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민승 법률전문기자] 주택임대차보호법은 임대차에 관해 민법에 대한 특례를 규정한 법으로 주거생활의 안정을 보장하기 위해 임차인의 권리를 강하게 보호합니다. 동법 제3조 제1항은 주택임차인이 주택을 인도받고 주민등록을 마치면 강력한 대항력을 부여합니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15일 대법원에서 임차인이 일단 주택에 관한 점유를 상실하면 임차권의 대항력이 소멸하고 새로 임차권 등기가 마쳐지더라도 기존의 대항력이 소급해 회복되지는 않는다는 판결이 나와 눈길을 끕니다.
대법원 모습. (사진=뉴스토마토)
임차인 A씨는 2017년 2월 보증금 9500만원에 주택을 임차하고 이사와 동시에 주택을 인도받았으며 주민등록까지 마쳤습니다. 이후 2018년 1월 임대인 B씨는 해당 주택에 근저당권을 설정했고, 2019년 2월 임대차 기간이 종료됐음에도 A씨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했습니다. 이에 A씨는 보증금 반환 보험을 통해 보증금 상당의 보험금을 받고, 원고인 서울보증보험은 A씨의 보증금반환채권을 양도받았습니다. 원고는 2019년 3월 임차권등기명령을 신청하고 그 등기는 2019년 4월 마쳤는데 A씨는 등기가 마쳐지기 3일 전 이 사건 주택에서 이사했습니다. 이후 이 사건 주택에 대한 강제 경매가 이뤄졌고 피고가 이 사건 주택을 매수했는데 원고는 피고가 이 사건 주택의 임대인 지위를 승계했다고 주장하면서 배당받고 남은 보증금의 지급을 청구한 겁니다.
1심과 2심은 피고가 임대인 지위를 승계했고 임차권등기명령에 따른 임차권등기의 목적 등을 고려할 때 임차권의 대항력이 여전히 유지된다고 판단해 원고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주택임대차보호법이 주택 임차인에게 주택의 인도와 주민등록을 요건으로 해 물권에 버금가는 강력한 대항력을 부여하고 있는 취지에 비춰볼 때, 달리 공시 방법이 없는 주택 임대차에서 주택의 인도 및 주민등록이라는 대항 요건은 대항력 취득 시에만 갖추면 충분한 것이 아니라 대항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계속 존속해야 한다고 봤습니다. 일단 대항력을 취득했더라도 주택의 점유를 상실하면 점유 상실 시에 대항력이 소멸한다는 겁니다. 대항력이 소멸한 후 임차권 등기가 마쳐지더라도 소멸했던 대항력이 당초에 소급해서 회복되는 것이 아니고, 그 등기가 마쳐진 때부터 동일성이 없는 새로운 대항력이 발생한다고 판단했습니다.
따라서 A씨가 이사를 한 시점에 A씨가 2017년 2월 취득했던 대항력은 소멸하고 임차권 등기가 마쳐진 2019년 4월경 새로운 대항력이 발생한 겁니다. 그렇다면 2018년 1월경 이 사건 주택에 설정된 근저당권이 A씨의 임차권보다 선순위 권리이므로 근저당권이 소멸하면서 임차권도 함께 소멸하고 이 사건 주택을 매수한 피고는 임차 주택의 양수인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주택임대차보호법은 임차인이 주택을 인도받고 주민등록을 마치면 대항력을 취득합니다. 대항력을 취득한 임차인은 주택의 소유자가 바뀌더라도 새로운 소유자와 사이에 임대차 관계가 그대로 존속하게 됩니다. 임대차 기간이 종료된 이후에 보증금을 반환받지 못하면 임대차 관계가 존속되는 것으로 봅니다. 대항 요건을 갖춘 임차인이 확정 일자를 받으면 임차 주택이 경매 등에 넘어간 경우 후순위 권리자나 일반 채권자보다 우선해 변제를 받게 됩니다.
임대차가 끝난 후 보증금을 반환받지 못하면 급하게 이사를 해야 하는데도 대항력을 유지하기 위해 이사를 못 하게 되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이런 경우 임차권등기명령을 신청해 임차권 등기가 되면, 이사를 통해 임차 주택의 점유를 잃더라도 기존의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이 유지되는 효력이 있습니다. 임차권 등기에는 주민등록 일자, 점유개시 일자, 확정 일자 등을 등기 사항으로 기재해 공시하므로 기존의 대항요건이 그대로 유지되는 겁니다. 따라서 위 대법원 판결과 같이 임차권 등기가 완료되기 전 이사하게 되면 보증금을 모두 돌려받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대법원은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이 있는 임차인은 임차 주택의 양수인에 대항해 보증금의 반환을 받을 때까지 임대차 관계의 존속을 주장할 수 있는 권리와 보증금에 관해 임차 주택의 가액으로부터 우선변제를 받을 수 있는 권리를 겸유하고 두 권리 중 하나를 선택해 행사할 수 있다고 해석합니다.
따라서 임차 주택의 경매에서 우선변제권을 선택해 보증금을 전부 돌려받으면 임차권은 소멸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보증금이 모두 변제되지 않으면 대항력 있는 임차권은 소멸하지 않습니다. 임차 주택을 매수한 사람에게 대항해 보증금을 반환받을 때까지 임대차 관계의 존속을 주장할 수 있지만, 우선변제권은 소멸했으므로 임차 주택의 경매가 다시 열리더라도 우선변제권에 의한 배당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이번 사건의 경우 주택임대차보호법은 임차인을 강하게 보호하는 만큼 대법원은 그 대항 요건의 취득과 존속 요건에 대한 해석을 엄격하게 한 것으로 분석됩니다. 자칫 법이 임대인의 권리를 지나치게 제한할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임차인은 이사와 동시에 주민등록을 하고 확정 일자를 받아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을 취득하고, 보증금을 돌려받을 때까지 그 요건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안전합니다. 임차권등기명령을 받았더라도 실제로 임차권 등기가 제대로 마쳐진 것을 확인한 후 이사를 나와야 불이익을 피할 수 있다는 점도 기억해야 합니다.
김민승 법률전문기자 lawyerms@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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