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창욱 기자] 중국산 저가 공세, 국내 건설 경기 침체, 그리고 미국의 고율 관세 등 삼중고에 시달려온 K철강이 이제는 일본의 위협에도 직면하게 됐습니다. 올해 들어 일본산 H형강 수입량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며 국내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높이고 있고 일본제철의 미 US스틸 조건부 인수까지 성사되면서, 생산 경쟁에서도 국내 철강업계가 한발 밀릴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출구가 보이지 않는 내우외환의 위기 국면에서 업계는 정부가 실질적인 지원 대책과 더불어 통상 협상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일본 도쿄에 위치한 일본제철 본사 건물. (사진=뉴시스)
최근 국내 철강업계가 유례없는 위기를 겪고 있는 가운데, 한국과 일본 양국 철강업계의 경쟁 구도가 보다 심화하는 모양새입니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H형강에서 일본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해마다 늘어나고 있습니다. 2023년에는 32.38%였지만 2024년에는 42.64%, 올해는 5월까지 기준으로 이미 점유율 50%를 넘겼습니다. 올해 1~5월 누계 일본산 H형강 수입량은 6만8416톤으로, 이는 같은 기간 H형강 전체 수입량 12만4342톤의 55.02%에 해당합니다.
H형강은 H자 형태의 구조용 강재로, 주로 고층 빌딩의 기둥이나 교량 등 토목 구조물에 사용됩니다. 현재 일본산 H형강은 톤당 약 100만원 수준에서 거래되며, 국산 제품보다 약 5만원가량 저렴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같은 가격 차이는 장기화된 ‘엔저(엔화 약세)’ 현상과 일본산 철강의 우회 수출 전략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분석입니다. 2022년 이후 엔화 가치가 크게 떨어지면서 일 철강업체들은 환율 효과를 바탕으로 수출 가격을 낮출 수 있었고, 미국의 고율 철강 관세를 피해 한국 시장으로 수출 방향을 전환하면서 저가 물량이 대거 유입됐다는 것입니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미국의 고관세 조치 이후, 일본산 철강의 한국 수출이 눈에 띄게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일본제철의 US스틸 조건부 인수도 국내 철강업계에도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일본제철의 경우, US스틸 인수를 통해 현지 생산 기반을 확보했기 때문입니다. 현대제철은 포스코와 함께 미 루이지애나주에 제철소 건립을 추진 중이지만, 상업 가동 시점이 이르면 2029년으로 예상돼 시간 차에서 오는 시장 선점 경쟁에서 불리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외환’ 뿐 아니라 ‘내우’도 겹친 상황이 더 큰 문제입니다. 지난 12일 현대제철은 생산 효율성 저하 등을 이유로 포항2공장을 무기한 휴업에 들어갔고, 동국제강은 오는 7월22일부터 한 달간 인천공장 가동을 잠정 중단합니다. 포스코 역시 지난해 7월 포항1제강 공장을, 같은 해 11월 포항1선재 공장을 폐쇄한 바 있습니다. 특히 현대제철의 경우 공장폐쇄와 임금단체협상 등을 두고 노조와 갈등까지 심화해 내부 리스크까지 짊어진 상태입니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정부에 전기세 감면이나 국산 철강 사용 확대 지원뿐 아니라, 협상을 통한 수출 환경 개선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특히 업계는 2018년 문재인 정부가 트럼프 1기 행정부와 협상을 통해 당시 철강에 부과된 25% 고율 관세를 피하고, 평균 수출량의 70% 수준을 무관세로 수출할 수 있는 연간 쿼터를 확보했던 전례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17일 영국은 미국과 ‘경제번영협정(EPD)’을 체결하며, 영국산 철강·알루미늄에 대해 25~50%에 달하는 고율 관세를 한시적으로 면제하고, 일정 수출 물량에 대해서는 무관세 쿼터를 적용하기로 한 바 있습니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영국이 미국과 협상을 통해 무관세 쿼터제를 이끌어낸 것처럼 우리 정부도 협상력을 발휘해야 할 때”라며 “최소한 2018년 당시 한국이 확보했던 쿼터 수준의 복원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박창욱 기자 pbtkd@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