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안정훈 기자] 새 정부가 K-반도체 지원과 육성을 제1의 산업 공약으로 내세운 가운데, 전문가들은 최근 실리콘 기판의 기준으로 자리 잡은 12인치(300㎜) 웨이퍼를 연구개발할 수 있는 공공 팹(Fab·반도체 공장) 신설이 시급하다고 주장합니다. 시설이 완비된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고, 경쟁국은 보유하고 있는 12인치 공공팹이 국내에는 전무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2020년 6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충남 세메스(SEMES) 천안사업장을 찾아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제조장비 생산 공장을 시찰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전문가들은 12인치 공공 팹이 없어 소규모 팹리스(설계 전문 기업)의 반도체 시제품 개발이 난항을 겪고 있고 학계 연구에도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소규모 팹리스의 기술력 향상이 전체 반도체 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국제 반도체 시장에서 한국 기업이 뒤처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옵니다. 미국과 일본, 대만, 프랑스 등 해외 주요국들은 12인치 규격의 공공 팹이 이미 가동하고 있습니다.
공공 팹을 확대하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앞서 지난 3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DB하이텍 등 국내 주요 반도체 기업들과 반도체 첨단연구 및 기술사업화 선도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바 있습니다. 이번 MOU는 공공 팹 연계 플랫폼 ‘모아팹’과의 협업을 위한 것으로, 국내 반도체 공공 팹 기관인 △나노종합기술원(NNFC) △한국나노기술원(KANC) △나노융합기술원(NINT)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서울대학교 반도체공동연구소(ISRC) 등 6곳이 연계해 연구자와 기업을 연결·지원한다는 내용입니다.
다만, 모아팹은 대부분이 8인치인 탓에 최근 반도체 시장에서 주로 사용되는 실리콘 기판(12인치)과 차이가 있습니다. 12인치 팹은 일부 대기업에만 대규모 양산 라인으로 존재하는 상황으로, 그 외 팹리스는 자체적으로 12인치 팹을 마련할 여력이 부족합니다. 물론 이번 MOU도 12인치 공정 활용을 지원하기 위한 것으로 시제품 개발도 지원하고 있지만, 대기업의 장비와 기술력 일부 활용할 수 있을 뿐 독립적인 12인치 공공 팹이 부재하기 때문에 모든 수요를 충족시키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입니다.
대기업으로서도 자사 팹을 통해 영업비밀에 해당하는 최첨단 기술과 생산 역량이 노출하는 데에는 분명 한계가 있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유류장비 지원이나 고급인력 통한 인재양성, 팹 운영 관련 컨설팅을 한다던가 하는 그런 도움은 줄 수 있지만 한계가 있다”며 “기업 입장에서 정부가 역할을 더 해줬으면 바람이 있다”고 했습니다.
첨단전략사업 집중 육성 정책에 따라 추진 중인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단지도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까닭에 소규모 팹리스 및 공공 팹에 대한 지원은 미비한 상황입니다. 이에 학계에서는 공공 팹에 대한 정부의 선투자와 기업의 참여가 중요하다고 조언합니다. 유봉영 한양대학교 재료화학과 교수는 “실질적인 도움이 되려면 재정 지원이 있어야 한다”며 “정부에서 의지를 갖고 예산을 투입해 팹을 짓고, 팹을 사용할 민간기업이 그에 준하는 적절한 투자를 함께해야 팹 신설이 가능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남궁지 나노종합기술원 실장도 “기업은 당장 제품을 만들어야 하니 산학을 위한 투자를 기대하긴 어렵다”며 “결국은 미래에 대한 투자 차원에서 정부가 공공 팹에 투자하고, 거기에 메인 역할을 할 수 있는 반도체 기업이 들어와야 생태계 형성이 된다”고 했습니다.
안정훈 기자 ajh76063111@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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