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안창현 기자] 지난해 12월3일 윤석열씨가 불법 비상계엄을 선포하자 시민들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광장으로 달려 나갔습니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윤석열씨 파면 선고까지 꼬박 123일 동안 시민들은 국회에서, 광화문에서, 남태령에서 내란을 막기 위해 온몸으로 맞서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뉴스토마토> K평화연구원은 ‘시민영웅 1천명 찾기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지난 4개월간 광장을 지켰던 시민들을 찾아 그들의 목소리를 기록했습니다. (편집자)

탄핵 정국을 극복하는 과정에 시민들의 ‘빛의 혁명’이 있었습니다. 촛불은 바람이 불면 꺼진다는 말에 시민들은 아예 응원봉까지 들고 광장에 나왔습니다. 시민들은 K-팝 그룹 에스파의 ‘위플래시’에 맞춰 ‘윤석열 파면’을 외쳤고, ‘말이되는소리연합’, ‘토요폭식회’ 등 이전엔 볼 수 없던 이색 깃발을 흔들었습니다. 젊은 세대, 특히 2030 여성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집회 문화를 보여줬던 겁니다.
170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했던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에서 집회 사회를 맡았던 박민주씨는 새로운 집회 문화를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잘 알려진 K-팝을 통해 시민들의 호응을 이끌어내고 집회 현장을 축제의 마당이 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박씨는 “집회를 하면서 야구장처럼 ‘으쌰으쌰’ 힘을 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주문이 많았다. 그래서 어린이 EDM(Electronic Dance Music) 체조 음악부터 클럽에서 들리는 K-팝 노래까지 많이 들어보고 여러 가지를 조합해봤다”며 “그런 와중에 ‘위플래시’ 같이 시민들이 많이 호응하며 좋아해줬던 게 화제가 됐다”고 말했습니다.
한국진보연대에서 활동가로 일하는 박씨는 집회 현장에서 시민들이 서로 도우며 함께했던 모습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고 했습니다. 그는 “광화문 집회 중간중간에 ‘어떤 가게에 얼마만큼 선결제가 돼 있으니 이용해달라’고 안내했다. 지난해 12월 남태령 집회 때는 현장으로 배달 음식과 구호품이 쏟아졌고, 여자화장실에 여성용품들이 쌓여 있기도 했다”며 “시민들의 그런 모습이 너무 감동적이었다”고 돌아봤습니다.
민중가수 백자가 지난해 12월4일 국회에서 열린 시민문화제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사진=백자 유튜브채널 캡처)
박종근씨는 성균관대 ‘깃돌이’로 유명했습니다. 집회 현장마다 성균관대 민주동문회 깃발을 들고 현장을 지키면서 생긴 별명입니다. 이를 계기로 올해 성균관대 민주동문회장으로 선출되기도 했습니다. 박씨는 “우연한 기회에 민동(민주동문회) 깃발을 들게 됐고, 이후 책임감을 가지고 계속 집회에 나갔던 것 같다”며 “현장에서 같이 노래 부르고 깃발을 흔들면 80년대 겪었던 경험도 다시 떠오르고 개인적으로도 마음의 위안을 얻고 힐링이 됐다”고 말했습니다.
집회 현장에서 목격한 젊은 세대의 이색 깃발들에 대해선 “거의 혁명적인 느낌”이라고 감탄했습니다. 그는 “대학교 민동 깃발은 어떻게 보면 배타적이거나 위화감을 느낄 수 있는 깃발”이라며 “젊은 청년들은 자연스럽고 그런 차별을 전혀 느낄 수 없는 깃발 내용을 보여줬다”고 했습니다. 이어 “재기발랄하고 명랑한 깃발들에서 우리 세대가 가지지 못한 새로운 문화를 봤다”면서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도 들었지만, 그들의 깃발을 보고 그들 사이에 끼어 있다는 사실이 너무 행복했다”고 털어놨습니다.
박민주씨가 지난 3월25일 서울 서초구 남태령에서 ‘윤석열 즉각 파면 결의대회’ 사회를 보고 있다. (사진=박민주씨 제공)
‘윤건희(윤석열+김건희)’ 풍자송을 만들었던 민중가수 백자는 ‘탄핵이 다비다’ 등의 노래 영상을 유튜브에 올려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12·3 비상계엄 이튿날인 지난해 12월4일 국회 광장에서 열렸던 시민문화제에서 그가 공연한 영상은 순식간에 조회수가 수백만건을 기록하며 ‘인급동(인기 급상승 동영상)’에 올랐습니다.
백자씨는 당시 공연에 대해 “(계엄으로 인해) 완전히 죽음의 광장이 될 수 있었던 국회가 다음날 축제의 장이 되는 모습을 봤다”며 “사람들은 그때 ‘계엄을 또 할지 모른다’는 긴장감과 ‘그래도 계엄을 막았다’는 성취감이 혼재된 감정을 느꼈는데, 그 열기가 대단했다. 내 평생에 잊히지 않을 밤으로 남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전날 계엄 소식을 접하고 인생 마지막 노래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계엄반대 독재타도’ 곡을 만들었습니다. 그는 “노래 영상을 유튜브에 올리고 비장한 마음으로 국회에 갔는데, 이미 많은 시민이 국회 앞에 모여 있었다”며 “그들과 함께 계엄이 해제되는 순간을 지켜보면서 우리 국민이 참 위대하다는 점을 새삼 느꼈다”고 했습니다.
서울 광화문집회에서 다른 깃발들과 함께 박종근씨의 성균관대 민주동문회 깃발(노란색)이 보인다. (사진=박종근씨 제공)
탄핵 집회에는 장애인들도 참여했고, 이들을 위한 활동가들의 노력도 빠질 수 없습니다. 수어 통역을 하는 김홍남·정지은·이수연씨는 집회 무대에 빠짐없이 올라 농인(청각장애인)들도 불편 없이 집회에 참여하고 즐길 수 있도록 하는 활동을 계속해왔습니다. 김홍남씨는 “집회에 참여한 수많은 시민들 사이에 농인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그 사람을 위해 무대에 서야 한다는 책임감이 느껴졌다”며 “농인들도 수어를 통해 집회 내용을 잘 이해하고 참여할 수 있었다는 점이 탄핵 집회가 4개월여간 기적처럼 잘 진행될 수 있었던 동력”이라고 언급했습니다.
이들 수어통역팀은 농인들이 집회를 즐길 수 있게 됐다는 감사 인사를 들었던 점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고 했습니다. 이수연씨는 “농인인 동생과 언니가 집회에 참여했다. 그런데 언니는 계속 통역을 해야 했고, 동생도 앞 무대가 아닌 언니만 봐야 하는 상황에서 수어 통역이 있어 둘 다 응원봉을 흔들며 집회에 참여할 수 있었다고 했다”며 “감사하다는 말을 전해 듣고 힘든 상황에서도 뿌듯한 마음이었다”고 했습니다.
안창현 기자 chah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