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혜정 기자] 장덕현 삼성전기 사장이 미국 관세 부과에 따른 공급망 재편 가능성을 직접 언급하면서 향후 투자 방향 변화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업계에선 스마트폰에 대한 품목별 관세가 일률적인 25%로 알려진 만큼, 공급망 재편을 검토한다면 상호관세율이 낮은 나라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옵니다. 이에 따라 상호관세율이 17%로 낮은 필리핀이 하나의 대안으로 점쳐지고 있습니다.
장덕현 삼성전기 사장이 28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에서 열린 재료공학부 대상 특별 강연에 앞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발표한 국가별 상호관세율에 따라 한국은 25%, 중국은 145%, 베트남은 46%, 필리핀은 17%의 관세가 오는 8월부터 순차적으로 적용됩니다. 국내(수원·부산·세종)와 중국(톈진·고신), 베트남, 필리핀에 생산 기지를 두고 있는 삼성전기 입장에서 상호관세를 가장 덜 낼 수 있는 곳은 필리핀입니다. 필리핀 생산법인은 삼성전기 MLCC(적층세라믹커패시터)의 핵심 생산 거점으로, 삼성전기는 이곳에서 생산능력 확대를 위한 증설 투자를 검토 중입니다.
MLCC는 전기를 저장한 뒤 필요한 시점에 안정적으로 공급해 반도체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필수 부품입니다. ‘전자산업의 쌀’로 불릴 만큼 중요도가 높으며, 삼성전기의 전체 매출에서 약 40%를 차지하는 핵심 수익원입니다.
지난 28일, 장 사장은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에서 열린 특별 강연에 앞서 취재진을 만나 미 정부의 관세 부과에 대해 “관세 부과가 확정되면 중장기적으로 공급망을 재편하는 등 여러 가지 방안을 생각해 볼 것”이라며 “단기적인 이슈가 아니기 때문에 기술 개발에 매진하는 등 기본기를 튼튼하게 할 계획”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이어 필리핀 공장 증설과 관련해선 “필리핀 정부와 구체적 협의를 진행 중”이라며 “MLCC 수요는 중장기적으로 매우 긍정적”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상호관세를 최대한 방어한다고 해도, 해외에서 생산돼 미국으로 수입되는 모든 스마트폰에 대해 최소 25%의 관세를 부과한다는 ‘트럼프 폭풍’으로부터 자유롭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물론 해당 조치가 시행될 경우,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쪽은 스마트폰 완제품 업체가 될 것으로 보이지만, 삼성전자와 애플에 MLCC, 반도체 기판, 카메라 모듈 등을 공급하는 삼성전기 역시 단가 인하 압력 등 간접적인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해 장 사장은 “현재까지 고객사로부터 부품 가격 인하 요구는 없다”며 “(관세로 인한 수익성 악화는) 확정된 사안이 아니므로 상황을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이같은 관세 폭풍의 파고를 넘기 위해 삼성전기는 차세대 반도체 기판인 ‘유리 기판’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유리 기판’은 유기 소재 대신 유리를 사용해 칩 두께를 줄이고 발열을 줄일 수 있어, 반도체 업계의 ‘게임 체인저’로 주목받는 기술입니다. 삼성전기는 이르면 2025년 2분기부터 유리 기판 시제품 양산에 돌입할 계획입니다. 장 사장은 “(유리기판) 파일럿 라인 가동은 막바지 단계에 있으며, 올해 안에 미국 빅테크 2~3곳에 샘플을 제공할 계획”이라며 “AI와 서버용 유리 기판 수요는 중장기적으로 매우 탄탄하다”고 했습니다.
박혜정 기자 sunright@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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