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와 함께 더 강조되는 지속가능한 건축. (사진=SK 에코플랜트)
[뉴스토마토 임삼진 객원기자] 기후변화가 가져온 무더위와 폭염이 전 세계적으로 심화하는 가운데 건축 분야에서 획기적인 냉각 솔루션이 등장했습니다. 싱가포르 난양기술대학교의 연구진이 에너지 소비 없이 건물을 시원하게 유지할 수 있는 신개념 시멘트 기반 페인트를 개발했습니다. 이 연구 결과는 지난 6월5일 세계적인 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에 ‘열광학 및 물질 전달 특성의 합리적인 설계로 가능하게 된 수동 냉각 페인트(Passive cooling paint enabled by rational design of thermal-optical and mass transfer properties)’라는 논문으로 게재되었습니다.
이 페인트의 가장 큰 특징은 사람의 피부가 땀을 흘려 열을 식히는 것과 유사한 원리로, 태양광을 효과적으로 반사하고 흡수한 물을 천천히 증발시키면서 표면 온도를 낮추는 방식입니다. 전기나 기계적인 냉각 시스템을 사용하지 않고 수동적(passive)으로 냉각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기존의 냉각 페인트들과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기존 냉각 페인트는 주로 태양광을 반사하고 열을 우주로 방출하는 '방사 냉각(radiative cooling)' 원리에 기반한 것입니다. 하지만 싱가포르처럼 고온다습한 환경에서는 공기 중 수증기가 방출되는 열을 붙잡아 효율을 떨어뜨립니다. 난양기술대의 리 홍(Li Hong Jipeng Fei) 교수 연구팀은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증발 냉각(evaporative cooling)'을 채택했습니다. 이 페인트는 자체적으로 물을 흡수하고 천천히 증발시키면서 주변 열을 빼앗는 기능을 갖추었습니다.
친환경 건축자재에 관한 교과서를 다시 쓰게 될 놀라운 페인트. (사진=챗GPT)
연구팀은 “고급 열-광학적 및 질량 전달 특성을 갖춘 개량된 시멘트 기반 구조를 설계하여 냉각 성능을 향상시키면서 내구성, 기계적 강도, 광범위한 접착력을 확보했다. 이 도료는 습윤 상태에 따라 88~92%의 태양 반사율, 95%의 대기 창 방사율, 약 30%의 수분 유지율, 그리고 자체 재생 특성을 갖추어 젖은 상태에서도 안정적인 광학적 성능을 유지한다”고 밝혔습니다. 페인트 내부의 미세한 다공성 구조는 수분을 머금고 서서히 방출하여 지속적인 냉각 효과를 제공합니다. 또한 소량의 폴리머와 염분을 포함해 수분 유지와 페인트의 갈라짐 방지 및 내구성을 향상시켰습니다.
이 페인트의 성능을 확인하기 위해 연구팀은 싱가포르에서 실제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같은 조건의 소형 건물 세 채에 각각 일반 페인트, 기존 상업용 냉각 페인트, 그리고 새롭게 개발된 페인트를 칠한 뒤 2년 동안 관찰했습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일반 페인트와 상업용 냉각 페인트는 시간이 지나면서 황변 현상이 나타나 태양광 반사 능력이 떨어진 반면, 새로운 페인트는 지속적으로 흰색을 유지하며 높은 냉각 성능을 유지했습니다.
실제 시험 결과, 신형 페인트로 칠한 건물은 에어컨 사용량이 다른 건물에 비해 약 30~40%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사이언스 뉴스(Science News)에 따르면 공동 연구자 지펭 페이(Jipeng Fei)는 "페인트가 장기간 흰색을 유지하면서 반사율과 냉각 성능이 안정적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혁신적인 페인트가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는 도시의 열섬 현상 완화 효과 때문입니다. 현재 세계적으로 건물 냉방에 소비되는 에너지는 전체 건물 에너지 소비의 약 60%에 이릅니다. 특히 밀집된 도시 지역에서는 냉방 장치가 배출하는 열로 인해 주변 지역보다 온도가 훨씬 더 올라가는 열섬 현상이 심각합니다. 그러나 이 페인트는 흡수한 열을 보이지 않는 적외선 형태로 대기 중에 방출하기 때문에 주변 공기를 추가로 데우지 않아 도시 열섬 효과를 완화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사이언스>의 편집자인 브렌트 그로콜스키(Brent Grocholski)는 “건물의 상단과 외벽은 수동적 냉각에 활용될 수 있지만, 이를 효과적으로 수행하려면 적절한 특성을 갖춘 재료가 필요하다. 싱가포르 난양기술대학교 연구진은 방사열과 증발을 통해 냉각되는 페인트를 설계했으며, 이 페인트는 습한 환경에서도 건물을 상대적으로 시원하게 유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방사열 냉각은 온도를 낮추는 데 효과적이지만 재료가 하늘을 향해야 한다. 증발을 통해 냉각하는 페인트를 설계하면 재료가 건물의 측면에 적용될 때도 효과적이다”라고 이 연구 결과를 요약했습니다.
연구진은 이 페인트가 특히 싱가포르를 비롯한 열대 기후 및 고온다습한 환경에서 건축물의 냉각 효율을 크게 향상시킬 것으로 전망합니다. 이 기술은 건축 분야에서 친환경적이고 지속가능한 해결책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도시 환경을 개선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친환경 활동을 상징하는 이미지.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임삼진 객원기자 isj2020@kosns.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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