적 지진 활동 패턴을 상세히 밝혀냈다. 2015년 9월 이전에는 낮은 활동 수준을 보였다. 2015년 9월부터는 명확한 연간 주기성이 나타나며, 각 주기마다 가을 지진 활동 피크가 두드러졌다”라고 발표했습니다. 특히 2015년 여름에 발생한 기록적인 열파가 산 정상의 빙하를 급속히 녹게 했고, 이로 인해 산 아래 지역에서 지진 활동이 급증했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연구팀은 몽블랑에서 남쪽으로 13km 떨어진 고정밀 지진계를 통해 기존에 무시됐던 약 1만2000건 이상의 소규모 지진을 분석했습니다. 분석 결과, 빙하가 녹으면서 지하로 스며든 물이 암석층을 압박하고, 단층면을 미끄러지게 하는 압력을 증가시켜 지진 발생을 촉발했다는 것입니다. 소규모 지진의 빈도 증가는 대형 지진 발생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이미 잘 알려져 있습니다.
과학계에서는 오래전부터 물이 지진 유발에 핵심적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물이 암석 내 공극으로 스며들어 압력을 높이면 단층을 붙들고 있던 힘을 상쇄하면서 지진이 발생하는 원리입니다. 이번 연구에서 주목할 점은 이 물이 바로 기후 변화로 인해 녹은 빙하에서 왔다는 점입니다. 부산대학교의 김광희 교수는 이 연구를 다룬 Science와의 인터뷰에서 “기후 변화와 지각의 반응 사이에 명확한 증거를 제공한 연구”라며 이번 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몽블랑 터널의 존재 또한 지진 위험을 설명하는 중요한 단서입니다. 길이 11km에 달하는 이 터널은 1960년대 건설 당시 막대한 양의 물이 유입돼 공사가 지연될 정도였습니다. 지금도 터널 내부에서는 매우 신선한 물이 지속적으로 흐르고 있는데, 이는 빙하 녹은 물이 지하 깊숙한 지진 발생 지역까지 매우 빠르게 이동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연구진은 이 데이터를 활용해 물의 침투 속도를 수리 모델로 계산했고, 실제 관측된 지진 데이터와 완벽히 일치하는 결과를 얻었습니다. 취리히 연방공과대학(ETH)의 베레나 시몬(Verena Simon) 박사는 “열파가 발생한 지 1년에서 2년 후 지진 활동이 급증했다”며, “지하의 압력 변화가 천천히 전파되며 더 큰 지진 위험을 만든다”고 설명했습니다.
지진학자들은 이와 같은 현상이 알프스를 넘어 다른 빙하 지역에서도 발생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특히 히말라야처럼 빙하가 많고 규모가 큰 지진이 자주 발생하는 지역은 더욱 심각한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번 연구 결과는 단순히 학술적 호기심을 넘어 지역 사회와 정책 입안자에게도 중요한 메시지를 던집니다. 기후 변화가 단지 폭염과 폭풍뿐 아니라 지진과 같은 지질학적 재해마저 유발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연구팀은 "기후변화로 인해 변화하는 지진 위험을 평가하고, 지역사회를 보호하기 위한 대비책을 마련하는 것이 매우 시급하다"고 말합니다. 빙하가 조용히 사라지지 않고 지진이라는 새로운 위협을 초래할 가능성이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연구진은 논문의 결론 부분에서 “영구동토와 빙하 후퇴는 수많은 암석 낙하와 암석 기둥 붕괴를 유발하며, 이는 표면 근처의 녹은 물 침투 경로를 변경시켜 이 물이 구멍 압력 변화를 유발하고 새로운 원천 지역에서 지진 활동을 촉발할 수 있다”면서 “이 연구는 기후변화가 알프스 지역에서 지역적 지진 위험을 크게 증가시킬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현상은 전 세계 다른 빙하 지역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알프스에서 확인된 이 명확한 사례는 기후 위기 대신 기후 비상사태(Climate Emergency)라는 표현이 과장된 것이 아님을 확인해줍니다.
2015년 이후 확연한 증가 추세를 보이는 알프스산맥의 지진 조사 GJES의 시간적 변화. (사진=Earth and Planetary Science Letters)
임삼진 객원기자 isj2020@kosns.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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